■ 박성민의 Deep Read - 윤석열 후보 하락 왜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 못벗어… 시대 흐름에 뒤처지며 변화 이끌지 못하고 지지율 하락 초래
역대 대선 중 ‘중도 유동성’ 가장 강한 선거판… 尹, ‘중도확장 김종인+2030표심 이준석’ 조합 정상화하는 결단 필요
21세기는 2000년이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한) 2020년에 시작된 듯하다. 20세기가 1900년이 아니라 (1차대전이 끝난) 1919년에 시작됐다고 한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의 말처럼. 팬데믹, 기후변화, 디지털, 인공지능(AI) 등 대전환의 시대에는 일하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모든 방식이 달라졌다.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지지율 하락은 ‘새로운 문명’의 시대에 구시대적으로 사고하고 대응함으로써 발생한 필연적 현상이다. 21세기 선거를 20세기식으로 하는 것이다. 윤석열은 전략적 판단과 정치적 언어의 한계를 노출했다. 이대로는 대선 승리 어렵다.
◇새로운 문명과 구시대 선거
‘기술의 시대’는 정치도 바꿔놓았다. 정치인은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정당은 붕괴하고, 정치는 몰락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정치가 맨 앞자리를 차지하던 시대가 끝나는 건 확실해 보인다.
2022년 대선은 ‘새로운 문명’의 첫 번째 선거라는 의미에서 1987년 체제 이후 치러진 7번의 대선과 완전히 ‘다른’ 대선이다. 어쩌면 전통적인 대선은 ‘보수 동맹’의 박근혜와 ‘민주 동맹’의 문재인이 맞붙은 2012년 대선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정치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후보들, 역사적 이념 대립 구도, 대규모 대중집회 등 오프라인 중심 선거운동, 전통적 공약, 정당 중심의 선거를 다시는 보지 못할 수 있다.
이번 대선이 과거 대선과 다른 특징은 ① 정당 정체성 약화 ② 스마트폰 시대 리스크 일상화 ③ 디지털 세대의 캐스팅보터 부상 ④ 온라인 선거 운동으로 시공간 이동 ⑤ AI·팬데믹·기후위기·플랫폼 같은 새로운 이슈 부각 등이다. 바야흐로 21세기 디지털 선거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20세기 선거 패러다임에 갇힌 후보와 정당은 패배할 운명이다. 이대로 간다면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치 경험이 없고 훈련이 돼 있지 않은 윤석열은 전략적 판단과 정치적 언어의 한계를 노출했고, 이것이 위기를 만들었다. 당 대표 이준석과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장이었던 조수진의 상식적이지 않은 충돌을 두고 “그게 민주주의다”라고 했는데, 이는 2017년 대선 경선 때 문재인이 ‘문자 폭탄’을 놓고 “경쟁을 아름답게 하는 양념”이라고 했던 발언과 오버랩됐다. 윤은 또 대선 주자 토론회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면 싸움밖에 안 된다”고 했다. ‘20세기 아날로그 선거 방식’으로 ‘21세기 디지털 선거’에 맞서는 모양새다.
◇선거 망치는 잡탕 선대위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변화를 이끄는 사람, 변화를 좇는 사람, 변화에 둔감한 사람,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역사는 변화를 이끈 사람들의 기록이다. 지금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변화에 둔감하거나 두려워하고 있다. 점점 더 2020년 총선 당시의 황교안과 미래통합당처럼 돼가는 느낌이다. ‘혁신 없는 통합’으로 패배를 자초한 그때처럼 ‘묻지 마 통합’으로 비빔밥이 아닌 잡탕밥 선대위가 돼 버렸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데이비드 브로더가 ‘정당은 끝났다(The Party’s Over: The Failure of Politics in America)’에서 유권자의 정당 소속감 약화, 정치인의 정당 의존도 약화를 들어 정당의 역할에 의문을 던진 지 50년이 지났다. 2017년 탄핵 이후 보수정당은 끝났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보수정당 몰락’을 상징하고 있다. 해나 아렌트의 통찰대로 윤석열은 “땅에 떨어진 권력을 주우러” 입당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윤석열은 민주당 대표를 지낸 김한길을 영입해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했다. 정권교체 이후의 정계개편 같은 큰 그림을 공유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 때문인지 윤은 호남 방문길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더불어민주당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국민의힘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소속 당을 폄하하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새시대위원회는 당 밖에 있다가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하는 길을 선택했을 때 필요한 조직이었을 것이다. 입당했다면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 ‘부득이’라는 단어 또한 ‘정권교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부득이 제3 지대를 선택했다’고 말할 때 썼어야 했다.
◇중도 유동성을 잡으려면
이번 대선은 정당 일체감이 약한 2030 스윙 보터와 대중에 부채의식이 없는 후보의 등장으로 인해 어느 때보다 ‘중도 유동성’ 장세가 강한 선거다. 당연히 중도와 2030을 잡기 위한 캠페인에 집중해야 하는데, 국민의힘과 윤석열은 반대로 가는 모양새다.
중도 전략가 김종인은 ‘전권’은커녕 ‘패싱’을 걱정하는 지경이고, 2030 지지를 담보하던 이준석은 ‘윤핵관’의 조리돌림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김종인은 오너가 힘을 실어줄 때만 진가를 보이는 CEO다. 박근혜와 문재인을 도울 때도 오너의 신뢰 속에서 성과를 냈다. 윤석열이 끝내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면 2020년 총선 때처럼 패배의 들러리가 되거나 수모를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던질 것이다.
36세 ‘0선’ 이준석이 당 대표가 됐을 때 국민의힘은 ‘변화를 이끄는 정당’으로 보였다. 이준석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지만 ‘선진국에서 태어난 MZ 세대’의 표심을 이해하고 21세기형 선거 캠페인을 이끌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란 점도 분명하다. 이준석은 “선대위 전체적으로 골 넣는 기획을 하는 사람도 없고, (윤석열의) 감표를 막는 전략도 거의 없다”고 현 위기를 진단했다. 맞는 말이다.
어쨌든 위기를 벗어나려면 전략을 기획하고 실행할 사람이 필요하다.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① 김종인 전권과 이준석 복귀 ② 김종인 사퇴와 선대위 붕괴 ③ 현재의 난맥 지속. 현재로는 ① 번 시나리오가 대선 승리 가능성을 가장 높여준다. ② 번 시나리오는 선대위 붕괴가 생산적 파괴가 될 것인지 보장되지 않는다. ③ 번 시나리오는 ① 번 시나리오보다 정권교체 가능성을 높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김종인 + 이준석’ 조합을 대체할 카드가 아직은 없다.
◇윤의 결단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열린민주당과 합당하고 안철수까지 연대 대상으로 삼아 외연을 넓히려 하는데, 국민의힘은 당 대표가 선대위를 이탈하는 등 핵분열 중이다. 분노한 중도와 실망한 2030이 등을 돌리면서 정권교체 여론과 윤석열 지지율이 크게 흔들린다. 윤석열과 그 캠프는 전략도 없고, 리더십도 없고, 비전도 없다. 윤석열이 선대위 정상화를 위해 결단하지 않으면 진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세줄 요약
새로운 문명과 구시대 선거 : 21세기는 새로운 기술과 문명의 시대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20세기 아날로그 선거 방식’으로 ‘21세기 디지털 선거’에 대응함으로써 전략적 판단과 정치적 언어의 한계를 노출함.
선거 망치는 잡탕 선대위 : 역사는 변화를 이끈 사람들의 기록. 윤석열과 국민의힘 캠프는 변화에 둔감하거나 두려워함. 선대위도 ‘묻지 마 통합’으로 잡탕밥 선대위가 됨. 이런 점들이 윤의 지지율 하락 원인이 되고 있음.
‘중도 유동성’을 잡으려면 : 이번 대선은 2030 스윙 보터 등장으로 ‘중도 유동성’ 장세가 강한 선거임. 윤은 일단은 ‘중도 확장 김종인 + 2030 표심 이준석’ 조합을 정상화하는 결단으로 현재의 난맥상에서 벗어나야 함.
■ 용어 설명
‘문자 폭탄 양념론’은 2017년 대선 후보 문재인이 문자 폭탄을 “경쟁을 아름답게 하는 양념”이라고 말한 것. 야당은 물론 내부에서 비판이 제기되며 문이 사과했지만 발언 적절성 논란이 오래 이어짐.
‘데이비드 브로더’는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를 거치며 미국 정치 기자의 전설로 불린 인물. 퓰리처상 수상. ‘기자는 정치권력의 내부자가 되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정치기사의 황금률을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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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122801030242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