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민의 Deep Read - 단일화 결렬 선언 이후
尹, ‘2030 신소비자’ 맞춤형 전략으로 상승… 李, ‘전통고객’만 쳐다보다 중도 길목 놓쳐 내리막
단일화 결렬에도 ‘李-尹 양강구도’는 안흔들려… ‘중도 유동성’ 겨냥한 ‘혁신’해야 승리
윤석열·안철수의 야권 후보 단일화 작업이 일단 결렬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렇지만 단일화 결렬 선언이 ‘이재명 대 윤석열’의 양강 구도를 크게 흔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의 지지율 상승은 결과적으로 2030 ‘신소비자’ 집단에 강한 소구력을 가진 선거전략의 힘으로 분석된다. 이재명이 고전하는 이유는 4050 ‘전통 고객’만 바라보면서 혁신을 외면한 때문이다. 이재명-안철수 역(逆)단일화가 성사된다면 판의 출렁임이 있을 수 있겠지만, 둘의 단일화 가능성은 희박하다.
◇단일화 결렬 해석
지지율이 앞선 후보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게 단일화의 문법이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DJ)이 김종필(JP)에게 그랬고, 2012년 대선 때 문재인이 안철수에게 먼저 요구했다. 이번에 안이 윤에게 단일화를 먼저 제안한 건 거꾸로 됐다.
단일화 논의는 여러모로 보나 쉬운 게 아니다. 무엇보다 ‘담판’ 과정에서 잡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DJP 정도의 고수 간 협상이니까 단일화를 할 수 있었다. 안철수는 탈문재인, 탈이재명 표심의 저수지, 혹은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측면이 강하다. 온전한 안철수 표가 아니었고 언제든 윤석열에게 흘러갈 수 있었던 표심이었다. 단일화 결렬 선언이 약간의 진폭을 가져오겠지만, 현재의 양강 구도를 흔들 정도는 아니다. 사실상 ‘여론에 의한 단일화’는 완성되고 있는 과정이라 봐야 한다.
그래도 끝까지 단일화를 추진하는 게 맞는다. 안철수의 정직성과 공적(公的) 이미지가 윤석열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 주고 5060의 안정적 지지를 가능하게 하며 무엇보다 압도적인 정권교체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밑 협상이 지지부진해 아름다운 단일화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아직 그 가능성이 완전히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유권자는 2020년 총선과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를 기억한다. 총선 때 안철수는 정권심판론을 내세워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는 무공천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선에서는 오세훈과 선거연대를 하고 단일화를 이뤘다. ‘국민의힘+국민의당’ 합당 약속도 했다. 줄곧 정권교체 행보를 해온 것이다. 지금 와서 안철수가 이재명과 역단일화를 추진하거나 연대하는 건 ‘자기부정’이 될 수 있다. 안철수가 이재명으로 시선을 돌리기 어려운 이유다.
◇정치는 혁신이다
시장을 지배했던 기업이 기울어지는 것은 변화가 두려워 혁신하지 않은 탓이다. 혁신은 성공 공식을 버릴 때 시작된다. 정치도 서비스업이다. 매력을 잃는 순간 대중의 외면을 받는다.
정치를 지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자기 생각대로 현실을 바꿀 물리적 힘이 있거나(독재), 아니면 현실에 맞춰 자기 생각을 바꿔야 한다(혁신). 독재가 불가능하다면 대중의 요구에 맞춰 변해야 살아남는다. 정당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보다 세상이 정당을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
민주당과 이재명이 고전하는 이유는 ‘잘 팔리던’ 낡은 제품에만 의존하다 유행에 민감한 2030과 MZ세대 고객을 잃은 탓이다. 즉 혁신의 부재가 문제다.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매력 있는 신제품을 내놓지 못해 삼성과 애플에 시장을 내주고 몰락한 것과 같다. 민주당은 충성도 높은 4050 전통 고객만 믿다가 시장 지배력을 잃었다.
반면 윤 후보 측은 전통적 제품에만 집착하지 않고 젊은 고객 맞춤형 제품을 내놓으며 빠른 속도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특히 지금은 강한 유동성의 시대다. 식당으로 비유하면 유동인구가 늘어난 상권 변화를 읽고 길목을 지켜 젊은층이 좋아하는 메뉴를 추가한 것이 주효했다.
2030은 ‘능력주의’ 세대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저자세를 보이는 중국과 북한에 비판적이고, 민주당의 오랜 연대 대상인 ‘연공서열’ 중심의 민주노총·한국노총에 강한 불만을 제기한다. 민주당은 젊은 세대가 예민해 하는 젠더 이슈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한다. 유례없는 격차 시대에 태어나 ‘공정’에 민감한 세대에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내로남불은 위선의 극치로 보인다.
◇이탈, 항의, 충성의 문법
앨버트 허시먼은 저서 ‘이탈, 항의, 충성’(Exit, Voice, and Loyalty)에서 기업 서비스에 문제가 생겼을 때 소비자가 보이는 반응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하나는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는 ‘충성’. 정당으로 치면 집토끼, 고정 지지층이다. 둘은 조직의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항의’.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조직 내 개혁파다. 셋은 조직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탈’. 실망하면 언제든 지지를 철회하는 산토끼, 스윙보터다.
‘이탈’은 기존 조직의 비효율성과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고 온존시킨다. 남아서 ‘항의’할 목소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민주당은 강성 친문에 갇혀 당내 이견을 허용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의 새누리당보다 훨씬 경직됐고, 이것이 절망한 이들의 ‘이탈’을 불렀다. 박근혜 정권과 보수동맹이 중도 보수의 이탈로 붕괴했던 것처럼 문재인 정권과 민주동맹도 개혁파 정치인과 2030의 이탈로 무너지는 중이다.
위기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자초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원칙 없는 패배’를 경멸했다. 문 정권과 민주당은 ‘원칙 있는 패배’가 두려워 ‘원칙 없는 승리’를 챙기려다 ‘원칙 없는 패배’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
제품 혁신도 없고 서비스 개선도 게을리하다 시장점유율은 낮아지고 평판은 나빠졌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는 이재명과 민주당이 위기라는 신호를 강하게 보내고 있다. 기업의 평판과도 같은 호감도도 나빠지고 있다. 반면 윤석열은 호감도도 개선됐고 대부분 조사에서 지지율 40%를 돌파했다.
◇중도 유동성의 향배
이번 대선은 스윙보터가 캐스팅보트를 쥔 ‘중도 유동성’ 장세다. 상권 변화를 읽고 중도 유동인구를 잡는 쪽이 승리한다. 오랜 단골만 믿고 혁신을 외면하다간 유동인구를 놓치고 도태된다.
유권자는 좋아해서 찍거나, 필요해서 찍거나, 상대가 싫어서 찍는다. 대선에선 좋아하고 필요해서 ‘찍고 싶은’ 후보가 어찌할 수 없이 ‘찍어 주는’ 후보를 이길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이 안철수와의 역단일화를 통해 승리의 퍼즐을 맞추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간 정권교체를 위한 정치 궤적을 그려온 안철수가 ‘자기부정’을 통해 이재명과 손을 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세줄 요약
단일화 결렬 해석 : 단일화 결렬 선언이 현재의 이재명-윤석열 양강 구도를 흔들 정도는 아님. 사실상 ‘여론에 의한 단일화’는 완성되고 있는 과정. 이재명-안철수 역단일화는 안철수의 ‘자기부정’이어서 실현되기 어려움.
정치는 혁신이다 : 정치도 서비스여서 혁신이 운명을 가름. 尹 지지율 상승은 2030 ‘신소비자’ 집단에 강한 소구력을 가진 선거전략의 힘. 李의 고전 이유는 4050 ‘전통 고객’만 바라보면서 혁신을 외면한 때문.
중도 유동성의 향배 : 조직이 살려면 구성원의 ‘이탈’을 막고 조직 내 ‘항의’의 목소리를 만들어내야 함. 민주당은 당내 이견을 허용하지 않아 중도의 이탈을 막지 못했음. 오랜 단골만 믿고 혁신에 둔감하면 도태됨.
■ 용어 설명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대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획득하는 철학. 경제적 자유주의와 연관돼 있음. 이에 반해 주로 기업에서 승진·보수 등에서 고참 순으로 우대하는 것을 ‘연공서열’이라 함.
‘앨버트 허시먼’은 독일 태생의 유대인 경제학자. 초기 개발경제학에 관심을 가졌는데, 점차 퇴보하는 기업·조직·국가에 대한 반응을 연구.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로 알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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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2022201030842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