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Call Us 02-784-2610
게시판 게시물
nunjaragi01
2023년 2월 13일
In News
■ 박성민의 Deep Read - 與 전당대회와 윤심 논란 ‘尹=1호 당원’ 맞지만 ‘윤심=당심=민심’ 주장은 다양성 속 개혁·안정 추구하는 보수당 기치 위배 정권 위기는 ‘선거연합’ 스스로 해체할 때 찾아오는 것… 자유 신봉자인 대통령, 이견 수용해야 정치는 어렵고 무섭다.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2년간 여당을 이끌고 갈 당 대표를 뽑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그렇다. 전당대회인지 분당대회인지 헷갈린다. 다양성을 상실한 정당에서 건강성을 갖기는 불가능하다. 지금 여당 전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 당심이 민심을 만드는 게 아니라 민심이 당심을 규정한다. 민심에 겸허해야 정당도 정치도 건강해지고 윤석열 정부의 성공적인 국정 운영도 기대할 수 있다. ◇다양성이 건강성이다 나경원 전 의원에 이어 안철수 의원에 대해 가해지는 친윤 진영과 대통령실의 집단 공격은 낯선(나경원 표현) 것을 넘어 살벌하다. (절대 ‘반윤’이 될 수 없는) 나 전 의원을 향해서는 친윤 장제원 의원이 “반윤의 우두머리”라고 몰아붙였고, 안 의원을 향해서는 대통령실 관계자가 윤 대통령의 발언이라고 전하면서 “윤핵관 표현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국정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공격했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안 의원의 ‘윤안 연대’ 표현에 대해 “무례하다”면서 “엄중 경고해 달라”고 당에 주문했다. 윤 대통령이 경선판에 직접 나선 모양새처럼 됐다. 지금껏 과거 청와대를 포함해 대통령실이 여당 전대에 이토록 노골적이라 할 만큼 개입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지난해 말 장제원 의원은 “윤심이 당심이고, 당심이 민심이다”고 말했다. 논리적으로는 ‘윤심이 민심이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전당대회에서 우리 당을 완벽하게 정비해 일사불란하게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도 했다. 장 의원의 말에 대해 ‘옳은가’와 ‘가능한가’ 두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결론은 ‘옳지 않다’와 ‘가능하지 않다’이다.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순간 정당은 죽는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 정당 안에서는 자유주의 세력과 보수 세력이 ‘개혁’과 ‘안정’으로 충돌하면서 만들어 낸 다양성이 당을 강하게 만들었고 승리를 가져다줬다. 정체성이냐 외연 확대냐, 집토끼냐 산토끼냐의 치열한 논쟁은 당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박근혜 정권 때 (국정교과서 국면에서)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고 한목소리로 충성을 보이라고 몰아붙인 결과 보수는 분열하고 탄핵을 맞았다. ◇민심-당심-윤심 민주주의의 장점은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일사불란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나 전 의원은 전대 불출마선언에서 “질서정연한 무기력함보다는 무질서한 생명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자유가 획일보다, 민주가 억압보다 훨씬 강하다. ‘자유주의’ 신봉자로 알려진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향해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닙니다”고 항변했듯 당 대표도 대통령 부하가 아니다.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건 자유주의가 아니다. 이준석 전 대표를 끌어내릴 때만 해도 방식이 거칠긴 했어도 대통령과 당 대표의 충돌을 끝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는 당원이 많았다. 나 전 의원을 주저앉힐 때는 (나 전 의원의 처신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좀 심하지 않나”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당원이 반반으로 갈렸다. 이번에 안 의원마저 ‘반윤’과 ‘적’으로 몰아붙이자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당원이 많아졌다. 친윤 세력은 윤심을 얻으면 당심을 얻고, 당심을 얻으면 민심을 얻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당심이 민심을 만들지 않는다. 민심을 얻어야 당심을 얻는다. 그리고 민심과 당심을 얻을 때 궁극적으로 윤심도 변화한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본의 아니게’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맞섰던 것처럼 안 의원도 ‘본의 아니게’ 윤 대통령과 맞서게 됐다. 한국 정치사에서 대통령은 대개 현직 대통령의 대척점에 선 사람의 몫이었다. 대통령에게 가까이 가는 사람은 대통령 자리에서 멀어진 게 한국 정치의 특성이었다. 총리 출신과 여당 대표 출신이 대통령이 되지 못한 건 그런 이유다. 야당 당 대표는 대통령과 대척점에 설 수 있지만 여당 대표는 그렇게 처신하기 힘들다. 여당 대표직이 정치적 무덤인 이유다. ◇尹의 플랜A, 플랜B 정치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생각대로 현실을 바꿀 힘이 있거나 아니면 현실에 맞춰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김기현 의원을 밀어 국민의힘을 일사불란하게 한목소리를 내는 ‘윤석열당’으로 바꿀 힘이 있을까. 거꾸로 ‘김기현 체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어쩔 수 없이 ‘안철수 체제’를 현실로 받아들일까. 결국 윤 대통령 지지율과 안 의원의 지지율이 승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①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상승하고 김 의원 지지율이 안 의원의 그것을 앞서면 안 의원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②윤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하는데도 김 의원이 안 의원에게 밀린다면 김 의원이 고민할 것이다. ③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안 의원이 김 의원을 월등히 앞서는 조사가 속속 발표되면 윤 대통령의 고민이 커질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떨어지는데 김 의원이 앞서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①과 ②의 경우 대통령실과 친윤은 ‘플랜A’ 김기현을 밀어붙이려 할 것이다. 문제는 시나리오 ③이다. 이때 윤 대통령의 선택지는 두 개다. ‘이준석 시즌2’를 각오하고 끝까지 ‘플랜A’를 고수하는 것, 아니면 현실을 받아들여 ‘플랜B’ 안철수 대표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후자를 택하면 ‘단일화 시즌2’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현대 정치사는 정권의 위기가 야당의 공격이 아니라 대통령을 만들어낸 ‘선거연합’을 스스로 해체하면서 자초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자기가 앉아 있는 의자 다리를 스스로 자른 격이다. 정치는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여기엔 예외가 없다. 이미 이준석·유승민·나경원을 내친 친윤과 대통령실이 안 의원마저 내칠 것인가 아니면 회심(回心)할 것인가, 기로에 선 형국이다. ◇보수의 가치 헌법 제7조와 공직선거법 제9조는 선거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적시하고 있다. 국민의힘 1호 당원이면서 대한민국 1호 공무원이기도 한 윤 대통령을 보좌하는 대통령실이 깊이 되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윤심이 당심이고 당심이 민심’이라는 획일적 논리를 설파하는 건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개혁과 안정을 추구한다는 보수정당의 기치에 위배된다. 자유를 신봉하는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깊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용어설명 ‘선거연합’은 선거 승리를 위한 연합. 유럽의 정치 전통에서는 선거 승리 이후 단순한 ‘정책연합’으로 가기도 하지만 연립정부·공동정부를 포함한 ‘정부연합’과 ‘통치연합’으로 발전하기도 함.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관련, 공직선거법 제9조①항은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나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함. ■ 세줄요약 다양성이 건강성이다 : 나경원에 이어 안철수에 대한 대통령실의 공격이 이어짐. 친윤 세력은 ‘윤심이 당심이고 당심이 민심’이라는 논리 내세워. 마치 윤석열 대통령이 경선판에 직접 나선 모양새처럼 비쳐져. 민심, 당심, 윤심 :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개혁과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보수정당의 기치임.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건 자유주의가 아님. 민심에 겸허하지 않으면 당도 정권도 위험에 처해질 수 있어. 플랜A, 플랜B : 정권의 위기는 ‘선거연합’을 스스로 해체할 때 찾아오는 것. 안철수의 지지율 우세가 계속된다면 대통령실도 민심을 의식해 ‘김기현 당 대표’ 고수라는 플랜A만을 고집하기는 힘들어질 수도. 원문보기 :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3020701030430000001
0
0
96
nunjaragi01
2023년 2월 13일
In News
■ 박성민의 Deep Read - 민주당의 ‘탈진실 정치’ 김의겸·장경태 ‘묻지마 폭로’로 폐해 드러나…거짓을 ‘대안적 진실’ 로 만들어 공론장 마비 운동권 언어에 갇혀 정치 아닌 전쟁에 몰두… ‘개혁’ 으로 포장한 기득권 장악에 시간 허비 인터넷 매체 ‘더 탐사’의 제보를 검증도 없이 폭로한 김의겸 의원이나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겨냥해 무차별적으로 ‘빈곤 포르노·조명 촬영’을 주장한 같은 당 장경태 의원의 행태는 모두 ‘포스트 트루스(탈진실)’의 해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두 의원 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이 외에도 정치권 탈진실 사례는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보다 민주당 쪽에서 더 많이 확인된다. 한국 정치사에서 오랫동안 개혁의 계보를 이어오면서 진실·정의 등 덕목을 강조해 왔던 민주당이 왜 이렇게 타락했을까. 정치가 아니라 전쟁을 치르는 관성과 과오, 개혁 주체를 좁혀 주류가 될 기회를 날린 전략적 패착, 정권을 잡거나 다수당이 돼도 버리지 못하는 비주류 의식, 이제는 DNA처럼 내장된 일상적 파시즘 때문이다. ◇개혁 걷어찬 민주당 먼저 역사적 맥락에서 찾아보자. 1987년 체제 수립 이후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정동영·문재인·이재명 다섯 명의 대통령 후보를 뽑았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당 일체감’을 정책보다는 인물에 투사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보수 엘리트 카르텔에 승리한 ‘영웅 서사’를 갖고 있다. 김대중·노무현·김근태 등은 민주당의 정체성이다. 독재를 몰아낸 ‘민주화’ 신화에 큰 자부심이 있다. 김대중은 민주당의 정책 목표를 민주주의·한반도 평화·서민경제 세 가지로 제시했다. 노무현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나라’를 꿈꿨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이 꿈꾸는 목표는 ‘주류 교체’다. 문재인은 2017년 대선 전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가장 강렬하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정치의 주류 세력 교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탄핵, 2017년 문재인 정권 창출, 2018년 지방선거 압승으로 자신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2020년 총선 압승으로 ‘주류 교체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한 듯 했다. 대통령과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이른바 검찰개혁·사법개혁·언론개혁을 밀어붙였다. 문제는 민주당이 말하는 개혁은 제도 변화가 아니라 사람 교체였다. 즉 민주당이 말하는 개혁은 ‘장악’의 포장지였을 뿐이었다. 민주당은 촛불과 투표로 권력이나 기득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유능했지만 새로운 체제나 제도를 만드는 데는 무능했고 실제로 관심도 없었다. 가장 큰 아픔은 개헌을 통한 제도 혁신의 기회를 날린 것이다. 234명의 국회의원이 함께 연대해 만들어 냈던 ‘대통령 탄핵’을 ‘개혁 연대’로 발전시켜 개헌을 통한 ‘2017 체제’를 만들 역사적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 보냈다. 2020년 총선에서 180석 의석을 얻었을 때도 ‘2020 체제’로 전환할 좋은 기회였지만 민주당은 나 몰라라 했다. 민주당은 개혁 ‘대상’만 넓히고 개혁 ‘주체’는 좁히는 전략적 패착으로 ‘주류’가 될 기회를 걷어찼다. ◇그 안의 파시즘 세상을 ‘적’과 ‘동지’로 구분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다. 민주화 주역인 586세대가 민주당 주축 세력으로 성장하자 아이러니하게 민주주의가 죽어간다. 이들은 원로교수 최장집이 날카롭게 비판한 대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 임지현은 ‘우리 안의 파시즘 2.0’에서 “우리가 성취했다고 믿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상대를 용납하지 않는 일상의 오징어 게임으로 퇴화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가 전편 ‘우리 안의 파시즘’이란 책을 써 진보 운동권을 발칵 뒤집어놓은 건 김대중 정부 출범 1년 후인 1999년 일이었다. ‘정의를 독점한다고 착각하는 좌파의 도덕적 폭력은 극우 반공주의와 결을 같이한다’는 지적에 진보 진영이 분노로 들끓었다. 정치권과 국민을 촛불과 적폐로 갈라치기 했던 과오에 대한 비판은 ‘청와대 정부’의 저자 박상훈의 지적으로 이어진다. 그는 “대통령이 직접민주주의를 말하며 국민 참여를 주도하려 하면 민주정치는 위험에 처한다. 상대를 동료 시민이나 동료 정치인이 아니라 공격해야 할 대상으로 몰아붙여도 상관없다, 그런 것이 관행이 될 때 민주주의는 스트롱 맨의 게임으로 전락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화 이후 ‘부족주의’로 퇴화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에이미 추아는 대중의 정치적 행동은 이데올로기보다 ‘부족 본능’에 더 영향을 받는다고 갈파했다. ‘정치적 부족주의’ 현상은 노무현 이후 박근혜-문재인 정권을 거치며 극단화했다. 586 정치인들은 과거에 민주화운동 시절 겪었던 희생자의 경험과 지위를 재생산하고, ‘희생자의식’의 세습을 통해 현재 자신의 행위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정치 DNA가 돼 버린 ‘일상적 파시즘’과 ‘대중 독재’ 의존성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런 정치문화 속에서는 당 대표인 ‘이재명 리스크’로 민주당이 분화하고 야당이 재구성된다 해도 별 희망이 없다. ◇탈진실이란 반지성 정치적 부족주의는 포퓰리즘과 함께 탈진실로 상징되는 반지성주의 시대를 열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극단적 다원주의를 불렀다면, 포스트 트루스는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는 극단적 진영 논리를 불렀다. 상대 주장은 사실도 ‘가짜 뉴스’가 되고, 우리 주장은 거짓도 ‘대안적 진실’이 된다. 사실과 주장, 진실과 허위, 정보와 오락, 신호와 소음이 뒤섞이면서 공론장은 마비됐다. 듣고 싶은 것만 들리고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중증이 됐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확증 편향’을 확산시키는 주범이다. 민주당이 정치의 본령인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타도’와 ‘청산’ 같은 전쟁·혁명 등 운동권 언어에 갇혀 있는 이유가 뭘까. 주류 교체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순간 왜 다시 비주류의 지위로 스스로 돌아갔을까. 그건 아마도 운동권 속에 각인된 아웃사이더, 즉 비주류 DNA 탓일 수도 있다. 실제로 민주당은 야당 포지션에서 투사처럼 싸울 때 훨씬 뛰어나고 편안해 보인다. 스포츠에서 ‘승리 정신’ 즉 ‘위닝 멘털리티’가 없으면 이기고 있어도 질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정치에서도 ‘주류 정신’이 없으면 대통령이 되고 국회를 압도적으로 지배해도 피해망상에 시달린다. 주류 정신이 없으면 주류가 될 수 없다. 민주당을 지배하고 있는 ‘희생자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비주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김근태가 남긴 민주화운동의 유산을 탕진했다. 민주화라는 상징 자본을 잠식해 버린 민주당이 주류 교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민주당은 지금 정체성과 리더십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두 다리가 풀린 권투선수 격이다. 민주당은 정말 한국 정치 주류가 되려는 의지라는 게 있기는 할까.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용어설명 ‘정치적 부족주의’는 에이미 추아 미 예일대 교수가 정치적 대립·혐오의 원인을 좌우 구도가 아닌 부족주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 집단 본능이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지에 대해 연구. 우리 안의 파시즘’ 혹은 ‘일상적 파시즘’은 임지현 교수가 1999년 처음 제기해 사회적 담론이 된 개념. 도덕성을 독점하려는 좌파의 폭력성이 극우 매카시즘과 결을 같이한다는 의미를 담음. ■ 세줄 요약 개혁 걷어찬 민주당 : 민주당의 최대 관심은 ‘주류세력’ 교체임. 주류 교체를 위해서는 체제와 제도를 개혁해야 함. 하지만 민주당은 개혁 ‘대상’만 넓히고 ‘주체’는 좁히는 전략적 패착으로 ‘주류’가 될 기회를 걷어참. 그 안의 파시즘 : 민주화운동 출신 586이 민주당 주축이 되면서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는 죽음. 이들은 세상을 적과 동지로 구분하는 극단적 진영논리에 빠짐. 정치적 부족주의와 일상적 파시즘은 이들의 정치 DNA가 됨. 탈진실이란 반지성 : 정치적 부족주의는 포퓰리즘, 탈진실과 함께 반지성주의를 불러옴. 과거 운동권의 언어에 갇힌 진보는 가짜 뉴스를 양산하고 정치가 아닌 전쟁에 몰두하며 기득권 장악에 모든 시간을 허비하는 중. 원문보기 :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2112901030630000001
0
0
17
nunjaragi01
2023년 2월 13일
In News
■ 박성민의 Deep Read - 한국 정치의 몰락 국민의힘은 혁신 두려워하고 민주당은 혁신에 둔감… ‘정치 귀환’의 시대지만 정당 플랫폼 기능 상실 美정치, 최강 엘리트 덕분에 여전히 최강 패권… 韓, 민도의 수준·밀도에 맞는 ‘정치의 재구성’ 절박 전쟁과 혁명의 시대에는 정치가 역사무대의 주인공이었다. 20세기가 그랬다. 미국 정치가 세계를 이끌어갔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신호로 엄습한 세계화의 물결 속에 역사무대의 주인공은 경제와 소프트파워로 대체됐다. 정치가 이끌던 시대는 종언을 고하는 듯했다. 그때도 국제정치의 주도자는 미국이었다. 이제 다시 전쟁의 시대, 탈세계화의 시대가 찾아왔다. 기 소르망이 미국-이라크전쟁 와중에도 찬사를 보냈던 ‘미제’(Made in USA·2004년)는 약발이 많이 떨어졌지만, 미국 정치는 여전히 세계 최강의 패권을 행사 중이다. 평균 민도가 미국보다 높다는 한국 정치는 갈수록 퇴화한다. 민도에 맞는 정당의 재구성, 정치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정치의 퇴조 냉전 끝 무렵이던 1980년대까지 미국 대통령은 세계 최고의 지도자였다. 냉전이 끝난 1990년대 이후 빌 클린턴의 위상은 많이 떨어졌다. 빌 클린턴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이름이 수직 상승했다. 2000년대 들어서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는 극단적인 진영 싸움으로 더욱 위상이 떨어졌다. 그나마 그때가 좋았다. 2016년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는 계파의 수장에 불과했다. 21세기 들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질서가 무너졌다. 경제와 첨단기술의 시대가 되자 세계 지도자 자리를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같은 엔지니어들이 차지했다. 정치는 시간·공간·영향력·시스템 등에서 경제나 문화와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앨빈 토플러는 이미 ‘부의 미래’(2006년)에서 여러 조직의 혁신 속도를 자동차 속도에 비유했다. 기업이 시속 100마일로 달리는데 정치는 시속 3마일로, 법은 1마일로 달린다고 한탄했다. 현재의 정치 시스템은 지식 기반 경제의 속도와 고도의 복잡성을 다룰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세상이 365일 24시간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AI 시대에 정치와 법은 산업시대 낡은 기계로 대항하고 있다. 기업은 다른 나라에 공장을 지을 수도 있고 투자할 수도 있다. 스포츠 선수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뛸 수 있다. 영화감독이나 배우도 국경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후 “1인치 장벽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미 장벽은 무너지는 상태였고, 유튜브 스트리밍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모두 연결돼 있다. 이제는 외국어 영화가 이런 상을 받는 게 사건으로 취급되지 않을 것 같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올 것 같다”라고 했듯, 정치는 퇴조했다. ◇엘리트와 대중 정치의 퇴조와 함께 찾아온 또 하나의 변화는 엘리트와 대중의 위상 역전이다. 피터 드러커가 예견한 대로 엘리트가 대중이 되고, 대중이 엘리트가 됐다. 정치인은 학력·경제력·정보력·기술 적응력에서 대중을 앞서지 못한다. 필자는 2006년에 펴낸 책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중이 정치인을 두려워하는 시대는 가고, 정치인이 대중을 두려워하는 시대가 왔다.…여기 원형극장이 있다. 노예 출신의 검투사들은 피를 흘리며 싸우다 죽어간다. 황제와 귀족들은 술을 마시며 이를 즐긴다. 그러나 지금 칼을 들고 싸우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놀랍게도 황제다. 대중들은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다. 정치인은 더 이상 통치하는 자가 아니다.” 정치인은 ‘죽지 않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원형극장의 검투사이거나, 피를 흘리며 바닥을 기는 격투기 선수 신세가 된 것이다. 얼마 전 이준석 대표가 자신과 윤석열 대통령을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와 코모두스에 비유한 것도 그런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 그 와중에 정당은 ‘플랫폼’ 기능을 상실했다. 정당이 오프라인 매장이라면 최근 정치는 온라인으로 대중과 직거래하는 방식으로 바뀐 지 오래다. 트럼프, 마크롱, 윤석열 모두 정당 몰락의 상징이다. 필자는 ‘정치의 몰락’(2012년)에서는 “냉전이 끝나고 세계화가 시작되자 정치의 성취는 10분의 1로 줄어들고 경제와 문화, 스포츠의 성취는 열 배로 커졌다. 전쟁과 혁명의 영웅들이 차지하던 자리를 기업인들과 문화, 스포츠 스타들이 채우고 있다”고 썼다. ◇정치의 귀환과 한국 이제 첨단기술을 놓고 격화하는 미·중 전략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미국과 중국의 대만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강대국 정치의 귀환’과 함께 전쟁의 시대를 예고한다. 세계화의 시대도 막을 내리고 있다. 경제·첨단기술·문화예술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자국의 이익을 지키려는 정치의 영향력과 역할이 되살아났다. 변화에 민감하고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할 줄 알아야 역사를 이끌 수 있다. 세상에는 네 부류가 있다. 변화를 이끄는 부류, 변화를 뒤쫓는 부류, 변화에 둔감한 부류, 변화를 두려워하는 부류. 정치도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에서 변화를 이끄는 정치집단은 없다. 변화를 뒤쫓는 정당조차 없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변화에 둔감하다. 그나마 ‘새로고침위원회’가 유권자 지형을 여섯 그룹으로 나눈 보고서를 발표했지만 현재 극도의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정당정치나 의회정치의 퇴조에 대한 근본적이고 신랄한 반성은 없다. 당명 개정을 포함해 전통적인 민주당을 재구성하려는 의지는 약해 보인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부류다. 내부 갈등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이준석 대표 체제의 ‘낯선’ 변화에 놀래 ‘익숙한’ 과거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기득권·낡음·과거·분열을 상징하는 당이 돼 버렸다. 내년 초 전당대회에서 변화를 좇는 방향으로 선회하지 않으면 총선에서 침몰할 것이다. 현재 ‘K-기업·문화·스포츠’는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한국산(Made in Korea)은 최고를 뜻한다. 그사이 정치는 한국의 리스크로 자리 잡았고, 역대 대통령은 최대 리스크가 됐다. 한국의 정치는 실패를 재생산하고 있다. ◇정치 재구성 오늘날 ‘미제’는 한국산 등에 밀려 속속 최고 자리에서 물러나고 있지만, 세계 정치의 최강 패권은 여전히 미국이다. 그건 0.01%의 뛰어난 정치 엘리트가 나라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변화에 둔감하고 무능한 엘리트들이 점령한 한국 정치는 세계사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퇴보 중이다. 그나마 민도가 높아 대한민국이 버티고 있다. 민도의 수준과 밀도에 맞는 정치의 재구성이 절박해졌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용어설명 ‘Made in USA’는 프랑스 지성 기 소르망이 2004년에 쓴 문명 비평서. 우리가 소비하는 많은 것이 ‘미제’인 만큼 감정적 관념을 넘어 미국을 바로 아는 게 우리를 제대로 보는 것이라고 강조. ‘부의 미래’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2006년 삶의 지평을 열어 줄 혁명적 부(富)에 대해 펴낸 책. 부의 혁명이 단순한 경제학적 의미를 넘어 사회·제도·교육·문화·정치적 혁명이라고 주장. ■ 세줄 요약 정치의 퇴조 : 20세기 전쟁과 혁명의 시대에는 정치가 역사무대의 주인공이었고 미국 정치가 세계 정치를 주도했음. 2000년 이후 세계화의 물결 속에 소프트파워가 중요해졌고, ‘K-기업·문화’가 세계 속에 우뚝 섬. 엘리트와 대중 : 정치의 퇴조와 함께 찾아온 또 하나의 변화는 엘리트와 대중의 위상 역전. 정치인은 학력·경제력·정보력·기술 적응력에서 대중을 앞서지 못함. 정당은 변화에 둔감해져 점점 ‘플랫폼’ 기능을 상실. 정치의 귀환과 한국 : 미·중 갈등, 우크라戰 등으로 강대국 정치가 귀환 중. 미국은 유능한 엘리트 덕분에 여전히 세계를 주도. 변화에 둔감한 무능 엘리트들이 점령한 한국 정치는 퇴보를 거듭. ‘정치 재구성’이 절박함. 원문보기 :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2092701030630000001
0
0
18
nunjaragi01
2023년 2월 13일
In News
■박성민의 Deep Read - 尹 지지율 하락의 ‘코드 읽기’
유권자 지형, 진보 30% - 중도진보 20% - 중도보수 30% - 보수 20%… 尹, 대통령다운 이미지 부재로 지지율 급락
2017년 ‘박근혜 탄핵’ 이후론 ‘진보동맹’ 더 굳건… 보수, ‘주류교체 전쟁’ 승리하려면 중도와 연대·통합이 필수
한국갤럽의 최근(7월 4주차)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28%를 기록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팬덤도 없고 지역적 토대도 없어 지지 기반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로 가파른 하락 폭과 속도일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힘들었다. 믿었던 선발 투수가 1회에 대량실점한 꼴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급락한 것을 설명하려면 절대적 지지층이 역대 어느 대통령 때보다 취약하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좋아해서’ 찍은 팬덤이 많고, 이명박 대통령은 (내 주머니를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필요해서’ 찍었다면, 윤 대통령은 ‘상대가 싫어서’ 찍은 사람이 많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48.56%)은 ‘정권 교체를 원한 유권자의 총합’일 뿐이다.
윤 대통령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보수동맹은 전체 유권자의 20%에 불과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진보동맹이 30%에 이르는 것과 비교할 때 취약하기 짝이 없다. 윤 대통령이 국정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려면 대통령다움을 회복하고 선거연합 정신을 살려 보수·중도 동맹을 복원해야 한다.
◇대통령다움의 부재
윤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을 불러온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민이 마땅히 기대한 대통령다운 이미지의 부재, 다른 하나는 선거연합의 해체. 두 가지 모두 윤 대통령 탓이다. 경제 탓, 문재인 정권 탓, 언론 탓, 야당 탓, 이준석 탓, 김건희 탓, 권성동 탓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첫째 대통령다움 부재. 국민은 대통령에게 높은 수준의 능력·품격·헌신을 기대한다. 전쟁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올 때 대중은 대통령에게 강력한 리더십을 원한다. 통찰력·결단력·추진력·설득력·절제력·용기·담대함뿐 아니라 너그러움까지 요구한다. 결국 ‘대통령답다’는 것은 지도자 이미지·공적 이미지·혁신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위기는 이 세 가지 이미지가 모두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취임사에서 윤 대통령 자신이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한 ‘반지성주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도 치명적이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돼야 합니다.…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의 ‘반지성주의’에 절망한 중도층은 ‘문재인 정권과 같은’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문재인 정권과 다른’ 윤석열 정부를 원했다. 그러나 윤 정부는 “문 정권도 그러지 않았나” “그래도 문재인 정권보다는 낫지 않나”식 대응으로 중도를 다시 절망에 빠뜨렸다.
◇선거연합의 해체
둘째 선거연합의 해체다. 역대 모든 정권이 스스로 선거연합을 깨면서 무너졌다. 김영삼 정권은 ‘3당 합당’ 해체, 김대중 정권은 ‘DJP 연합’ 해체, 노무현 정권은 민주당 해체와 열린우리당 창당, 이명박 정권은 박근혜의 “국민도 속고 저도 속았습니다” 발언, 박근혜 정권은 새누리당 지도부와 충돌로 무너졌다. 윤석열 정권은 4·7 재·보선, 대선, 지방선거 승리를 가져다준 이른바 ‘세대포위론’, 즉 ‘2030 세대’와 ‘6070 세대’ 동맹을 해체하면서 지지율이 급락 중이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보수동맹’이 구축된 이래 한국 정치의 기본 지형은 민주자유당 대 반민주자유당,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을 기본 구도로 했다. 한마디로 보수 정당만 독자 집권이 가능했던 ‘보수 상수’의 시대였다. 진보진영은 ‘DJP 연합’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등 다른 야당과의 통합·연대·단일화 없이는 승리가 불가능했다.
2017년 탄핵 이후 근본 지형이 변했다. 지금은 민주당 대 반민주당의 시대, 즉 ‘진보(민주당) 상수’ 시대다. 민주당은 정의당과의 연대 전략도 폐기했다. ‘윤석열·안철수 단일화’에서 보듯 과거 민주당 전매특허였던 통합·연대·단일화는 이젠 보수 정당 몫이 됐다.
‘보수동맹’과 ‘민주동맹’의 세력 균형은 50 대 50으로 팽팽해 보인다. 하지만 ‘콘크리트 지지층’에서 민주동맹이 보수동맹보다 더 굳건하다. ‘주류 교체 전쟁’에서 보수가 열세인 이유다.
◇취약한 보수동맹
한국의 유권자 지형을 거칠게 분류하면 ①30%-②20%-③30%-④20%다. 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민주당을 찍는 층, ②는 대체로 민주당 후보를 찍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보수나 중도 후보로) 스윙하는 중도 진보층, ③은 대체로 보수 후보를 찍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진보나 중도 후보로) 스윙하는 중도 보수층, ④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보수 후보를 찍는 층이다.
이는 문 대통령 재임 시 지지율 최저치가 29%였던 이유를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의 현 지지율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맹목적 지지층은 민주동맹이 더 많고, 합리적 지지층은 보수동맹이 더 많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빠르게 떨어진 이유다.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권처럼 똑같이 하겠다”고 하면 지지율은 20% 초반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 “문 정권은 이렇게 했지만 윤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면 40%대로 회복될 것이고, “국민 통합을 위해 민주당과 모든 것을 함께 풀어가겠다”고 하면 50%를 넘을 것이다.
지지율을 급락시킨 강경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로 일관하면 지지율 반등은 불가능하다. 물론 민주당이 이재명 체제가 되면 ‘이재명이 싫어서’ 윤석열을 지지하는 층 일부가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안정적 국정 운영 동력은 지지율 55%다. 정치에서 35% 대 55%는 매우 중요한 수치다. 대통령 긍·부정 평가, 정권 교체 동의 여부, 정책에 대한 지지 모두 35% 밑으로 떨어지면 국정 동력은 급속히 떨어진다. 이번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정 운영 긍정 평가는 28%, 부정 평가가 62%였다. 중도는 24% 대 66%였다.
◇중도 확장을 위해
레드팀이 사라지면 ‘플랜 B’도 없다. ‘플랜 B’가 없어지면 ‘플랜 A’의 독주가 폭주로 이어지면서 조직은 무너진다. 지금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그리고 국민의힘에는 중도·보수를 다시 끌어들일 인물과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세대포위론’을 대체할 ‘보수·중도 동맹’을 복원하지 않는 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거나 지도부를 바꿔도 지지율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세줄요약
대통령다움의 부재 :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 20%대로 추락. 믿었던 투수가 1회에 대량실점한 꼴. 이는 보수동맹의 토대가 약한 데서 기인함. 국민이 윤에게 마땅히 기대한 대통령다운 이미지 부재가 지지율 추락 부채질.
선거연합의 해체 : 1990년 3당 합당 이후 2016년까지는 ‘보수 상수’의 시대, ‘박근혜 탄핵’ 이후 지금은 ‘진보(민주당) 상수’의 시대임.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를 안긴 선거연합의 해체는 윤 지지율의 급락에 영향을 미침.
취약한 보수동맹 : 콘크리트 지지층에서 민주동맹이 보수동맹보다 더 굳건함. 이는 ‘주류 교체 전쟁’에서 보수가 열세인 이유임. 윤이 국정 동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선거연합 정신으로 보수·중도 동맹을 복원해야.
‘35% 대 55%’
‘35% 대 55%’는 여론조사에서 하나의 법칙으로 통함.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지지율 하한선을 55%로, 국정 운영 동력 추락을 막는 최저선을 35%로 보고 있음.
지지율 급락
윤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은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남. KSOI 7월 4주차 조사에서는 긍정 평가가 28.9%였고, 리얼미터 7월 29일 일간 집계에서는 28.7%임. 국정 지지율의 전반적 추락 현상임. 원문보기 :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2080201030630000001
0
0
9
nunjaragi01
2023년 2월 13일
In News
■ 박성민의 Deep Read - 민주당의 反민주주의 행태 국민 편가르기와 나르시시즘으로 ‘불복’ 밀어붙이기…6·1지방선거를 ‘대선 연장전’으로 여겨 배타적 정치동맹 추구하고 ‘다수의 폭정’ 정당화…중도층 이탈로 최악 상황 맞이할 수도 대선은 끝났고 승리한 윤석열은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심리적 대선 불복’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패장 이재명 전 대선 후보의 즉각적인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자숙해야 할 송영길 전 당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검수완박’ 강행 처리 등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한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집단적 ‘인지 부조화’ 증상이다. ‘대선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패배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해야 ‘부조화 압력’을 견딜 수 있다. 오는 6·1 지방선거가 대선의 연장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민을 동지와 적으로 편 가르는 정치 탈레반들의 의식구조, 다수의 폭정을 민주주의라 우기는 ‘반지성주의’가 대선 불복 행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민주주의의 몰락 대선서 패배한 정파의 심리적 불복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노무현에게 패한 한나라당도 그랬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감정이 탄핵까지 이어졌다. 결과는 참담했다.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 152석 과반 의석을 내주며 참패했다. 2020년 총선에서 180석 의석을 얻어 거대여당이 됐던 민주당이 불과 2년 뒤 0.73%포인트 차 대선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2017년 ‘박근혜 탄핵’과 2019년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심리적 내전’ 상태였으므로 심리적 불복을 예상 못 한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사상 처음으로 10년 주기 아닌 5년 만의 정권교체였다. 1987년 체제 이후 ‘(정권교체로) 권력을 인수하고, (정권교체로) 권력을 인수당한’ 대통령은 문재인이 유일하다. 2020년 미국 대선 역시 근소한 표 차였고, 도널드 트럼프도 4년 만에 정권을 잃었다.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가 모두 연임했지만 트럼프만 단임에 그쳤다. 극단적 진영 싸움, 유례없는 네거티브 캠페인, 심리적 불복, 정권 인수 과정에서의 거친 충돌, 민주주의 규범과 관행 파괴 등이 지금의 한국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최근 신동아에 기고한 ‘문재인 5년, 소나기에 흠뻑 젖은 한국 민주주의’라는 글에서 ‘미국 민주주의가 트럼프 시기를 거치며 퇴보했다면, 한국 민주주의 역시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후퇴했다. 문재인 정부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상호 존중과 관용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규범과 정신을 내재화하지 못했다. 다수주의와 민주주의를 혼동했다’고 일갈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취임사에서 밝힌 ‘반지성주의’ 언급도 국회 다수파를 구성한 민주당이 다수주의를 민주주의라 우김으로써 발생하는 다수의 폭정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몰락을 부른다. ◇정치 탈레반의 대선 불복 정치는 ‘아홉 가지가 달라도 하나만 같으면 동지’로 보는 영역이다. 즉 다양성을 인정하고 동지를 만들어가는 게 정치의 본령이다. 민주당 행태처럼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근본주의는 엄밀히 말하면 정치가 아니다. 나(우리)만 도덕적이라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상대를 부도덕한 척결 세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정치를 ‘선과 악’ ‘내 편과 네 편’ ‘정의와 불의’로 나누는 원리주의자들이며 정치 탈레반이다. 탈레반에게 반대자는 타도하거나 청산해야 할 대상이다. 이길 ‘경쟁자’가 아니라 죽일 ‘적’인 것이다.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적 습성은 생래적으로 민주주의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은 퇴임 전 손석희와의 대담에서 “저쪽의 (큰) 문제보다 이쪽의 작은 문제들을 훨씬 부각하는 이중잣대가 문제”라고 말했다. 국민을 ‘이쪽과 저쪽’으로 편 가르기를 하는 노골적인 진영 논리다. 대통령이 대한민국 전체를 대표하는 지도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당파의 수장 혹은 일개 계파의 보스로 전락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45%라는 높은 지지율(한국갤럽)로 임기를 마친 문재인에게 국민이란 곧 지지자를 의미했다. 즉 45%의 지지자는 ‘이쪽’이고, 반대자는 ‘저쪽’이다. 조국 비리를 옹호하면 이쪽이고 비판하면 저쪽이다. 검수완박을 찬성하면 아방(我方)이고 반대하면 타방(他方)이다. 문재인과 민주당의 의식세계에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것은 분열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 저쪽은 챙겨야 할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의식구조가 심리적 대선 불복의 기저에 깔려 있다. ◇‘반지성주의’ 팬데믹 임지현 서강대 교수의 예리한 관찰처럼 민주당엔 이미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괴물이 자라고 있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도 일찌감치 민주당 중심세력이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을 가졌다고 비판했다. 민주화를 이끈 운동권들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도 했다. 정치 탈레반과 국회 다수파의 폭력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와 공론장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집단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배타적인 정치 동맹을 추구하는 ‘정체성 정치’ 때문에 한국 정치는 비토크라시(vetocracy)의 늪에 빠져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체성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 본령인 민주주의의 적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엔 21세기 탈진실(post-truth) 시대의 모순이 그대로 응축돼 있다.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신념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확증편향이 반지성주의를 만들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른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정치인, 진영 논리에 빠진 지식인, 거짓을 선동하는 데마고그의 궤변 바이러스에 감염된 ‘반지성주의’가 팬데믹처럼 대유행하는 상황이다. 45%만 똘똘 뭉치게 하는 진영 정치는 옳지도 않고 전략적으로도 어리석다. 나머지 55%를 정치적 반대자로 더 뭉치게 할 뿐이다. 민주당의 정치 탈레반은 5년 만에 정권을 잃고도 0.73%포인트의 근소 차 패배를 억울해하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외치고 사실상의 대선 불복 행태를 벌이는 중이다. ◇추락하는 민주당 정치는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중도 외연 확장이 불가피한 이유다. 그 단순한 사실을 외면했던 보수 정당이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연전연패했다. 민주당이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민주당에 대한 호감은 떨어지고 중도층은 이탈하고 있다. 대선 불복 심리에 감염된 민주당의 현재 모습에서 선거 때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던 과거 보수정당의 창백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세줄 요약 민주주의의 몰락 : 한국의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규범과 정신을 상실한 문재인 시대를 거치면서 퇴보. 민주당은 다수주의를 민주주의라 우기며 다수의 폭정을 일삼음. 이런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 몰락을 초래. 탈레반의 대선 불복 : 민주당 탈레반들은 국민을 편 가르고 상대를 척결세력으로 여기는 원리주의자임. 이런 인식이 ‘심리적 대선 불복’ 상태를 만들어 내고, 6·1 지방선거를 대선 연장전으로 여기게 하는 배경이 됨. ‘반지성’의 팬데믹 : 탈진실 시대 모순이 응축된 민주당엔 ‘우리 안의 파시즘’이 자라고 있으며, 반지성의 팬데믹이 만연해 있음. 민주당의 대선 불복 행태 속에서 과거 추락했던 보수정당의 창백한 그림자가 어른거림. ■ 용어 설명 ‘탈진실’은 사실이나 진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감정 등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 포스트 모던 시대의 특징으로 자리 잡음. 가짜 뉴스나 거짓 선동 등이 탈진실 시대를 이끄는 수단. ‘우리 안의 파시즘’은 우리 편만이 정의와 도덕성을 독점하고 있다고 여기는 진보·좌파의 인식. 임지현 교수가 이를 극우 매카시즘과 결을 같이한다고 비판하면서 사회적 담론이 됨. 원문보기: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2051201030430000001
0
0
11
nunjaragi01
2023년 2월 13일
In News
■ 박성민의 Deep Read - 단일화 결렬 선언 이후 尹, ‘2030 신소비자’ 맞춤형 전략으로 상승… 李, ‘전통고객’만 쳐다보다 중도 길목 놓쳐 내리막 단일화 결렬에도 ‘李-尹 양강구도’는 안흔들려… ‘중도 유동성’ 겨냥한 ‘혁신’해야 승리 윤석열·안철수의 야권 후보 단일화 작업이 일단 결렬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렇지만 단일화 결렬 선언이 ‘이재명 대 윤석열’의 양강 구도를 크게 흔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의 지지율 상승은 결과적으로 2030 ‘신소비자’ 집단에 강한 소구력을 가진 선거전략의 힘으로 분석된다. 이재명이 고전하는 이유는 4050 ‘전통 고객’만 바라보면서 혁신을 외면한 때문이다. 이재명-안철수 역(逆)단일화가 성사된다면 판의 출렁임이 있을 수 있겠지만, 둘의 단일화 가능성은 희박하다. ◇단일화 결렬 해석 지지율이 앞선 후보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게 단일화의 문법이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DJ)이 김종필(JP)에게 그랬고, 2012년 대선 때 문재인이 안철수에게 먼저 요구했다. 이번에 안이 윤에게 단일화를 먼저 제안한 건 거꾸로 됐다. 단일화 논의는 여러모로 보나 쉬운 게 아니다. 무엇보다 ‘담판’ 과정에서 잡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DJP 정도의 고수 간 협상이니까 단일화를 할 수 있었다. 안철수는 탈문재인, 탈이재명 표심의 저수지, 혹은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측면이 강하다. 온전한 안철수 표가 아니었고 언제든 윤석열에게 흘러갈 수 있었던 표심이었다. 단일화 결렬 선언이 약간의 진폭을 가져오겠지만, 현재의 양강 구도를 흔들 정도는 아니다. 사실상 ‘여론에 의한 단일화’는 완성되고 있는 과정이라 봐야 한다. 그래도 끝까지 단일화를 추진하는 게 맞는다. 안철수의 정직성과 공적(公的) 이미지가 윤석열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 주고 5060의 안정적 지지를 가능하게 하며 무엇보다 압도적인 정권교체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밑 협상이 지지부진해 아름다운 단일화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아직 그 가능성이 완전히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유권자는 2020년 총선과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를 기억한다. 총선 때 안철수는 정권심판론을 내세워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는 무공천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선에서는 오세훈과 선거연대를 하고 단일화를 이뤘다. ‘국민의힘+국민의당’ 합당 약속도 했다. 줄곧 정권교체 행보를 해온 것이다. 지금 와서 안철수가 이재명과 역단일화를 추진하거나 연대하는 건 ‘자기부정’이 될 수 있다. 안철수가 이재명으로 시선을 돌리기 어려운 이유다. ◇정치는 혁신이다 시장을 지배했던 기업이 기울어지는 것은 변화가 두려워 혁신하지 않은 탓이다. 혁신은 성공 공식을 버릴 때 시작된다. 정치도 서비스업이다. 매력을 잃는 순간 대중의 외면을 받는다. 정치를 지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자기 생각대로 현실을 바꿀 물리적 힘이 있거나(독재), 아니면 현실에 맞춰 자기 생각을 바꿔야 한다(혁신). 독재가 불가능하다면 대중의 요구에 맞춰 변해야 살아남는다. 정당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보다 세상이 정당을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 민주당과 이재명이 고전하는 이유는 ‘잘 팔리던’ 낡은 제품에만 의존하다 유행에 민감한 2030과 MZ세대 고객을 잃은 탓이다. 즉 혁신의 부재가 문제다.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매력 있는 신제품을 내놓지 못해 삼성과 애플에 시장을 내주고 몰락한 것과 같다. 민주당은 충성도 높은 4050 전통 고객만 믿다가 시장 지배력을 잃었다. 반면 윤 후보 측은 전통적 제품에만 집착하지 않고 젊은 고객 맞춤형 제품을 내놓으며 빠른 속도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특히 지금은 강한 유동성의 시대다. 식당으로 비유하면 유동인구가 늘어난 상권 변화를 읽고 길목을 지켜 젊은층이 좋아하는 메뉴를 추가한 것이 주효했다. 2030은 ‘능력주의’ 세대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저자세를 보이는 중국과 북한에 비판적이고, 민주당의 오랜 연대 대상인 ‘연공서열’ 중심의 민주노총·한국노총에 강한 불만을 제기한다. 민주당은 젊은 세대가 예민해 하는 젠더 이슈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한다. 유례없는 격차 시대에 태어나 ‘공정’에 민감한 세대에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내로남불은 위선의 극치로 보인다. ◇이탈, 항의, 충성의 문법 앨버트 허시먼은 저서 ‘이탈, 항의, 충성’(Exit, Voice, and Loyalty)에서 기업 서비스에 문제가 생겼을 때 소비자가 보이는 반응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하나는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는 ‘충성’. 정당으로 치면 집토끼, 고정 지지층이다. 둘은 조직의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항의’.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조직 내 개혁파다. 셋은 조직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탈’. 실망하면 언제든 지지를 철회하는 산토끼, 스윙보터다. ‘이탈’은 기존 조직의 비효율성과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고 온존시킨다. 남아서 ‘항의’할 목소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민주당은 강성 친문에 갇혀 당내 이견을 허용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의 새누리당보다 훨씬 경직됐고, 이것이 절망한 이들의 ‘이탈’을 불렀다. 박근혜 정권과 보수동맹이 중도 보수의 이탈로 붕괴했던 것처럼 문재인 정권과 민주동맹도 개혁파 정치인과 2030의 이탈로 무너지는 중이다. 위기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자초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원칙 없는 패배’를 경멸했다. 문 정권과 민주당은 ‘원칙 있는 패배’가 두려워 ‘원칙 없는 승리’를 챙기려다 ‘원칙 없는 패배’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 제품 혁신도 없고 서비스 개선도 게을리하다 시장점유율은 낮아지고 평판은 나빠졌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는 이재명과 민주당이 위기라는 신호를 강하게 보내고 있다. 기업의 평판과도 같은 호감도도 나빠지고 있다. 반면 윤석열은 호감도도 개선됐고 대부분 조사에서 지지율 40%를 돌파했다. ◇중도 유동성의 향배 이번 대선은 스윙보터가 캐스팅보트를 쥔 ‘중도 유동성’ 장세다. 상권 변화를 읽고 중도 유동인구를 잡는 쪽이 승리한다. 오랜 단골만 믿고 혁신을 외면하다간 유동인구를 놓치고 도태된다. 유권자는 좋아해서 찍거나, 필요해서 찍거나, 상대가 싫어서 찍는다. 대선에선 좋아하고 필요해서 ‘찍고 싶은’ 후보가 어찌할 수 없이 ‘찍어 주는’ 후보를 이길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이 안철수와의 역단일화를 통해 승리의 퍼즐을 맞추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간 정권교체를 위한 정치 궤적을 그려온 안철수가 ‘자기부정’을 통해 이재명과 손을 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세줄 요약 단일화 결렬 해석 : 단일화 결렬 선언이 현재의 이재명-윤석열 양강 구도를 흔들 정도는 아님. 사실상 ‘여론에 의한 단일화’는 완성되고 있는 과정. 이재명-안철수 역단일화는 안철수의 ‘자기부정’이어서 실현되기 어려움. 정치는 혁신이다 : 정치도 서비스여서 혁신이 운명을 가름. 尹 지지율 상승은 2030 ‘신소비자’ 집단에 강한 소구력을 가진 선거전략의 힘. 李의 고전 이유는 4050 ‘전통 고객’만 바라보면서 혁신을 외면한 때문. 중도 유동성의 향배 : 조직이 살려면 구성원의 ‘이탈’을 막고 조직 내 ‘항의’의 목소리를 만들어내야 함. 민주당은 당내 이견을 허용하지 않아 중도의 이탈을 막지 못했음. 오랜 단골만 믿고 혁신에 둔감하면 도태됨. ■ 용어 설명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대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획득하는 철학. 경제적 자유주의와 연관돼 있음. 이에 반해 주로 기업에서 승진·보수 등에서 고참 순으로 우대하는 것을 ‘연공서열’이라 함. ‘앨버트 허시먼’은 독일 태생의 유대인 경제학자. 초기 개발경제학에 관심을 가졌는데, 점차 퇴보하는 기업·조직·국가에 대한 반응을 연구.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로 알려짐. 원문보기 :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2022201030842000001
0
0
3
nunjaragi01
2023년 2월 13일
In News
■ 박성민의 Deep Read - 윤석열 후보 하락 왜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 못벗어… 시대 흐름에 뒤처지며 변화 이끌지 못하고 지지율 하락 초래 역대 대선 중 ‘중도 유동성’ 가장 강한 선거판… 尹, ‘중도확장 김종인+2030표심 이준석’ 조합 정상화하는 결단 필요 21세기는 2000년이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한) 2020년에 시작된 듯하다. 20세기가 1900년이 아니라 (1차대전이 끝난) 1919년에 시작됐다고 한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의 말처럼. 팬데믹, 기후변화, 디지털, 인공지능(AI) 등 대전환의 시대에는 일하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모든 방식이 달라졌다.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지지율 하락은 ‘새로운 문명’의 시대에 구시대적으로 사고하고 대응함으로써 발생한 필연적 현상이다. 21세기 선거를 20세기식으로 하는 것이다. 윤석열은 전략적 판단과 정치적 언어의 한계를 노출했다. 이대로는 대선 승리 어렵다. ◇새로운 문명과 구시대 선거 ‘기술의 시대’는 정치도 바꿔놓았다. 정치인은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정당은 붕괴하고, 정치는 몰락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정치가 맨 앞자리를 차지하던 시대가 끝나는 건 확실해 보인다. 2022년 대선은 ‘새로운 문명’의 첫 번째 선거라는 의미에서 1987년 체제 이후 치러진 7번의 대선과 완전히 ‘다른’ 대선이다. 어쩌면 전통적인 대선은 ‘보수 동맹’의 박근혜와 ‘민주 동맹’의 문재인이 맞붙은 2012년 대선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정치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후보들, 역사적 이념 대립 구도, 대규모 대중집회 등 오프라인 중심 선거운동, 전통적 공약, 정당 중심의 선거를 다시는 보지 못할 수 있다. 이번 대선이 과거 대선과 다른 특징은 ① 정당 정체성 약화 ② 스마트폰 시대 리스크 일상화 ③ 디지털 세대의 캐스팅보터 부상 ④ 온라인 선거 운동으로 시공간 이동 ⑤ AI·팬데믹·기후위기·플랫폼 같은 새로운 이슈 부각 등이다. 바야흐로 21세기 디지털 선거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20세기 선거 패러다임에 갇힌 후보와 정당은 패배할 운명이다. 이대로 간다면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치 경험이 없고 훈련이 돼 있지 않은 윤석열은 전략적 판단과 정치적 언어의 한계를 노출했고, 이것이 위기를 만들었다. 당 대표 이준석과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장이었던 조수진의 상식적이지 않은 충돌을 두고 “그게 민주주의다”라고 했는데, 이는 2017년 대선 경선 때 문재인이 ‘문자 폭탄’을 놓고 “경쟁을 아름답게 하는 양념”이라고 했던 발언과 오버랩됐다. 윤은 또 대선 주자 토론회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면 싸움밖에 안 된다”고 했다. ‘20세기 아날로그 선거 방식’으로 ‘21세기 디지털 선거’에 맞서는 모양새다. ◇선거 망치는 잡탕 선대위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변화를 이끄는 사람, 변화를 좇는 사람, 변화에 둔감한 사람,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역사는 변화를 이끈 사람들의 기록이다. 지금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변화에 둔감하거나 두려워하고 있다. 점점 더 2020년 총선 당시의 황교안과 미래통합당처럼 돼가는 느낌이다. ‘혁신 없는 통합’으로 패배를 자초한 그때처럼 ‘묻지 마 통합’으로 비빔밥이 아닌 잡탕밥 선대위가 돼 버렸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데이비드 브로더가 ‘정당은 끝났다(The Party’s Over: The Failure of Politics in America)’에서 유권자의 정당 소속감 약화, 정치인의 정당 의존도 약화를 들어 정당의 역할에 의문을 던진 지 50년이 지났다. 2017년 탄핵 이후 보수정당은 끝났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보수정당 몰락’을 상징하고 있다. 해나 아렌트의 통찰대로 윤석열은 “땅에 떨어진 권력을 주우러” 입당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윤석열은 민주당 대표를 지낸 김한길을 영입해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했다. 정권교체 이후의 정계개편 같은 큰 그림을 공유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 때문인지 윤은 호남 방문길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더불어민주당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국민의힘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소속 당을 폄하하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새시대위원회는 당 밖에 있다가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하는 길을 선택했을 때 필요한 조직이었을 것이다. 입당했다면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 ‘부득이’라는 단어 또한 ‘정권교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부득이 제3 지대를 선택했다’고 말할 때 썼어야 했다. ◇중도 유동성을 잡으려면 이번 대선은 정당 일체감이 약한 2030 스윙 보터와 대중에 부채의식이 없는 후보의 등장으로 인해 어느 때보다 ‘중도 유동성’ 장세가 강한 선거다. 당연히 중도와 2030을 잡기 위한 캠페인에 집중해야 하는데, 국민의힘과 윤석열은 반대로 가는 모양새다. 중도 전략가 김종인은 ‘전권’은커녕 ‘패싱’을 걱정하는 지경이고, 2030 지지를 담보하던 이준석은 ‘윤핵관’의 조리돌림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김종인은 오너가 힘을 실어줄 때만 진가를 보이는 CEO다. 박근혜와 문재인을 도울 때도 오너의 신뢰 속에서 성과를 냈다. 윤석열이 끝내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면 2020년 총선 때처럼 패배의 들러리가 되거나 수모를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던질 것이다. 36세 ‘0선’ 이준석이 당 대표가 됐을 때 국민의힘은 ‘변화를 이끄는 정당’으로 보였다. 이준석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지만 ‘선진국에서 태어난 MZ 세대’의 표심을 이해하고 21세기형 선거 캠페인을 이끌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란 점도 분명하다. 이준석은 “선대위 전체적으로 골 넣는 기획을 하는 사람도 없고, (윤석열의) 감표를 막는 전략도 거의 없다”고 현 위기를 진단했다. 맞는 말이다. 어쨌든 위기를 벗어나려면 전략을 기획하고 실행할 사람이 필요하다.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① 김종인 전권과 이준석 복귀 ② 김종인 사퇴와 선대위 붕괴 ③ 현재의 난맥 지속. 현재로는 ① 번 시나리오가 대선 승리 가능성을 가장 높여준다. ② 번 시나리오는 선대위 붕괴가 생산적 파괴가 될 것인지 보장되지 않는다. ③ 번 시나리오는 ① 번 시나리오보다 정권교체 가능성을 높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김종인 + 이준석’ 조합을 대체할 카드가 아직은 없다. ◇윤의 결단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열린민주당과 합당하고 안철수까지 연대 대상으로 삼아 외연을 넓히려 하는데, 국민의힘은 당 대표가 선대위를 이탈하는 등 핵분열 중이다. 분노한 중도와 실망한 2030이 등을 돌리면서 정권교체 여론과 윤석열 지지율이 크게 흔들린다. 윤석열과 그 캠프는 전략도 없고, 리더십도 없고, 비전도 없다. 윤석열이 선대위 정상화를 위해 결단하지 않으면 진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세줄 요약 새로운 문명과 구시대 선거 : 21세기는 새로운 기술과 문명의 시대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20세기 아날로그 선거 방식’으로 ‘21세기 디지털 선거’에 대응함으로써 전략적 판단과 정치적 언어의 한계를 노출함. 선거 망치는 잡탕 선대위 : 역사는 변화를 이끈 사람들의 기록. 윤석열과 국민의힘 캠프는 변화에 둔감하거나 두려워함. 선대위도 ‘묻지 마 통합’으로 잡탕밥 선대위가 됨. 이런 점들이 윤의 지지율 하락 원인이 되고 있음. ‘중도 유동성’을 잡으려면 : 이번 대선은 2030 스윙 보터 등장으로 ‘중도 유동성’ 장세가 강한 선거임. 윤은 일단은 ‘중도 확장 김종인 + 2030 표심 이준석’ 조합을 정상화하는 결단으로 현재의 난맥상에서 벗어나야 함. ■ 용어 설명 ‘문자 폭탄 양념론’은 2017년 대선 후보 문재인이 문자 폭탄을 “경쟁을 아름답게 하는 양념”이라고 말한 것. 야당은 물론 내부에서 비판이 제기되며 문이 사과했지만 발언 적절성 논란이 오래 이어짐. ‘데이비드 브로더’는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를 거치며 미국 정치 기자의 전설로 불린 인물. 퓰리처상 수상. ‘기자는 정치권력의 내부자가 되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정치기사의 황금률을 남김. 원문보기 :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122801030242000001
0
0
22
nunjaragi01
2023년 2월 13일
In News
■ 박성민의 Deep Read - 호남 ‘전략적 선택’ 향배 광주·전남, DJ시대 이후 盧-文 거치며 ‘될 사람 밀어주기’…‘영남 대권 + 호남 지지’의 전략동맹 이끌어 호남의 정권 창출 영향력 줄며 與 권력 지도에 큰 변화… 이재명이 대선 후보 돼도 호남에 ‘빚’ 없어 지난 25일 더불어민주당의 광주·전남 순회경선 결과는 이낙연 47.12%, 이재명 46.95%로 ‘이낙연 승’이다. 불과 0.17%포인트, 122표 차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차이가 아무리 작아도 결과는 결과다. 이낙연이 광주·전남의 승자다. 이재명은 바로 다음 날인 26일 발표된 전북 경선에서 과반 득표로 대세론을 살려냈다. 현재까지 이재명은 광주·전남을 뺀 모든 지역에서 과반 득표를 했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을 포함한 남은 곳도 이재명에게 유리한 지역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가 최종 승리한다면 ‘광주·전남에서 지고 민주당 후보가 되는’ 첫 사례를 기록하게 된다. 이낙연 입장에선 ‘광주·전남에서 이기고 민주당 후보가 되지 못하는’ 첫 기록이다. 이는 곧 광주·전남이 대선 국면에서 ‘될 사람 밀어준다’는 이른바 ‘전략적 선택’을 포기했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DJ 시대의 ‘호남 대망론’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당은 호남 출신의 김대중(DJ)을 빼면 노무현과 문재인 모두 ‘호남이 미는 영남 후보’로 집권해 왔다. 노무현·문재인이 PK(부산) 출신, 이재명은 보수의 본거지인 TK(경북 안동) 출신이다. 이낙연만 아니었다면 광주·전남은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로 이재명에 대한 전략적 지지를 보냈을 가능성이 컸다. 호남이 이낙연을 통해 DJ 집권 이후 한때 폐기됐던 ‘호남 대망론’이 살아나기를 기대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전략적 선택’을 회피하게 만든 셈이다. 오랜 기간 광주·전남은 진보의 심장이었고 민주의 고향이었다. 그만큼 선명한 가치가 있었고 상징적 인물도 있었다. 1987년 이후 1997년 대선까지 DJ 중심의 호남 구심력은 강력했다. 이른바 ‘비판적 지지’는 그 시대 민주동맹의 역학 관계를 상징한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DJ의 카리스마와 호남의 압도적인 영향력 때문에 사실상 속으로는 DJ를 ‘맹목적 지지’하면서도 겉으로는 ‘비판적 지지’로 포장했다. 그런 DJ조차 김종필(JP)과의 선거·통치동맹, 그리고 이인제의 출마에 따른 보수 분열이 아니었다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초래한 김영삼 정권의 임기 말 실정 등 온갖 호재에도 불구하고 DJ는 1997 대선에서 보수진영 이회창에게 1.5%포인트 차의 힘든 승리를 거뒀다. ◇‘영남 대권+호남 지지’의 전략 DJ 시대가 저물며 ‘호남 대망론’도 자연스럽게 소멸했다. 2002년 대선부터는 ‘호남 대망론’을 대체하는 ‘전략동맹’이 맺어졌다. 전략동맹이란 ‘호남이 미는 영남 후보’ 구상이다. ‘영남 대권 + 호남 지지’가 새로운 전략동맹 모델로 채택된 것이다. 이후 호남 출신 정치인들은 대개 영남 대권 후보의 지원세력으로 기능했다. 특히 광주·전남은 2002∼2020년 시기 대선 후보는커녕 당 대표 하나 내놓지 못했다. 전북은 그나마 정동영·정세균 등 대선 후보나 당 대표를 배출하곤 했다. 지난 2015년 문재인과 박지원이 당 대표를 놓고 맞붙은 전당대회에서 “호남은 당 대표도 못 하느냐”는 박지원의 절규는 그 자체가 광주·전남의 절규였다. 박지원이 전대 패배를 맞본 후 반문(반문재인) 정서가 호남, 특히 광주·전남에서 급속히 확산됐고, 민주당은 분열됐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박지원·천정배 등 호남 세력은 안철수·김한길 등 신당 추진파와 함께 국민의당을 창당했고, 호남은 여기에 ‘전략적 투표’를 했다. 국민의당은 호남 의석을 싹쓸이하다시피 했고, 정당 득표율 2위로 원내 3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문재인은 호남 없이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호남과 전략동맹을 맺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호남 정부다. 과거 2006년 노무현 정권 당시 문재인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정부는 부산 정권”이라고 했던 걸 떠올린다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호남의 ‘전략적 선택’ 회피 문 정권에서 이낙연이 총리가 되고 당 대표에 오른 것은 ‘영남 대권 + 호남 지지’라는 전략동맹의 산물이다. 호남은 줄곧 굳건한 지지로 정권에 화답했다. 조국 사태를 비롯한 수세 국면에서 문 대통령과 민주당을 지켰다. 호남 인구가 전국 10% 정도이므로 전국 평균보다 30%쯤 더 높은 호남 지지율은 전체적으로 3%의 지지율 상승효과를 준다. 수도권에 진출한 디아스포라 출향민을 포함하면 적어도 5% 이상의 지지율을 호남이 떠받쳐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DJ 시대가 지난 후 호남은 정치를 도덕이나 가치가 아니라 권력의 프리즘으로 보는 데 더 집착했다. 그 과정에서 한때 소멸한 듯했던 ‘호남 대망론’이 살아났다. 조국, 김경수 등 친문(친문재인) 주자가 하나둘 스러지면서 이낙연의 가치가 올라갔다. 2020년 총선 때 서울 종로에서 야당 대표 황교안을 꺾고 민주당 압승을 이끌며 지지율이 폭등했다. ‘호남 대망론’이 대세론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낙연의 당 대표 출마는 전략적 실수였다. ‘당 대표(2015년)→대통령(2017년)’의 문재인 모델을 따르려 했겠지만, 잘못된 계산법이다. 야당 대표는 대통령과의 투쟁을 통해 정치력을 키우지만 여당 대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특히 차기 대권을 바라보는 여당 대표는 대통령과 불가근불가원의 숙명적인 긴장 관계일 수밖에 없다. 여당 대표를 지낸 이회창·정동영·김무성이 모두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 실패해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이낙연은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가 아닌 ‘계승자’로서의 정체성을 굳히고 차기 대권의 라이벌인 이재명과의 차별화를 택했다. 대권을 꿈꾸는 여당 주자가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대통령이 이를 어느 정도 용인해준 관계에서 대권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역사적 경험들을 돌이켜 보면 위험한 도박이다. ◇저무는 전략동맹 시대 아직 여당 경선이 끝나지 않았지만 현재의 이재명 우위가 뒤집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재명은 친문도 아니고 광주·전남의 ‘전략적 선택’도 받지 못했다. 그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다면 ‘영·호남 전략동맹’에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민주당 역사 최초로 호남에 빚을 지지 않은 후보가 되는 것이다. DJ-노무현-문재인 시대를 거쳐 내년 대선을 앞두기까지 호남의 정권 창출 영향력은 약화하는 추세다. 호남, 특히 광주·전남이 다시 민주당 내 주류의 지위를 획득하고 한국 정치의 중심이 되려면 새로운 가치·노선·인물이 필요하다. 지금의 혼란이 새로운 시대의 전야가 될지, 시대의 마지막 밤이 될지는 전적으로 경선 이후 호남의 숙고에 달렸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세줄 요약 ‘전략적 선택’의 포기 : 이재명이 여당 대선 후보가 된다면 광주·전남의 전략적 선택을 받지 않고 민주당 후보가 되는 첫 사례. 이는 곧 호남이 대선 국면에서 될 사람 밀어주는 ‘전략적 선택’을 포기했다는 것을 말해줌. 호남대망론과 전략동맹 : 1987년 이후 DJ는 ‘호남대망론’에 힘입어, 노무현·문재인은 ‘영·호남 전략동맹’으로 집권. DJ 시대와 함께 ‘호남대망론’도 소멸했고, 2002년 대선부터는 ‘전략동맹’이 이를 대체. 호남 영향력의 약화 : DJ-노무현-문재인 시대를 거치면서 호남의 권력 창출 영향력은 약화함. 이재명이 대선 후보가 된다면 ‘영·호남 전략동맹’에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호남에 빚을 지지 않은 민주당의 첫 후보가 되는 것. ■ 용어 설명 ‘전략적 선택’은 ‘될 사람 밀어주는’ 호남의 투표 성향. 주자들의 ‘호남 친화성’과 ‘본선 경쟁력’이 주요 요소로 작용. 이재명이 광주·전남 경선서 진 것은 호남의 ‘전략적 선택’ 회피라는 분석 나옴. ‘전략동맹’이란 ‘영남 대권 + 호남 지지’ 형태의 선거·통치동맹을 말함. 광주·전남이 경선에서 TK 출신 이재명 대신 호남 출신 ‘이낙연 승’을 만들어주면서 ‘전략동맹’ 시대도 가고 있다는 관측 나옴. 원문보기 :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93001030642000001
0
0
10
nunjaragi01
2023년 2월 13일
In News
■ 與 경선연기론과 대권구도 이재명의 야전사령관·기본소득 브랜드, 코로나 戰時에 강해…더 일찍, 더 크게 이겨 ‘文과 차별화’ 시간 벌 필요 느껴 이낙연·정세균 등 주류 측 ‘대권 飛上’에 유리한 여건 만들려 연기 압박…세력·명분·동력 부족으로 어려움 겪어 ‘경선 연기론’이 더불어민주당 대선판을 흔들고 있다.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여권의 대권 구도가 요동칠 수 있다. 경선 연기를 둘러싼 논란은 당헌대로 경선을 치러 불안한 대세론을 조기 극복하려는 이재명 경기지사 측과 대권 비상(飛上)을 위한 시간을 벌어 보려는 주류 측 주자들 간의 쟁투로 요약된다. ◇대승적 연기는 기대난망 지난 18일 부동산 정책 전환을 통해 ‘중도로의 회군’ 메시지를 보낸 민주당 대표 송영길이 ‘경선 연기론’마저 큰 잡음 없이 진압한다면 일거에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총리와 당 대표를 지낸 이낙연이나 총리를 지낸 정세균 등 주류 측이 주장하는 경선 연기가 실현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세력, 명분, 동력 모두 부족하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선 연기론자들이 좀 더 전략적이었다면 4·7 보궐선거 참패 이후 ‘비상대책위로 갈 것인가, 전당대회로 갈 것인가’ 논쟁으로 시간을 벌었어야 했다. 당시 전당대회가 연기됐다면 대선 경선도 현실적으로 순연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송영길은 “대선 주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결단을 내리겠다. 당무위원회로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대표의 권한이니 의견을 수렴하고 결정할 생각”이라면서도 “원칙을 변경하려면 ‘모든’ 후보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원칙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정면 돌파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일단 22일 의원총회가 대권 주자들의 운명을 가를 1차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권 내 압도적인 1위 주자인 이재명이 극렬 반대하고 추미애·박용진 등 일부 후보도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대승적’ 연기는 기대난망이다. 이재명은 22일 언론 인터뷰에서 “경선을 미루면 당에 대한 신뢰는 추락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경선 연기 찬성파가 기댈 언덕은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땐 당무위 의결로 정할 수 있다는 당헌뿐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사유는 ‘코로나 국난’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선거들이 정상적으로 치러진 점을 감안하면 명분으로는 약하다. ◇이재명의 반대 배경 이재명이 경선 연기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경선 연기로 얻을 이익보다 리스크가 훨씬 크다. ‘야전사령관’ 이미지와 ‘기본소득’ 브랜드는 코로나와 같은 전시(戰時)에 필요한 리더십과 무기이기 때문에 평화 시엔 사람들이 찾지 않을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명장(名將) 조지 패튼은 1945년 10월 사령관직에서 해임됐다. 전쟁이 끝났기 때문이다. 타이밍을 놓침으로써 발생하는 가장 극적인 결과는 이재명의 대역전 패배일 수도 있다. 정해진 원칙을 바꿔 패배한다면 결과를 이재명 지지자들이 받아들일까. 아마도 분열에 휩싸일 것이다. 적어도 ‘원 팀, 원 스피릿’은 깨질 것이다. 설사 치열한 경선을 통해 흥행에 성공하고 승리하더라도 자칫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 있다. 특히 여당의 치열한 경선엔 늘 분열의 위험이 도사린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치열하게 싸우고도 분열하지 않는 경우는 야당일 때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의 이명박과 박근혜, 2008년 미국 민주당 경선 당시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사례처럼 정권교체에 대한 절박감이 분열을 막는다. 4·7 보선에서 안철수와 오세훈의 ‘전략적 단일화’도 유권자들의 정권교체 압력으로 성사된 것이다. 반면 여당은 1992년, 1997년, 2002년, 2007년,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분열했다. 이재명 입장에서는 가급적 일찍, 가급적 크게 이기는 것이 좋은데, 경선이 연기되면 이것을 보장할 수 없다. 경선에서 더 일찍, 더 크게 이겨야 이재명은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이재명 브랜드로 대통령과 차별화할 힘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비주류 ‘아웃사이더’인 이재명은 ‘민주당 DNA’와 ‘정권 교체’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다. 2002년 이인제가 노무현에게 무너진 가장 큰 이유인 ‘민주당 DNA’가 약한 점과 비교해보면 확실한 강점이다. ‘정치적 인파이터’ 성격은 2002년 노무현처럼 야당 후보로 보일 수도 있다. ◇‘언더독’에서 ‘대세론’으로 이재명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구심이 있다. ① 대선에서 이길 수 있을까, ② 이긴다 해도 ‘이재명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보호할까, ③ 민주당을 ‘이재명당’으로 바꾸지 않을까. ① 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② 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③ 은 호남을 비롯한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특히 대선 직후 치러질 지방 선거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불안하다. 민주당 내에서 지금 벌어지는 논란과 불운은 ‘언더독’ 포지션에 있어야 할 이재명이 ‘너무 일찍’ 1위로 올라온 현실에서 비롯됐다. 2002년 노무현, 2007년 이명박은 모두 ‘언더독’으로 있다가 이인제와 박근혜에 극적으로 역전승했다. 이재명은 분명 오버 페이스다. 지지율이 너무 빠르게 올라왔다. 비주류 아웃사이더로서는 위험하다. 그럼 여권 내 지지율 2위인 이낙연은 어떤가. 그는 더 위험한 루트를 택했다가 지지율이 급락했다. 본시 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1997년 이회창, 2007년 정동영의 실패 사례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꿈이 꺾인 김무성도 있고, 2011년 예상에 없던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로 크레바스에 빠진 홍준표도 있다. 1987년 노태우, 1992년 김영삼, 1997년 김대중, 2012년 박근혜, 2017년 문재인이 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이 됐지만, 자기 세력과 정치적 지분이 있었다는 점에서 친문(친문재인) 지지자에게 의존하는 이낙연과는 사정이 달랐다. 앞서 언급한대로 차기 권력은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하는 데 성공해야 정권 재창출에 유리하다.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확보해 압승한 상황에서 당시 여권 내 지지율 1위였던 이낙연이 짧은 임기의 당 대표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차기 대권을 ‘쟁취’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친문 팬덤에만 기댔던 그는 대통령과 차별화하는 것도 위험했고, 하지 않는 것도 위험했다. 결국 이낙연의 위험한 도박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주류 측엔 너무 짧은 활주로 여당 내 지지율 3위 이하의 나머지 주자들은 어떨까. 한국의 정당사에서 3위 이하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다른 후보들은 2007년 민주당 경선을 중도 포기하면서 유시민이 했던 “활주로가 짧았어요”란 말을 빌려 써야 할 가능성이 큰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세줄 요약 대승적 연기는 기대난망 : 여권 주류 주자들의 ‘경선 연기론’이 대선판을 흔들고, 대권 구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 하지만 여당의 압도적 1위 주자인 이재명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경선의 ‘대승적’ 연기는 기대난망. 경선 연기 반대의 배경 : 이재명의 ‘야전사령관·기본소득’ 브랜드는 코로나19 등 전시 때 더 힘을 발휘하는 리더십임. 또 더 일찍, 더 크게 이겨 ‘文과 차별화’할 힘과 시간을 확보하는 게 대선 본선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 ‘오버 페이스’와 ‘짧은 활주로’ : 이재명은 너무 일찍 지지율을 끌어올려 불안한 1위를 유지. 주류 주자들은 대권 비상을 하기엔 활주로가 너무 짧음. 경선 연기론 갈등은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李와 反李 간 ‘시간 쟁투’임. ■ 용어 설명 ‘언더독’이란 원래 스포츠에서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를 지칭하는 말. ‘언더독 효과’는 경쟁에서 약자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심리 현상인데, 정치·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남. ‘상당한 사유’는 민주당 당헌 88조 단서조항에 있음. 즉 선거일 180일 전까지 대선 후보를 선출하되,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땐 당무위 의결로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해 해석과 논란의 여지를 남김. 원문보기 :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62201030442000001
0
0
4
nunjaragi01
2023년 2월 13일
In News
■ 4·7보선 민심 뭘 말하나
與 “40% 콘크리트 지지층 있다 - 文 레임덕은 없다” 등 집단적 맹신… 시대정신 소멸하고 감성팔이만
4·7보선 앞두고 정권심판론이 인물·이슈 눌러… 吳·安 ‘전략적 단일화’후 중도층 ‘反文’ 가속화
미국 공화당의 미디어 전략 책임자였던 정치 컨설턴트 프랭크 런츠는 ‘먹히는 말: 단숨에 꽂히는 언어의 기술’에서 ‘먹히는’ 프레임에 대한 천재적 통찰을 보여줬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연거푸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프레임이 유권자에게 먹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 지선에서는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모든 정치 프레임은 ‘유통기한’이 있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선, 2020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적폐청산 프레임의 유통기한도 끝났다. 런츠의 개념을 빌리면 대중이 더 이상 구매하지 않는 것이다.
◇적폐청산 유통기한 끝
‘메신저 거부 현상’이 벌어지면 메시지는 먹히지 않는다. “지난 선거에서 연이어 파란색(민주당)을 찍은 당신에게, 그러나 이번만은 파란색에 표를 주지 않겠다는 당신에게. 압니다, 당신의 실망·허탈·분노. 기대가 컸었기에 더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당신은 빨간색(국민의힘)이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얼마 전 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물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파토스가 로고스보다 나을 수도 있지만, 에토스가 무너지면 아무도 듣지 않는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4년 전 국민으로부터 적폐청산과 개혁의 과업을 부여받았던 민주당은 개혁 성공의 전제조건이나 다름없는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는 점에 절박한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며 ‘신뢰 상실’을 위기로 받아들였다.
유권자가 정당이나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은 세 가지다. ① 좋아해서 ② 필요해서 ③ 상대가 싫어서다. 이번 선거는 정치구도가 인물과 이슈를 압도하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에 대한 민주당의 네거티브 공세가 거의 먹히질 않는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를 겨냥한 BBK나 도곡동 땅 공세가 먹히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최초의 여성 서울시장’과 같은 인물 프레임도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이슈도 실종됐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선, 2020년 총선을 지배했던 탄핵·한반도 평화·코로나 같은 메가 이슈는 물론 대중의 찬반을 가르는 이슈조차 없다. 대신 정권심판 프레임이 인물과 이슈를 압도한다. 이런 상황에서 네거티브 난타전은 민주당에 유리할 게 없다. ‘상대가 싫어서’ 투표하려는 야당 지지자의 의지를 강하게 할 뿐이다.
◇민주당의 거대한 착각
선거 전략을 단순화하면 네 가지다. ① 나에 대한 지지 강화 ② 나에 대한 반대 약화 ③ 상대에 대한 반대 강화 ④ 상대에 대한 지지 약화. 선거 전략이란 이 네 가지 중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과 정해진 타깃에 맞춰 프레임·이슈·메시지·홍보를 실행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여전히 ①과 ③에만 집중하고 있다.
민주당의 전략적 오류는 세 가지 ‘거대한 착각’에서 온다. ① 우리에겐 40%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 ② 중도는 ‘적폐청산’ 전선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③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은 없다. 오랜 경험을 통해 모든 정권이 예외 없이 콘크리트 지지층은 없고 레임덕은 있다는 것을 배웠음에도 그런 ‘집단적 맹신’에 빠진 것은 역사에 대한 오만한 태도다.
단언컨대 콘크리트 지지층이란 없다. 5년 단임제 아래의 대통령 지지율은 ‘번지 점프’ 같아서 일단 뛰어내리면 몇 번의 반등은 있지만 결국 내려오게 돼 있다. 지난주 한국갤럽의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잘하고 있다’ 34%, ‘잘못하고 있다’ 59%였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는 지난 2월 둘째 주 긍정 41.3%, 부정 54.7%에서 3월 넷째 주 긍정 34.4%, 부정 62.5%로 벌어졌다.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28일 발표된 문화일보·엠브레인 여론조사도 긍정 33.4%, 부정 62.8%로 부정이 압도적으로 높았다.(이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비슷한 시기의 거의 모든 조사에서 국정운영 지지도에서 긍정은 35%가 무너졌고, 부정은 55%를 넘어섰다. 35% 대 55%는 승패를 가르는 변곡점이다. 최근 일련의 조사는 집권세력에 대한 중도의 이탈을 보여주는 확실한 수치다.
◇정권심판 프레임 강화
문재인 정부는 일모도원(日暮途遠), ‘서산에 해는 지고 갈 길은 먼’ 신세다. 적폐청산 유통기한은 끝나가는데 정권의 레거시는 없다. 정권의 명운을 걸었던 한반도 평화는 요원한데 북한은 연일 탄도미사일을 쏘고 있다. 검찰개혁은 조롱거리가 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가장 강력한 대선 주자가 됐다. 부동산 가격과 세금 폭등으로 불타는 민심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기름을 부었다. K-방역마저 백신의 늪에 빠져 자산에서 부채로 전환됐다.
민주당은 조직력에 의한 승리를 기대하지만, 투표율이 20∼30%에 머물렀던 과거의 재·보궐선거라면 모를까, 사전투표와 투표시간 연장으로 50% 내외의 투표율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정신승리’일 가능성이 커진다. 정권심판 프레임으로 야당 지지층은 결집하고, 적폐청산 프레임이 약화하면서 민주당 지지층은 이완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적극 투표층은 야당 지지층에서 훨씬 많이 발견된다. 민주당의 지지기반인 20∼40대의 투표 이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선거는 절박한 쪽이 이긴다. 지금 야당은 절박하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칸타코리아에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안철수를 지지했던 74.4%가 단일화 이후 오세훈 지지로 이동했다. 승리의 충분조건인 ‘전략적 단일화’는 ① 두 후보의 지지 기반이 겹치지 않고 ② 패배한 후보 지지자의 70% 이상이 단일후보로 이동하며 ③ 단일후보가 상대를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란 세 가지 조건을 요구하는데, 오세훈·안철수 단일화가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다.
◇집권세력의 총체적 난국
범야권이 절박함 속에서 단일대오를 유지하는 것과는 달리 집권세력은 구성원 모두가 승리를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집권당 후보의 패배는 ‘대안 부재’ 심리로 이어져 특정 유력 대권 주자의 대세론을 살찌울 수도 있다. 4·7 보선에 나선 여야 후보의 지금과 같은 격차는 좁혀지겠지만, 민주당이 완전히 판을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성추행 사태’에 따른 선거인만큼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았다면 ‘원칙 있는 패배’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원칙 없는 패배’로 끝날 가능성이 커진다. ‘레드 팀’도 없고, ‘플랜 B’도 없는 전략 부재가 패배를 자초하는 형국이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세줄 요약
적폐청산 유통기한 끝 : 2017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에 압승을 안겨준 적폐청산 프레임 유통기한은 끝났으며, 4·7 보궐선거에선 정권심판 프레임이 인물과 이슈를 압도함. 민주당이란 메신저에 대한 유권자의 거부 현상임.
민주당의 거대한 착각 : 민주당의 전략적 오류는 ① 40%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 ② 중도는 이탈하지 않는다 ③ 문재인 레임덕은 없다 등 ‘거대한 착각’에서 온 것. 일련의 여론조사는 여당에 대한 중도의 확실한 이탈을 보여줌.
집권세력 총체적 난국 : 與는 조직력과 감성팔이로 ‘정신승리’를 하려 함. 野는 단일대오를 유지하지만, 집권세력은 모두가 승리를 원하는 것도 아님. ‘레드 팀’도, ‘플랜 B’도 없는 전략 부재가 與의 패배를 부르는 형국.
■ 용어 설명
‘프랭크 런츠’는 미국의 정치·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그는 자신의 특기를 “특정 정치·경제적 이슈나 후보자에 대한 여론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말들을 찾거나 언어를 테스트하는 것”이라고 설명.
‘레드 팀’은 조직 내 취약점을 발견해 공격하는 역할을 하는 팀. 조직의 성공을 위해 의도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함. 일종의 ‘악마의 대변인’ 같은 역할임. 원문보기 :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33001030242000001
0
0
3
nunjaragi01
2022년 3월 22일
In News
에필로그 우려 속 전쟁은 2019년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됐다
2020년 12월 들어 문재인 정권·윤석열의 전쟁은 정점 조국 사태에서 ‘자폐적 광기’로 중도층 지지 잃어
집권 5년 평가하면 ‘피해망상’과 ‘반박 강박’으로 압축
결국 민주당의 전략적 패착에 ‘주류 교체 전쟁’ 원점으로 2020년 4월 총선 직후인 5월 ‘정치 인사이드’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글은 ‘정치 인사이드’의 에필로그다. 2018년 1월2일에 기고한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는 칼럼이 프롤로그였다면 (보수 진영이) ‘경악할’ 참패로 끝난 4·15 총선 후일담이 에필로그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범민주가 아닌 단독으로 꿈만 같았던) 180석을 얻었다. … 민주당이 ‘주류 교체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했다. 길게 보면 1990년 3당 합당의 ‘보수대연합’ 이후 지속되었던 보수 우위의 지형이 종말을 맞았다. 지역·세대·이념·계층 전 전선에서 보수는 우위를 잃었다. 보수는 상수에서 변수로, 주류에서 비주류로 전락했다. 바야흐로 민주당 우위의 시대가 열렸다.”
오늘 이 글은 ‘정치 인사이드 시즌2’의 에필로그다. 뭐라고 써야 할까. 애매한(?) 결과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10년 주기’를 깬 5년 만의 정권교체에 방점을 찍어야 할까, 아니면 0.73%포인트 최소 표차에 의미를 둬야 할까. 며칠 전 조선일보에 기고한 ‘尹, 잘해서 이긴 게 아니라 잘못해서 질 뻔했다’는 칼럼을 인용해야겠다.
“… 5년 만의 정권교체다. 무능·오만·위선·내로남불·분열로 일관한 5년이었다. 정권교체 ‘10년 주기’를 깬 부끄러운 첫 기록이다. 축구로 치면 전반 45분이 끝난 하프타임에 전격 교체해 버린 격이다. 치욕적 교체다. 민주당의 대선 평가는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에서 시작하면 안 된다. 0.73%는 윤석열과 국민의힘 반성의 출발점이지 민주당 위로의 출발점이 아니다.
0.73%. 질 뻔했다. 윤석열 캠페인 전략은 시종일관 위험했다. 경선도 홍준표에게 질 뻔했다. 본선도 캠페인을 잘해서 정권교체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잘못해서 정권교체에 실패할 뻔했다. 승리의 일등 공신, 이등 공신, 삼등 공신 모두 국민의힘 밖에서 찾아야 한다.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된 초현실적 상황이 문재인 정권 실패를 상징한다. 이등 공신, 삼등 공신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다. 수많은 사람을 열거할 수 있다. ….”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권 5년은 초현실적 상황의 연속이었다. 조국·추미애·박범계 세 명의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1년6개월 이상 수사와 징계로 정면충돌하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수수방관했다.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에 대해 “재량 없이 재가했다”는 말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서초동에서는 수십만명이 ‘윤석열 구속’을 외치고, 광화문에서는 수십만명이 ‘조국 구속’을 외치는데도 국론 분열이 아니라고 했다. 그 결과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되는 초현실적 사태를 초래했다.
나는 2019년 7월2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사에 대해 “헌법 1조를 인용하는 분들은 국민의 강렬한 지지를 원한다. 정치인들이 쓰는 용어로 정치적 미래에 대한 계획이 더 있을 때 주로 쓴다. 취임사를 봤을 때 두 가지가 읽힌다. 국민 편에 서서 집권층에 부담스러운 수사를 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검찰총장 이후도 생각하는 것 같다. 법무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조국 전 민정수석과 긴장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 조국 수석이나 윤석열 총장은 굉장히 개성이 강하고 자존심도 세고 정치적 야망도 있어 보인다. 호흡이 잘 맞기보다는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전쟁은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됐다. 2019년 9월 정치 인사이드 ‘조국의 위기, 여당의 오판, 정치의 몰락’에서 “한국의 대표적 셀럽이자 ‘강남 좌파’의 상징인 조국 때문에 온 나라가 사실상 내전 상태다. … ‘혁명 세대’인 586은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검찰 쿠데타’로 규정함으로써 이 싸움의 본질을 권력투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 검찰을 개혁 주체로 보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검찰을 개혁 대상으로 보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진검 승부는 피할 수 없다. 검찰이 전광석화 같은 기습을 했다. 검찰의 칼이 훨씬 예리하고 빠른데 싸움의 기술도 능하다. 회복불능의 치명적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 만약 검찰, 언론, 야당에 의해 회복불능의 치명적 상처를 입으면 이런 상황을 야기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지지층이 꽤 될 것이다. 최순실 사태 때 중도 보수가 ‘왜 부끄러움이 우리 몫이어야 하는가?’를 물었던 것처럼 똑같은 질문을 문 대통령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정권, 어떤 정당, 어떤 정치인도 지지자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면 안 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후보자를 임명한다면 ‘불공정’에 예민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이탈은 불 보듯 뻔하다. ‘이게 나라냐’는 분노는 ‘이건 나라냐’로 되돌아올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 후보자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싸움의 본질을 진영 간 싸움으로 보는 전략적 오판 때문일 것이다. ‘조국이 무너지면 문재인도 무너질 것’ ‘조국을 지키지 못하면 핵심 지지층이 등을 돌릴 것’ ‘검찰 개혁에서 큰 성과를 내면 지지율은 회복될 것’ ‘그래도 자유한국당에 지지는 않을 것’ 등의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옳은 판단일까?”라며 민주당의 전략적 판단에 의문을 던졌다.
2020년 2월 칼럼 ‘이제 중도 진보가 묻는다, 왜 부끄러움은 우리 몫이어야 하는가’에서 “…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은 상대가 딛고 서 있는 땅에 대해 서로 무지했다. 정치를 권력투쟁으로 보는 정치인 문재인과 법과 원칙으로 보는 검사 윤석열의 실존적 충돌이다. … ‘586’은 권력은 싸워서 쟁취하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즉각 ‘검찰 쿠데타’ ‘윤석열의 난’ ‘적폐 검찰’로 규정하고 총동원령을 내렸다. 훗날 이 결정이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돌이킬 수 없는 전략적 패착으로 지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칙 있는 승리’가 가장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원칙 있는 패배’가 ‘원칙 없는 승리’보다 낫다고 했다. ‘원칙 없는 패배’는 경멸했다. 노무현이라면 (검찰의 수사를 받아들이는) ‘원칙 있는 패배’를 선택했을 것이다. 청와대가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택한 순간 ‘원칙 없는 승리’와 ‘원칙 없는 패배’만 기다릴 뿐이다. ‘원칙 있는 승리’와 ‘원칙 있는 패배’는 검찰의 몫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 검찰에 승리한다고 민심을 얻는 건 아니다. 이기고도 뒤로 가고, 지고도 앞으로 가는 것이 정치다. 노무현은 지는 길을 택하면서 앞으로 간 정치인이다. 정치는 민심을 잃으면 모든 걸 잃은 것이다”라고 쓴 대로 전략적 패착이 되었다.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전쟁은 2020년 12월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12월 칼럼 ‘윤석열을 마주한 문 대통령 … 이겨도 지는 전쟁 길목에 섰다’에서 “결국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맞서는 상황이 왔다. … 문 대통령도 더 피할 수 없다. … 회군할 마지막 기회는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징계 절차의 문제점과 해임의 부적절을 주장하며) 사의를 표명했을 때다. 징계위원장을 맡은 차관의 사의는 ‘플랜 B’의 출구전략을 검토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다음날 바로 새 차관을 임명하며 윤석열 해임이라는 ‘플랜 A’의 가속 페달을 밟았다.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었다. ‘윤석열의 검찰 쿠데타’인지, ‘추미애의 친위 쿠데타’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검찰 개혁에 명운을 건 문 대통령과 ‘개혁 주체’에서 졸지에 ‘개혁 대상’으로 전락한 윤 총장의 피할 수 없는 전쟁이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다. 얻을 건 별로 없고 잃을 건 많은 문 대통령이 훨씬 부담스럽다”며 재차 경고했다.
결국 2021년 1월 ‘민심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민심을 이긴 정권은 없다’ 칼럼에서 예견된 종말을 썼다. “… 문재인 정권의 ‘검찰 개혁’은 2020년 12월 완벽한 패배로 막을 내렸다. 정경심 교수에 대한 4년 선고로 도덕적으로 패했고,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정지와 징계 모두 법적으로 패했다. 도덕적·법적·정치적 완패다. 민심도 잃었다. 자칫하면 레임덕에 빠지고 정권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다. … 민주당이 국정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스윙보터인 중도의 지지를 계속 잃을 것이다. 중도의 지지를 잃으면 정권을 잃는다. 정권을 잃으면 친문도 친박처럼 빠르게 세가 약해질 것이다. 민심을 이긴 정권은 없다.”
지난 10년,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퇴행적 이념 정체성에 갇혀 산업화와 민주화의 위대한 유산을 모두 탕진했다. 박근혜 정권은 ‘국정 교과서 파동’, 문재인 정권은 ‘조국 사태’에서 ‘자폐적 광기’로 중도의 지지를 잃었다. 두 정권 모두 이견을 허용하지 않았다. ‘보수 동맹’은 중도 보수를 잃고 몰락했고, ‘민주 동맹’은 든든한 우군 2030세대를 잃고 정권을 잃었다. 정치는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예외가 없다. 두 정권 모두 스스로 지지기반을 좁히며 자멸했다.
문재인 정권의 전략적 패착은 두 가지다. 첫째, ‘1987 체제’ 이후 30년 만에 ‘2017 체제’로 대한민국을 리빌딩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오판과 오만으로 날려 보낸 것이다. 국민 80% 이상이 탄핵을 지지하고, 국회의원 234명이 찬성했다면 당연히 ‘탄핵 연대’를 ‘개혁 연대’로 발전시켜 개헌을 통한 ‘2017 체제’를 만들었어야 했다. 그러기는커녕 자기들만이 탄핵의 주체인 양 오판하더니 ‘민주 동맹’의 연대 대상인 정의당의 작은 기반마저 뺏어버리는 오만으로 위기를 자초했다. 둘째, 2017년 탄핵 이후 ‘보수 동맹’으로부터 이탈한 중도 보수를 ‘민주 동맹’으로 끌어들일 절호의 기회를 외면한 것이다. ‘친박’과 ‘친문’의 배타성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 국민의힘이 친박당을 벗어나면서 재기했듯 민주당도 친문당을 벗어날 때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 5년을 야박하게 평가하면 불행하게도 ‘피해망상’과 ‘반박 강박’에 사로잡힌 듯했다. 그 때문에 민심을 잃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극심한 진영 싸움과 국론 분열에도 불구하고 국민 통합에 소홀했다. 대통령으로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충돌도 너무 오랫동안 방치했다. 마땅히 조기에 수습했어야 한다. 또 최고 지도자로서 결단해야 할 탈원전·교육개혁·연금개혁·지소미아 파기 같은 고도의 전문 영역은 여론 조사에 미루더니 예민하게 민심을 따라야 하는 인사 문제는 아무리 반대 여론이 높아도 못 들은 척 외면했다.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최고 공직에 ‘경험’만 쌓고 갈 사람을 너무 많이 중용했다.
2020년 총선 이후 불과 2년 만의 대반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치 인사이드 시즌1’ 에필로그 칼럼 제목 “보수의 ‘정치적 폐색’, 스스로를 비주류로 유폐하다”를 그대로 민주당에 돌려주어야 할 것 같다. 솔직히 신문사에서 쓴 ‘폐색’이라는 단어가 조금 낯설었다. 사실 나는 ‘정치적 자폐’로 썼는데 요즘 ‘자폐’라는 단어를 쓰기가 조심스러워 바꾼 듯하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이번 칼럼 제목도 “민주당의 ‘정치적 자폐’, 스스로를 비주류로 유폐하다”로 써야 의미가 직관적으로 전달될 것 같긴 하다.
2017년 탄핵 이후 여전히 진행 중인 ‘주류 교체 전쟁’은 결정적 승기를 잡은 민주당의 전략적 패착으로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정권을 빼앗긴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승리한 보수 정당 국민의힘, 중도 정당 국민의당, 진보 정당 정의당 모두 위기다. 모든 정치 세력이 ‘상징 자본’을 다 탕진했다. 어느 정당이든 위기를 인정하고 혁신하는 쪽이 대한민국 정치의 주류가 되는 기회를 잡을 것이다.
나는 정치 컨설턴트·정치 분석가·정치 칼럼니스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정치 컨설턴트로서는 고객의 요구를 우선하고, 정치 분석가로서는 냉정한 분석을 하고, 정치 칼럼니스트로서는 권력을 비판하려고 노력했다. 박근혜 정권이나 문재인 정권 모두 그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다. 윤석열 정권도 같은 원칙으로 비판할 것이다.
지난 4년간 불편할 수 있는 글도 단 한 번의 내색조차 없이 받아준 경향신문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부당하고 지나친 비판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항의도 하지 않고 넓은 아량을 보여주신 정치권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고 격려해주신 독자 분들 덕에 4년이나 연재할 수 있었다. 뭐라 감사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언젠가 다시 기회가 된다면 그분들을 위해 한국 정치를 위한 희망의 글을 써보고 싶다. 원문보기 :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203202056005
0
0
106
nunjaragi01
2022년 3월 22일
In News
2030의 힘, 어디로 3월9일 네 명 중 한 명은 승자
나머진 혁명 수준의 ‘리빌딩’ 불가피
민주·보수·중도·진보 누구든
새로움의 핵심은 ‘젊은 세대’ 지지 설연휴에 ‘칸딘스키, 말레비치&러시아 아방가르드 : 혁명의 예술’ 전시를 관람했다. ‘검은 사각형’으로 유명한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사물을 묘사하는 부담에서 예술가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며 사각형, 원, 직사각형의 기본적 형태로만 그림을 구성한 극단적 추상 회화로 후대 미술가들이 구상에서 벗어나 추상으로 나아가는 데 풍부한 예술적 영감을 제공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실리 칸딘스키는 점, 원, 지그재그, 곡선, 대각선을 과감하게 활용했다. 말레비치가 ‘검은’ 사각형으로 충격을 줬다면 “색은 영혼에 떨림을 줌으로써,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힘이다”라고 주장한 칸딘스키는 화려한 색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선명한 색과 기하학적 형상으로 구성된 그의 그림은 추상 미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러시아 혁명 전야에 젊은 아방가르드는 기존 예술을 전복하는 ‘예술 혁명’의 전위였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혁명 예술’의 눈에는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불온한 선동으로 보였다. 예술적 자유를 위협받은 이들이 검열과 탄압에서 살아남기 위해 추상에서 구상으로 돌아가 생존을 모색한 슬픈 역사도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재평가된 이들은 20세기 현대 미술, 건축, 디자인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 어느 분야든 기존 체제를 전복시키는 아방가르드는 ‘앙팡 테리블’ 몫이다. 우리도 1957년 기존 국전에 반대하며 ‘앙포르멜’을 주도한 현대미술가협회 주역들은 20대다. 개혁 주체에서 개혁 대상으로 전락한 ‘586’도 20대인 1980년대에는 기존 체제의 전복을 꿈꾼 아방가르드였고 앙팡 테리블이었다.
며칠 전 ‘586 세대’ 대선 후보 네 명의 TV토론을 봤다. ‘RE100’ ‘EU 택소노미’ 같은 생소한 미래(?) 용어가 나왔지만 이들 모두 기존 체제 전복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라는 인상을 줬을 뿐이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이번 대선에서 기존 체제 전복을 꿈꾸는 아방가르드는 앙팡 테리블 이준석이 속한 ‘MZ세대’다. 대선 후보와 기성 정당은 20세기 캠페인에 머물러 있는데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은 21세기 캠페인을 즐기고 있다.
3월9일 한 사람은 승자가 될 테고 나머지는 모두 패자가 될 것이다. 진 쪽은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일 것이다. 궤멸 수준의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회복할 시간이 없어 지방선거에서 반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2024년 총선에서 반격을 목표로 ‘모든 걸 헐고 새로 짓는’ 리빌딩이 불가피하다. 혁명 수준의 ‘NEW 민주당’ ‘신진보’ ‘새로운 보수’ 운동이 올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민주·보수·진보 누구든 새로움의 핵심은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는 것이다. 기존 체제를 전복시키려 혁명적으로 진군하는 미래 세대의 지지를 잃는 세력의 미래는 없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과 정의당은 그들의 지지를 잃고 있다.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이 그 사람을 보여준다”는 말이 있다. 이젠 “말하지 못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시간이다. 정의당이 체제 전복의 주체인 아방가르드가 되지 못한 것은 2017년 대선 이후 수십 년 진보를 짓눌러 온 ‘민주 대 반민주’ 족쇄에서 ‘해방’을 선언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속의 삶을 청산하고 광야로 탈출해야 할 절호의 기회에 ‘시혜를 바라고’ 눌러앉은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고 썼다. 용기가 없으면 알을 깨고 나올 수 없다. 나오지 못하면 죽는다.
용기 부족은 안철수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기득권 양당 체제를 전복하려 했다면 처음부터 ‘제3의 길’을 뚝심 있게 걸었어야 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숫타니파타 경구 같은 결기가 있어야 했다. 2011년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양보, 2012년 문재인에게 대선 후보 양보, 2014년 민주당과 합당, 2020년 미래통합당과 선거 연대, 2021년 국민의힘 오세훈과 후보 단일화. 중도를 찾아 이 길 저 길 헤매다 중도에 길을 잃었다.
셰익스피어 비극 <리어왕>에서 세 딸의 사랑을 시험했던 리어왕은 달콤한 말로 아버지의 권력과 영토를 물려받은 두 딸에게 버림받고 광인이 되어 광야를 헤매다 이렇게 외친다. “여기 과인을 아는 이 없는가? 이건 리어가 아니다. …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국민의힘은 보수 정당이다. 국민의당은 중도 정당이다. 정의당은 진보 정당이다. 자기도 알고 남도 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민주당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지금 민주당은 우리가 알던 김대중·노무현·김근태의 민주당이 아니다. 만약 민주당이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 ‘중도 실용과 국민 통합’ ‘반칙과 특권이 없는 나라’ ‘원칙 있는 승리’ ‘민주주의’와 같은 김대중·노무현·김근태 정신을 정말로 계승했다면 2022년 대선 압승으로 ‘주류 교체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권력에 취해 달콤한 아부에 눈이 먼 리어왕처럼 광야로 쫓겨날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2017년 다시 안 올 역사적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국회의원 234명이 찬성하고, 국민 80% 이상이 지지해준 탄핵 동력을 ‘개혁 연대’로 전환시켰다면 ‘1987 체제’ 이후 30년 만에 대한민국을 리빌딩하는 ‘2017 체제’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자기들만 탄핵의 주역인 양 오만한 착각에 빠져 2020년 정의당을 버리고, 2021년 2030세대마저 잃었다. 2017년 탄핵 이후 중도 보수가 이탈하여 ‘보수 동맹’이 붕괴한 것같이 2030세대 이탈로 ‘민주 동맹’도 와해 직전이다.
‘보수 동맹’이 무너질 때처럼 위기의식이 없다는 점도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2016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얼마 안 돼 임기가 3년 넘게 남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통령 탄핵마저 “It’s none of my business”처럼 대했는데 지금 민주당 의원들 분위기가 딱 그렇다. 총선은 아직 2년 넘게 남았고, 공천이나 당선 가능성을 생각해보면 “야당이 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급한 건 이재명 후보와 지지자들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①위기에 동의하는가? ②원인은 무엇인가? ③해결책은 무엇인가? 순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위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다. 문재인과 이재명이 ‘원팀’이고, 지금 상황이 위기라는 데 동의한다면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야당과 언론을 상대로 저렇게 거칠게 말하도록 내버려둘 리 없다. 이해찬 말대로 정말 승리를 자신하는 걸까? 절박감도 위기의식도 없다.
기득권은 상대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혁신은 자기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기득권이다. 정권 교체 여론은 55%를 넘나들고 있지만 국민의힘과 윤석열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여론은 그보다 훨씬 낮다. 민주당이 여전히 승리를 자신하는 이유다. 하지만 ‘민주 동맹’에서 이탈한 2030세대가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정권 심판의 알을 낳기 위해 ‘잠시 빌린 둥지’로 생각하는 것이 민주당이 직면한 문제다. 특히 2030 남자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미 윤석열을 택한 듯하다.
이준석은 오바마의 설득력과 트럼프의 전략적 영민함을 동시에 갖췄다. “오바마가 되고 싶지만 실제는 트럼프에 가깝다”는 비판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실제로 ‘트럼피즘의 한국 상륙’ 징후는 이준석 체제 이후다. 일자리를 잃은 백인의 분노를 숙주 삼아 트럼피즘이 확산되었듯 2030세대의 분노를 타고 포퓰리즘이 확산되고 있다. ‘허경영 현상’도 무시할 수 없는 실체다. 정치적·도덕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지만 (전략적으로 매우 강력하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이준석과 그의 세대는 ‘586 체제’를 전복하는 아방가르드다.
한국의 유권자 지형을 세대로 분류하면 네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①1953년 이전에 태어난 ‘전쟁 세대’ ②1953년에서 1973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③1973년부터 1983년에 태어난 ‘X세대’ ④1983년 이후 태어난 ‘MZ세대’다.
전쟁과 가난을 겪은 ①세대의 실존적 키워드는 ‘생존’이다. 개인도 국가도 살아남아야 했다.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자”는 그 시대의 모토다. 독재를 경험한 ②세대의 상징적 키워드는 ‘민주’다. 두렵지 않아서 싸운 것이 아니라 두려움 없이 얻는 것은 가치가 없기 때문에 싸웠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문화적 르네상스’인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③그룹은 ‘개방’의 시대를 맞아 무한경쟁으로 내몰렸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선진국에서 태어난 ④그룹은 절망스러운 극단적 격차 시대에 태어나 ‘공정’을 갈망한다.
①세대는 ‘국민’ ②세대는 ‘시민’ ③세대는 ‘소비자’ ④세대는 ‘개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현재 세대별 판세를 분석하면 ①세대는 윤석열 지지가 압도적이다. ②세대 중 50대는 이재명, 60대는 윤석열의 상대적 우위다. ③세대는 이재명 우세가 확고하다. ④세대는 20대는 윤석열 우위, 30대는 치열한 경합이다. 2030세대가 ‘민주 동맹’에서 이탈한 이후 지형은 민주당에 불리한 것은 분명하다.
2022년 3월9일 이후 누가 이기든 모든 정당의 재구성은 피할 수 없다. 방향은 기존 체제를 전복시키려 몰려오는 2030세대의 지지를 받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586’은 이제 개혁 주체가 아니라 개혁 대상이다. 민주당은 정권 교체와 세대교체의 대상인 ‘이중 기득권’ 상황에 처했다. 민주당 위기의 핵심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정의당 장혜영같이 내부에서 혁신을 이끌 ‘MZ세대’ 정치인도 보이지 않는다. 혁명의 무기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혁명 세대가 몰려오고 있다. 어느 정당이든 혁신하지 않으면 혁명당한다. 원문보기 :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202062045005
0
0
29
nunjaragi01
2022년 3월 22일
In News
이재명·윤석열의 ‘남은 길’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 ABC에서 방영했던 <Eight Is Enough>라는 드라마는 8남매를 둔 중산층 가족의 삶을 다룬 시트콤이다. 한국에서는 <아들과 딸들>이라는 제목으로 일요일 오전에 방영됐던 기억이 있다. “Eight Is Enough”(8년이면 됐다)는 4년 중임 미국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원하는 야당 슬로건으로 쓰인다.
이 드라마에서 딕 밴 패튼이 맡은 아버지는 칼럼니스트다. 드라마 말미에 내레이션 칼럼을 들으며 칼럼니스트가 꽤 근사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신문에 글 쓰는’ 동경은 그때부터 자리 잡았다. 신문 읽고 신문에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신문이 ‘죽어가는’ 현실이 슬프다.
윤동주는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썼다. ‘죽어가는’ 모국어로 꾹꾹 눌러쓰는 시인의 아픈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대선이 있던 2017년부터 5년간 경향신문에 칼럼을 썼다. 다시 대선이 돌아왔다. <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 ‘시즌 1’이 2020년 총선 때까지였으니 ‘시즌 2’는 대선 때까지가 좋을 듯하다.
1987년 이후 8번째 대선이다. 7번의 대선에서 보수 정당은 네 번, 민주당은 세 번 승리했다. 노태우·김영삼·이명박·박근혜 네 명의 보수 후보는 단 한 번도 우위를 내주지 않고 이겼다. 반면 민주당 김대중·노무현은 역전승이다. 1997년 김대중은 두 아들 병역 의혹으로 이회창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역전했다. 대선 넉 달 전이었다. 2002년 노무현은 후보 등록 직전 정몽준과의 단일화로 역전했다.
새해 초 모든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이재명이 역전에 성공했다. 초박빙인 조사도 있었고, 두 자릿수까지 격차가 벌어진 조사도 있었다. 이재명도 김대중·노무현처럼 재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승리할까, 아니면 윤석열이 재역전하는 최초의 보수 후보가 될까. 도덕성을 뺀 지지율·호감도·국정능력 등 모든 지표가 이재명 쪽으로 기울고 있으나 아직 승자를 예측할 단계는 아니다.
이재명 후보도 “골든크로스라기보다는 데드크로스로 판단된다”며 낙관을 경계했다. 지지율 상승에 대해 “아주 미세하게 개선되는 추세”라며 “상대 후보 지지가 떨어지면서 발생한 현상이지 (자신의 지지가) 확고하게 개선됐다고 보이지는 않아 언제든지 (상대 후보의 지지가) 복구될 수 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 김동연 후보 다섯 분이 끝까지 간다고 했을 때 42~45%를 득표하면 승리할 것으로 본다”며 “지지율이 42%를 넘어서면 당선권에 들어간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맞는 분석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전화면접 조사에서) 43%를 돌파하면 당선이 유력하다.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는 35%·37%·40%·43%의 벽을 차례로 돌파해야 한다.
이재명은 35% 박스권을 돌파하고 37% 돌파를 시도 중이다. 35%는 당내 분열을 해결했다는 것이고 37%는 ‘정권유지(재창출)’ 여론을 거의 흡수했다는 의미다. 37%를 돌파했다는 일부 조사도 있다. 40% 돌파는 2030세대가 돌아오기 전에는 쉽지 않다. (한쪽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43%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나 가능할 것이다. 윤석열이 컨벤션 효과를 누리던 지난해 11월 3주 갤럽 조사는 이재명 31%, 윤석열 42%로 윤석열의 11%포인트 우세였는데 12월30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는 이재명 39%, 윤석열 28%로 이재명의 11%포인트 우세로 뒤집어졌다. 만약 이재명이 40%를 넘고 윤석열이 25% 밑으로 떨어지면 ‘후보 교체’와 ‘선대위 해체’ 주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다.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네 가지 전선, 즉 기득권 대 변화, 낡음 대 새로움, 과거 대 미래, 분열 대 통합에서 윤석열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기득권·낡음·과거·분열의 자리를 차지했다. 윤석열은 2002년 이회창과 2020년 황교안의 미래통합당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정권 교체에 성공하려면 두 가지 질문에서 55% 동의를 받아야 한다. ①정권 교체에 동의하는가? ②윤석열이 대안인가? ①에 동의하는 여론이 55%를 넘고, 동의하지 않는 여론이 35% 밑이라면 정권 교체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②에 동의하는 여론마저 50%를 넘으면 정권 교체는 거의 확실하다.
4·7 재·보궐 선거 때는 ‘정권 교체’ 여론이 55%를 넘고 ‘정권 재창출’ 여론은 35% 밑이었다. 선거 결과는 뻔했다. 지금은 정권 교체 여론은 갈수록 낮아지고 정권 재창출 여론은 높아지고 있다. (정권 교체 여론이 아직은 다소 높지만) 심각한 문제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대안으로 보지 않는다는 여론이 계속 높아지는 현실이다.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다.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신년 조사에서 여야 대선 후보와 정당에 대한 호감을 물었더니 이재명은 ‘느낌이 좋아지고 있다’ 27.4%, ‘나빠지고 있다’ 33.8%였는 데 반해 윤석열은 ‘좋아지고 있다’ 19.9%, ‘나빠지고 있다’ 50.4%였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좋아지고 있다’ 20.9%, ‘나빠지고 있다’ 36.0%였는데 국민의힘은 ‘좋아지고 있다’ 19.1%, ‘나빠지고 있다’ 40.4%였다. 윤석열과 국민의힘 이미지가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①이재명을 싫어하면서 윤석열이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이 잡아도 25%를 넘지 않는다. ②윤석열을 더 좋은 대안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재명이 싫어서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은 10% 정도 될 것이다. ①과 ②를 합쳐도 35%를 넘을 수 없다. 이번 대선은 ‘묻지마 1번’ 35%, ‘묻지마 2번’ 35%를 뺀 나머지 30% 중 먼저 15%를 얻는 게임이다. 이재명이 35%+α에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윤석열의 전략적 실수는 “상대가 싫어서” 찍는 표에만 의존한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권 심판’과 이재명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것은 유용한 공격 수단이 아니다. ‘한국일보·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도덕성’에서 이재명은 ‘충분’ 27.9%, ‘부족’ 70.4%였는데 윤석열은 ‘충분’ 37.1%, ‘부족’ 60.6%로 약간 우세했을 뿐이다. 그러나 국정능력은 이재명이 ‘충분’ 50.3%, ‘부족’ 47.5%인 데 반해 윤석열은 ‘충분’ 27.4%, ‘부족’ 69.8%로 절대 열세였다.
윤석열은 ‘선택적 잣대’로 ‘공정과 상식’의 상징 자산이 훼손되어 도덕성에서 절대적 우위를 잃은 반면 국정능력에서는 절대 열세인 상태에서 낡고 거친 메시지를 쏟아내기 때문에 중도와 2030세대가 등을 돌렸다. 메시지는 ‘신뢰할 수 있는 메신저’(에토스)가 ‘믿을 수 있는 논리’(로고스)를 ‘감동적으로’(파토스) 전달할 때 설득의 힘을 갖는다. 지금 윤석열은 ‘메신저 거부 현상’ 위기에 빠졌다.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 잘할 사람’을 뽑는 것이다. ‘더 좋은 대한민국’과 ‘더 좋은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주지 못하면 (높은 정권 교체 여론) ‘구도’의 우위가 있어도 승리할 수 없다. 4·7 재·보궐 선거에서는 오세훈과 박형준이 ‘인물 경쟁력’에서 밀리지 않았거나 오히려 앞섰기 때문에 ‘정권 심판’ 구도 우위가 작동한 것이다. 윤석열의 위기는 비전과 리더십에서 이재명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는 확신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5년 단임의 한국에서는 현직 대통령과 같은 당 후보라도 차별화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어느 정도 정권 교체 성격이 있다. 대중은 항상 ‘변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모두 그런 경우다. 2002년과 2012년 대선은 높은 정권 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이재명도 문재인과 차별화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문재인이 박근혜 대통령이 부족했던 ‘국민과 소통을 잘할 것 같은’ 이미지로 대통령이 됐듯이 다음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는 사람이 선택받을 가능성이 크다. (내 생각에는)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네 가지가 부족했다. ①국민통합 ②‘총사령관’ 역할 ③‘연금 개혁’ 등 사회 구조 개혁 ④최고의 인재 등용. 이 때문에 다음 대통령은 개혁을 위한 ‘강한 추진력’과 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리더십’을 갖고 있는 후보가 유리하다. 대중은 대통령을 선택할 때 좋아해서, 필요해서, 상대가 싫어서 찍는다. 필요해서 찍는 경우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①강한가? ②신뢰할 수 있는가? ③돌봐줄 수 있는가? 세 가지다.
‘강한가’는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보를 믿고 맡길 수 있는가에 대한 평가다. ‘신뢰할 수 있는가’는 경제정책을 포함하여 정부가 제시하는 방향과 정책대로 가면 대한민국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다는 믿음에 대한 평가다. ‘돌봐줄 수 있는가’는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얼마나 잘 들어주느냐에 대한 평가다. 문재인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장 부족했던 ‘돌봐줄 것 같은’ 이미지로 대통령이 됐다.
내가 이재명의 전략가라면 “앞으로 제대로, ‘나를 위해’ 이재명”보다는 “이재명은 합니다”로 정면 승부했을 것이다. 대장동 이슈로 이재명의 최대 강점인 ‘강한 추진력’이 치명적 리스크로 보일까 우려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슬로건이 강한 개혁 정부를 이끌 적임자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킨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과 더 어울리는 슬로건인 “나를 위해 이재명”은 자칫하면 이재명 이미지를 ‘개혁가’가 아니라 ‘포퓰리스트’로 가둘 수도 있다.
내가 만약 윤석열의 전략가라면 검찰총장 시절 문재인 대통령이 ‘뒤로 숨어’ 보이지 않았을 때 ‘대통령처럼 보인’ 이미지로 승부했을 것이다. 국민이 윤석열을 ‘불러낸’ 이유는 그 때문이다. 정치 경험이 없고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윤석열은 전략적 판단과 정치적 언어의 한계로 인해 빠른 속도로 ‘대통령다운’ 이미지를 잃었다. 2030을 잡겠다고 어설프게 접근했다가 오히려 지지를 잃었다. 이제라도 “대통령다운 대통령”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좋다. 아직 지지율 40% 벽을 넘지 못한 이재명은 선거를 지배하는 ‘구도’의 힘을 무시하면 안 된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존 케리는 정책이나 대통령 자질 등 인물 경쟁력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압도하고 ‘총사령관’ 이미지에서만 뒤졌는데 이것이 치명적이었다. 이라크 전쟁 중 치러진 대선에서 “이번 대선은 테러와 싸울 것인가, 테러에 굴복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거”라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프레임에 갇혀 패했다.
이재명의 분석대로 안철수와 부동층으로 옮겨간 ‘정권 교체’ 지지자들은 언제든 다시 윤석열 지지로 돌아올 수 있다. 정권 교체 여론이 55%를 넘고 정권 재창출 여론이 35%를 밑돌면 인물 경쟁력과 상관없이 구도의 힘이 선거를 지배할 것이다.
윤석열은 2020년 황교안의 미래통합당처럼 ‘혁신 없는 통합’의 길로 패배할 것인가, 아니면 2030의 지지를 얻어 압승했던 2021년 4·7 재·보궐 선거의 길로 승리할 것인가 결단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결단하지 않으면 마지막 기회의 문이 닫힐 것이다. 원문보기 :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201021831001
0
0
16
nunjaragi01
2022년 3월 22일
In News
‘이준석 이슈’가 남긴 것 대선 D-100일(11월29일)에 발표한 KBS·한국리서치 조사 결과 이재명과 윤석열 지지도는 35.5%로 같았다. KBS·한국리서치가 11월8일에 발표한 조사에서는 윤석열 34.6%, 이재명 28.6%였다. 이재명의 상승세가 뚜렷했다. 이날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은 페이스북에 ‘윤석열 후보의 55승1무와 이재명의 카멜레온 전략’이란 글을 올렸다. 윤석열의 압도적 우세를 앞세웠지만 이재명의 변화 혹은 변신에 대한 초조가 묻어났다.
그날 저녁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라는 불길한(?) 메시지를 남겼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12월1일 채널A·리서치앤리서치 조사는 이재명 35.5%, 윤석열 34.6%로 나왔다. 오차범위 내지만 어쨌든 윤석열의 첫 패배였다.
이재명 지지율 상승세 속에 터진
이준석과 선대위를 둘러싼 갈등
윤석열 리더십의 문제로 번졌다 12월2일 이준석 대표는 “당무 거부냐 얘기하시는데 후보의 의중에 따라 사무총장 등이 교체된 이후 제 기억에 딱 한 건 이외에 보고를 받아본 적이 없다”며 ‘패싱’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또 “후보가 저와 어떤 걸 상의한 적도 없기 때문에 저희 간에 이견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석하자면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들이 자기를 당무에서 배제하고 있으며 윤석열 후보와도 차단하고 있다는 고발이다.
‘윤핵관’들에 대한 분노는 “후보가 배석한 자리에서 ‘이준석이 홍보비를 해 먹으려고 한다’는 발언을 한 인사를 후보가 누군지 아실 것”이라며 “모르신다면 계속 가고, 아신다면 인사 조처가 있어야 할 걸로 본다”는 대목에서 폭발했다. 그날 저녁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는 “당대표는 대통령 후보의 부하가 아니다”라며 직선적으로 도발했다. 윤석열 후보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정치는 사실의 게임이 아니라 인식의 게임이다. 대중은 이슈보다는 이슈를 다루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본다. 이준석 주장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윤석열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로 관전 포인트가 이동했다. 대선 때는 어떤 일이든 후보의 리더십 문제로 귀결된다. 어려운 위기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준석 이슈’는 윤석열의 기회다. 5년 단임의 한국 대선에서는 여야 후보 모두 (변화를 바라는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현직 대통령과의 차별적 이미지가 중요하다.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와 다른 (사회적 약자와 서민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소통 이미지로 대통령이 되었다. 다음 대통령 역시 문재인 대통령 리더십 공백을 메우는 사람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두 가지 치명적 한계를 보였다. ‘국민통합’을 방기했다는 것과 위기 때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국 사태 당시 국민들이 서초동과 광화문광장에서 충돌할 때도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로 사태를 악화시켰다. 대선 경선에서는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에 대해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는 말로 이견에 대한 폭력적 공격을 부추겼다. 그 결과 지금 대선 후보들이 국민통합이라는 말을 꺼낼 수도 없는 상황을 만든 책임이 크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총사령관’이다. 평시에는 안 보여도 위기 때는 보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충돌을 1년 이상 방치했다. 이 문제를 대통령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해결한다는 말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야당 대선 후보가 된 상황이 리더십 실패의 방증이다.
윤석열 위기의 핵심도 ‘본·부·장 리스크’나 비전 부재가 아니라 리더십 부재다. 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을 경험하면서 국민이 다음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대통령다운’ 리더십이다. 윤석열은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 출연해 “대통령이 되면 절대로 하지 않을 두 가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절대 혼밥하지 않겠다. 야당 인사나 언론인, 국민들과 항상 함께하겠다. 필요하면 두 번씩 먹더라도 여러 사람들과 밥 먹으며 소통하겠다”는 것과 “절대로 국민 앞에서 숨지 않겠다.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늘 나와서 잘했든 잘못했든 이야기하겠다”고 약속했다.
소통은 그저 밥만 같이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려면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정치적 유연함과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사람과 지지자에게 욕먹을 용기가 없는 사람은 대통령은커녕 정치할 자격이 없다. 박근혜·문재인 대통령 리더십의 치명적 약점이 바로 그 지점이다.
후보 선출 후 컨벤션 효과를 누리던 윤석열이 이재명의 추격을 허용한 것은 선대위 구성을 둘러싼 당내 분열을 해결하지 못하고 장제원·김성태·이준석 이슈가 터졌을 때도 “(장제원 의원은) 선대위에서 어떠한 직책도 맡지 않았다”, “(김성태 KT 청탁은) 오래돼 기억 못했다”, “(윤핵관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사실이 없다”며 뒤로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윤석열 리더십에 대한 회의가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와 조국 법무부 장관 수사를 한 윤석열이라면 ‘비선 실세’와 ‘아빠 찬스’에 대해 스스로 엄격한 잣대가 필요했다. ‘윤핵관’에 대해서도 “다시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어야 한다.
위기의 정점으로 치닫던 12월3일
보수층의 “백기투항” 비판에도
윤, 김종인 ‘선거 전권’ 수용하며
국민의힘 분열 상황을 해소하고
2030·중도 확장할 라인업 갖춰 위기의 정점은 12월3일 오전이었다. 이준석 대표가 “윤 후보 측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하면서 의제를 사전 조율해야 만날 수 있다고 전했다. 제가 누군가에게 (의제를) 사전에 제출해서 검열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이 있다. 후보가 직접 나오지 못하고 ‘핵심 관계자’의 검열을 거치자는 의도라면 저는 절대 만날 계획이 없다”며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배수진을 친 이준석의 완승, ‘윤핵관’의 완패였다. 결국 김종인과 이준석은 원하는 것을 ‘더’ 얻으면서 합류했다. 노련한 김종인과 영민한 이준석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는가”에 탁월하다. 둘은 황금 콤비다. 역량의 차이가 커서 애당초 ‘윤핵관’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김종인과 이준석을 끔찍이 싫어하는 보수 인사들에게는 충격적 반전이었다.
전여옥은 페이스북에 “윤석열이 무너져 내렸네요. 간단히 말하면 ‘백기투항’! 오늘 ‘울산담판’은 윤석열 후보와 당대표 이준석의 ‘만남’이 아니죠. ‘김종인 아바타’ 이준석과 윤석열의 담판이었습니다. 불고기 먹자마자 나온 첫 속보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수락’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윤석열 후보는 친절하게도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전권’을 갖고 선대위를 총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라며 당혹감과 절망감을 토로했다.
결국 지난 7월 윤석열을 만나 “야심이 있다면 (김종인 위원장에게) 매달려야 한다”고 조언했던 이준석의 뜻대로 됐다. ‘전권’을 가진 김종인은 이준석의 예언(?)대로 “개표방송 때 당선된 후보 옆자리에 계실” 가능성이 커졌다. 김종인과 이준석만 승자가 아니다. 윤석열과 홍준표도 승자다. 두 사람 모두 상대를 이용해 ‘얻고 싶은 것’을 얻었다.
윤석열은 김종인·이준석·홍준표를 통해 당내 분열 상황을 해소했다. 이젠 유승민과 안철수만 끌어들이면 된다. 어차피 대통령이 꿈인 윤석열로서는 경선의 강을 건넌 배를 불사르고 본선의 바다를 건널 큰 배가 필요했다. 2일 저녁 총괄선대위원장 ‘플랜B’ 홍준표와의 만남은 김종인을 압박하기에 충분했다. 홍준표도 모르지 않았다. 그는 “나를 이용해서 대선 캠프를 완성했다면 그 또한 훌륭한 책략”이라고 평했다. 다시 한번 대권 도전을 노리는 홍준표로서는 “나의 역할도 있었으니 그 또한 만족”이라며 자칫 몽니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을 노련하게 벗어났다.
정치는 수학이 아니다. 하나의 정답이 없다. 지리산이나 북한산 올라가는 계곡이 수도 없이 많듯이 정치는 어느 길로 가느냐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선거 전략은 매 순간 여러 개의 시나리오별 강·약점을 검토하고 실행할 수 있는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은 후보의 몫이다. 국민의힘 선대위 구성의 핵심은 ‘김종인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세울 것인가? 말 것인가?’다. 어떤 경우든 홍준표는 강력한 옵션이다. 김종인을 대체하는 ‘플랜B’로 쓸 수도 있고, 김종인을 움직이게 만드는 레버리지로도 쓸 수 있는 카드다. 이번에는 결과적으로 레버리지가 됐다.
만약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고 제3지대에 머물다가 (4·7 서울시장 선거 오세훈·안철수처럼)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하는 길을 택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윤석열 야권 단일후보 가능성은 50% 정도였을 것이다. 국민의힘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가 될 가능성도 그 정도였을 것이다. 다만 누가 후보가 되든 정권교체 가능성은 90%는 됐을 것이다.
윤석열은 조기 입당을 선택했다. 그 순간 윤석열이 국민의힘 후보가 될 가능성은 90%로 올라갔지만 정권교체 가능성은 50%로 낮아졌다. 11월5일 후보 확정 후 인터뷰에서 “조기 입당이 가장 잘한 일”이라는 자평처럼 윤석열로서는 “땅에 떨어진 권력을 주울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이었다. 후보 될 가능성이 압도적이었으니까. 문제는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정권교체를 위험에 빠뜨린 ‘윤핵관’들이다.
윤석열이 김종인에게 총괄선대위원장을 맡기고 이준석 대표에게 “선거운동 기획의 전권을 드리겠다”고 선언한 것은 50%의 가능성을 다시 90%로 높이기 위한 전략 변경이다. 김종인 선대위는 인물·전략·메시지·공약·선거운동의 타깃을 스윙보터인 중도와 2030에 집중할 것이다. 윤석열은 진영 싸움을 끝내자는 메시지를 들고 국민통합의 바다를 맘 놓고 항해할 수 있는 거대한 배로 갈아탔다. 광폭 행보를 위한 자신감과 교두보를 얻었다.
정권·세대교체 여론에 눌린 여권
위기 직시하고 ‘조국의 강’ 넘어
담대한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까 반면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선거를 짓누르고 있는 정권교체 여론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선거에서는 55% 대 35%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정권교체 여론이 55%를 넘고 정권재창출 여론이 35%를 밑돌면 정권교체는 거의 확실하다. 현재 정권교체 여론은 55%를 넘나들고 있고 정권재창출 여론은 35% 언저리다. 이재명의 지지율이 35%에 막혀 있는 이유다.
국민의힘은 ‘탄핵의 강’을 완전히 건넌 라인업으로 전쟁터에 나섰는데 민주당은 아직 ‘조국의 강’과 ‘문재인의 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586’이 중심인 민주당은 정권교체와 세대교체의 대상인 ‘이중 기득권’ 상황에 처해 있다. 만약 민주당이 (2002년 노무현처럼) 이재명이 ‘야당 후보처럼’ 보일 정도의 담대한 변화의 공간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정권을 지키기 쉽지 않을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강성 지지자들의 여전한 목소리와 태도를 볼 때 쉽지 않아 보인다. 위기라는 데 동의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위기라고 보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았다. 이재명은 위기라고 느끼는 것 같지만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여전히 동의하지 않고 있다. 지난 총선까지 보수 정당이 네 번 연속 패배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원문보기 :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112052113005
0
0
11
nunjaragi01
2021년 11월 22일
In News
대통령의 시대가 가다 지난주 화요일 약속 때문에 서울광장을 지나는데 “박정희 대통령님 정말 그립습니다”라는 현수막 옆에 우리공화당이 설치한 ‘구국의 영웅 박정희 대통령 각하’라고 쓰인 추모분향소가 있었다. ‘아, 오늘이 10월26일이구나.’
내 시선을 끈 것은 야외에 전시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대통령이었던 그는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대통령이었으므로 내게는 전제군주 같은 존재였다. 그의 비극적 죽음을 들었을 때의 두려웠던 기억이 또렷하다. 사진 속에는 무서운 독재자 박정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인간 박정희’가 보였다. ‘유신 시대’가 아니라 그저 나의 10대 시절이 떠올랐다.
그날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했다. 쿠데타로 군인의 시대를 연 박정희와 군인의 시대를 마감한 노태우가 한날 죽었다니 묘한 느낌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별세라는 단어를 고르는 데 많은 생각을 했다. 서거했다, 돌아가셨다, 사망했다, 죽었다 중에서 고를 수도 있었다. 나는 김대중·노무현·김영삼 대통령 때는 망설임 없이 ‘서거했다’고 썼다. 정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결정했다. 그러니 ‘서거’가 맞다. 다시 써야겠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박정희 죽은 날에 떠난 노태우
군인의 시대 열고 닫은 두 사람
같은 날 세상 뜨다니 ‘묘한 느낌’ 내가 태어난 이후 대통령 10명 중 6명이 서거했다. 박정희·김대중은 ‘국장’, 최규하·노무현은 ‘국민장’, 김영삼·노태우는 ‘국가장’이다. 1967년 제정된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장과 국민장으로 구분돼 있었으나 2011년 ‘국가장법’으로 통합했다.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고 국가장으로 결정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조문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내가 별세와 서거 사이에서 고민했듯 문재인 대통령도 직접 조문을 두고 고민했을 것이다.
나는 때때로 내가 살았던 10명 대통령 시대를 되돌아본다. 박정희(1917년)·최규하(1919년)는 1910년대에 태어났고, 김영삼(1927년)·김대중(1924년)은 1920년대에 태어났다. 전두환(1931년)·노태우(1932년)는 1930년대에 태어났고, 노무현(1946년)·이명박(1941년)은 1940년대에 태어났다. 박근혜(1952년)·문재인(1953년)은 1950년대에 태어났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1960년대생일까? 나는 박정희·최규하 시대에 10대, 전두환·노태우 시대에 20대, 김영삼·김대중 시대에 30대, 노무현·이명박 시대에 40대를 보냈고, 박근혜·문재인 시대에 50대를 보내고 있다.
프랑스 작가 장폴 뒤부아는 <프랑스적인 삶>이라는 소설에서 한 프랑스 남자의 자화상을 다섯 번이나 바뀐 정권의 변천사 속에서 밀도 있게 그려냈다. 책의 목차가 인상 깊다. 1. 샤를 드골 2. 알랭 포에르(1) 3. 조르주 퐁피두 4. 알랭 포에르(2) 5.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6. 프랑수아 미테랑(1) 7. 프랑수아 미테랑(2) 8. 자크 시라크(1) 9. 자크 시라크(2) (알랭 포에르는 최규하처럼 짧은 권한대행을 두 번 지냈다)
이런 제목, 이런 목차의 소설이라면 한국이 제격이다. <한국적인 삶>이라는 소설의 목차가 1. 박정희 2. 최규하 3. 전두환 4. 노태우 5. 김영삼 6. 김대중 7. 노무현 8. 이명박 9. 박근혜 10. 문재인으로 되어 있다고 상상해보라. 이들이 우리의 정신세계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프랑스와는 비교가 될 수 없다. 언젠가는 내가 살았던 시대를 <한국적인 삶>이라는 글로 정리하고 싶다.
나는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직전 중앙일보에 ‘양김의 화해’라는 글을 기고했다. “… 김대중. 살아서 이미 역사가 된 인물. 상고를 나온 호남 출신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의지와 집념으로 그토록 갈망하던 대통령과 노벨상을 모두 얻은 사람. 대한민국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그를 끔찍이 좋아하는 사람과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 이 나라에서 그의 이름은 사람을 가르는 선이다. 그런 그가 그를 수식했던 ‘정치인’ ‘재야인사’ ‘대통령’을 벗고 ‘인간 김대중’으로 돌아와 말없이 누워 있다. … 김영삼. 이름의 대중성(?)과 영향력에서 한 치의 밀림도 없는 김대중의 라이벌. 그도 이미 역사다. 서울대를 나온 영남 출신으로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대통령이 된 사람. 대한민국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이 두 사람을 김영삼·김대중 순으로 부르는 사람과 김대중·김영삼 순으로 부르는 사람, 그리고 호칭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날까 봐 그냥 양김으로 부르는 사람.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을 가르는 세로축과 가로축에 그 유명한 애칭, YS와 DJ가 있다. … 그들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국민의 진한 아쉬움 속에 ‘전설’로 남았을 것이다. 끔찍한 상상이긴 하지만 그들이 민주화의 도정에서 죽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신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영웅으로 죽는 것’보다 ‘영웅으로 삶을 마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여든을 훌쩍 넘긴 그들 삶의 공과 과를 써 내려간다면 공의 줄보다 과의 줄이 더 길 수도 있겠지만 무게를 달아보면 공 쪽으로 기울 것임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 많은 사람이 그들을 비판하고 그들의 시대를 끝내고 싶어 했지만 어느 정치인도 그들과 같은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 누구도 그들의 도전정신, 의지, 헌신, 용기, 역사인식, 소명의식, 정치력, 업적 근처에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국민의 기립 박수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보다 두 달 전인 2009년 6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에는 ‘죽음 이후의 몇 가지 어지러운 생각’이라는 칼럼을 썼다. “노무현다운 죽음이었다. 유서는 그가 감명 깊게 읽었다는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연상시켰다. 이순신의 비장한 최후. 타살로 해석되는 자살, 자살로 해석되는 타살. 그는 정말 이순신을 따르고 싶었을까? 그는 ‘불의의 죽음’으로 신화를 완성한 링컨도 좋아했다. 그는 자신도 죽어야 산다고 생각했을까? 그는 죽어서 다시 태어났다. 5월23일 이후 나라는 휴먼 다큐멘터리 ‘인간 노무현’으로 뒤덮였다. 그러자 ‘대통령 노무현’은 죽고 세상을 향해 분노했던 ‘서민 노무현’이 되살아났다. 서민들은 슬퍼했고 분노했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이 ‘인간 노무현’을 감출 수 없었듯 ‘인간 노무현’도 ‘대통령 노무현’을 지울 수는 없다. … 미국 대선에서 패한 매케인은 ‘오바마는 나의 대통령이다’라고 선언했다. 선거가 끝나면 대통령은 모두의 대통령이다. 이명박은 나의 대통령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노무현도 나의 대통령이었다. 그의 유언에 따라 봉하 마을에 작은 비석 하나는 세우되 나는 그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는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공으로 덮을 수 없었던 과오들
“과오에 용서 바란다” 전했지만
충분한 사죄가 못되는 건 분명 그 이후에도 나는 (유족이 동의한다면) 언젠가는 현충원으로 모셨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유족과 지지자들이 끝까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국민통합을 위해 그게 좋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애국은 시효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공과가 있다. 위대한 인물도 ‘돌이킬 수 없는 과오’에 짓눌려 고통스러워한다. 얼마 전 코로나19로 별세한 콜린 파월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이자 최연소 합참의장으로 1991년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다. 2001년에는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흑인 최초로 국무장관으로 기용돼 2005년 1월까지 대외정책을 주도했다.
합리적이고 온건한 그는 미국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여러 번 공화당 대선 후보로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전쟁은 파월의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았다. 당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보유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증거를 찾지 못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그는 2005년 ABC방송과 인터뷰하면서 “이는 오점이고 항상 내 경력의 일부가 될 것이며, 이 때문에 지금도 고통스럽다”고 괴로워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79년 12·12쿠데타와 1980년 5·18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콜린 파월처럼 “그 잘못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고백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유족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는 말을 유언처럼 전했지만 충분한 사죄가 못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전두환과 달랐던 그
아버지 대신해 5·18 희생자에
사과 전한 아들…추징금 완납 정부 국가장 결정·유족의 사죄
이를 받아들이는 국민의 마음
민족사의 여정에 꼭 필요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고, 5·18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이었던 박남선씨가 조문한 것은 병석에 누운 자신을 대신해 아들이 5·18 묘역을 여러 차례 참배하고, 희생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점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달리 추징금을 완납했고, 1987년 국민 직선으로 뽑힌 대통령이라는 점도 사유가 됐을 것이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시절 큰 고초를 겪은 민주화운동가 출신 김부겸 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은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의 따뜻하고 품격 있는 조사가 더 빛났다. “오늘 우리는 노태우 전 대통령님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고 있습니다. 재임 시에 보여주신 많은 공적보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고인께서 유언을 통해 국민들께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죄와 용서의 뜻을 밝힌 것입니다. 노태우 대통령님이 우리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큰 과오를 저지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 대통령님의 가족께서 5·18 광주민주묘지를 여러 차례 참배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고인께서 병중에 드시기 전에 직접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만나 사죄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남습니다. … 우리는 국가장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어떤 사죄로도 5·18과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되신 영령들을 다 위로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 오늘의 영결식은 고인을 애도하는 자리이자 새로운 역사, 진실의 역사, 화해와 통합의 역사로 가는 성찰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김부겸 총리가 조사 마지막에 밝혔듯 정부의 국가장 결정과 유족의 진정성 있는 사죄,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국민의 마음은 ‘민족사의 먼 여정에 꼭 필요한 일’이다. 지금은 분노와 증오로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없지만 먼 훗날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도 공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외적으로는 냉전 이후 전환기의 기회 포착과 국내적으로는 민주화 이행기 관리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6·29선언으로 새로운 헌법에 기반을 둔 ‘1987체제’가 태어났다. 쿠데타와 혁명을 동시에 폐기하고 상대를 ‘죽일 적’이 아니라 ‘이길 경쟁자’로 보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 직선제를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한 체제로 이행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진전이었다.
1988년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이후 이른바 ‘북방정책’으로 소련과 중국을 포함하여 45개국과 수교했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긴장과 대립의 남북관계를 공존과 평화의 관계로 진전시키는 전기도 마련했다. 토지공개념 도입과 지방자치제 부활도 업적이다.
그는 쿠데타 주역이라는 원죄, 36.6%의 낮은 득표율, 그리고 여소야대라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3당 합당’을 단행하는 담대함도 있었다.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요즘 정치인과 비교해볼 때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정치의 본령도 체화했다. 그러나 그가 가장 평가받아야 할 점은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것이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결정적으로 갈랐다.
이제 한국의 대통령은 메시아나 영웅의 아우라는 고사하고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할) 지도자의 이미지도 거의 상실했다. 대통령은 더 이상 우리를 이끌지 못한다. 이제부터는 지도자 없는 시대를 살아야 한다. 대통령의 시대는 끝났다. 다만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선판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나는 두려울 뿐이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110312118005#csidx0e9deb02955f66a9fba1de22d57006d
1
0
115
nunjaragi01
2021년 11월 22일
In News
‘탄핵 늪’과 ‘대장동 늪’ 5년 전, 2016년 10월 ‘최순실 게이트’로 불린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다. 10월24일 JTBC <뉴스룸> 태블릿 PC 보도가 게임 체인저다. 이미 조선일보와 한겨레에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대한 보도를 했지만 스모킹건은 태블릿이다. 겨우 버티던 둑이 터지자 걷잡을 수 없는 물이 쏟아져 나와 빠른 속도로 박근혜 정권을 집어삼켰다.
태블릿 보도 며칠 전인 10월20일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 재단들이 저의 퇴임 후를 대비해서 만들어졌다는데 그럴 이유도 없고, 사실도 아닙니다. 만약 어느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서 자금 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입니다”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안절부절못했다. JTBC 보도 당일인 24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며 반대해왔던) 개헌 카드를 뜬금없이 던졌다. 최순실을 덮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할 태세였다. 하지만 터진 둑을 손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최순실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도 다음날인 10월25일 1차 담화가 나왔다.
“…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을 도움 받은 적 있습니다.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은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습니다. …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믿기 어려운 이 담화가 불에 기름을 부었다. 이슈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후속 보도가 이어졌다. 11월4일 2차 담화가 불가피했다. “…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습니다. … 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 국민 여러분께 깊이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최순실 게이트’ 국정농단 사태에
어설픈 대처로 촛불의 분노 야기
초유의 탄핵을 자초한 박근혜
한국 보수의 비주류 전락 불러 정치에서는 이슈보다 이슈를 다루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국민이 100을 기대할 때 예상을 뛰어넘는 150을 던지는 것이 정치다. 생명이 위독할 때는 극약 처방을 써야 한다. 60~70을 아무리 던져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다. 11월29일 국민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3차 담화가 또 나왔다.
“…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입니다. … 저는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습니다.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말씀해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실패한 대국민 담화의 반복이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연쇄담화범’으로 조롱했다. 국민은 더 이상의 담화를 허용하지 않았다. 탄핵이나 하야만 남았다. 하야를 거부했기에 탄핵은 불가피했다. 탄핵을 자초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었다.
2011년 12월27일 박근혜비대위 출범에서 2016년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까지 5년은 박근혜시대였다. 훗날 역사가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기록할지는 알 수 없다. 탄핵과 형량에 대해서도 논쟁이 있을 수 있다. 업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박근혜시대에 보수가 한국 정치의 주류에서 비주류로 전락한 것만은 틀림없다.
2012년과 2016년 두 번의 박근혜 공천은 당을 ‘친박’ 당으로 만들었다. 박근혜와 친박은 보수 정당의 정체성을 1970년대로 되돌렸다. 역사적 퇴행이었다. 2011년 7월4일 뽑힌 홍준표·유승민·나경원·원희룡·남경필의 화려한 4050 지도부가 총선을 뛰어보지도 못하고 불과 5개월 만에 무너졌다. 오세훈의 사퇴로 느닷없이 생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로 홍준표체제가 붕괴하고 12월27일 박근혜비대위가 들어선 순간 ‘개혁보수’의 입지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당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마저 제압하자 개혁보수의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박근혜는 ‘숨겨왔던’ 본색을 드러냈다.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였다. 그 순간 ‘보수동맹’으로부터 중도보수가 이탈하기 시작했다. ‘진박 감별’과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코미디를 낳은 친박의 공천 전횡은 중도보수를 경악시켰다. 국민의당 존재도 이탈을 가속화시켰다. 2016년 총선 패배는 예견되었다. 친박 잔재는 2020년 황교안체제까지 남아 보수에 궤멸적 타격을 입혔다.
국민의힘은 무너진 보수동맹을 복원하기 위해 곳곳에 남아 있는 박근혜시대 잔재를 지우고 있다. 시간을 박근혜비대위 이전으로 돌려놓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우선 4·7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체제로 되돌려 놓았다. 국민의힘이 10월8일 파이널 4강에 홍준표·유승민·원희룡을 보낸다면 이탈했던 중도보수를 끌어드릴 개혁보수 목소리 회복으로 무너졌던 보수동맹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준석 대표 체제의 국민의힘
무너진 보수동맹의 복원 위해
박근혜시대 잔재 지우기 분주
2030 지지 등 민주동맹에 타격 박근혜시대에 그림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가 발탁한 이준석은 36세에 당 대표가 되어 민주동맹에 큰 균열을 내고 있다. 경험 부족과 지나친 젠더 이슈화로 인한 리스크는 여전히 있지만 지난 10년간 민주동맹의 절대적 우군이었던 2030세대 일부를 국민의힘으로 끌어들인 것은 전적으로 이준석의 공이다. 민주동맹으로부터 2030세대가 이탈하는 것은 2016년 중도보수가 보수동맹으로부터 이탈한 것에 버금가는 충격을 민주당에 안겨줄 것이다. 이미 4·7 보궐선거에서 공포를 경험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보수의 심장인 대구에서 탄핵의 정당성을 당당하게 밝히고 대표가 된 이준석은 친박 잔재를 빠르게 지우고 있다. 화천대유에 연루된 곽상도를 노련한(?) 플레이로 사퇴시켰다. 탄핵 부정과 부정 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을 정권교체의 가장 큰 걸림돌로 생각하는 이준석체제에서 황교안이 파이널에 들어가는 것은 끔찍한 결과다. 대선 승패를 좌우할 중도층과 2030세대의 지지를 위해서는 원조 개혁보수인 원희룡이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결과다.
윤석열·홍준표·유승민·원희룡 네 명의 치열한 경선이라면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 국민의힘은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민주당 후보가 유력한 이재명 지사에게 이길 수 있다고 볼 것이다. 강한 보수 정체성으로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홍준표, 문재인 정권 청산 적임자를 원한다면 윤석열, ‘따뜻한 보수’를 주창한 개혁보수로 젊은층의 지지를 원한다면 유승민, ‘원조 개혁보수’로 이재명 지사와 같은 나이, 같은 지사 출신으로 정면 승부한다면 원희룡을 선택할 것이다.
내부 분열로 터진 ‘대장동’ 이슈
대선 앞둔 여권에 최대 위기
숱한 난관을 극복해온 이재명
이번에도 돌파할 수 있을지 주목 대장동 둑이 터지기 일보 직전
최순실 사태에서 되새길 교훈
‘지지자를 부끄럽게 만들지 마라’ 국민의힘이 ‘탄핵 늪’에서 거의 빠져나오고 있다면 민주당은 ‘대장동 늪’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 민주당은 2012·2016·2020년 총선 등 세 번의 문재인 공천으로 강한 ‘친문’ 당이 되었다. 친박 새누리당 못지않게 친문 더불어민주당도 정체성에 집착한다.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생각이 다른 사람은 침묵하거나 당을 떠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 ‘종북 청산’이 이념적 자폐인 국정교과서로 치달았듯, 문재인 정권 ‘적폐청산’도 피해망상의 ‘개혁 강박증’으로 내달렸다. 문제는 다양성이 사라진 당은 단일대오·일치단결이 아니라 조그만 외부 충격에도 쉽게 균열이 간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보수 분열의 결과지 원인이 아니다. 민주당도 대장동 이슈 때문에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분열 때문에 대장동 이슈가 터진 것이다. 대장동 이슈가 누구를 집어삼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이재명 지사가 부인한 대로 유동규가 측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최순실 사태에서 민주당이 놓치면 안 되는 교훈은 내부 알력으로 시작된 폭로는 누구도 덮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또 다른 우려는 당시 새누리당이 최순실의 존재와 사건의 실체를 전혀 몰라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대장동 사태도 그렇게 전개될 수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016년 10월29일 촛불집회에서 “… 박근혜는 국민이 맡긴 무한 책임의 권력을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던져주고 말았습니다.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잃었습니다. 박근혜는 이미 이 나라를 지도할 기본적인 소양과 자질조차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국민 앞에 스스로 자백했습니다.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이 아닙니다. 즉각 형식적 권력을 버리고 하야해야 합니다. 아니 사퇴해야 합니다. 탄핵이 아니라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십시오”라며 하야를 주장했다. 이 연설로 이재명은 ‘최초로 하야를 주장한 대권 주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유시민은 이재명에 대해 “이재명은 반기문처럼 반반 후보예요. 트럼프 반, 노무현 반”이라고 촌평했다. 이재명은 “내가 말을 직설적으로 하긴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처럼 사회적인 막말은 안 한다. 나는 성공한 버니 샌더스처럼 되고 싶다”는 말로 ‘한국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가 ‘역대 미국 대통령의 강점을 모두 가졌지만 역대 대통령의 나쁜 점도 모조리 가진 후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을 생각한다면 ‘한국의 트럼프’라는 별명이 가장 어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잘 알다시피 이재명 지사는 숱한 위기를 상상할 수 없는 대응으로 극복하고 이 자리까지 온 신화적인 인물이다. 대장동 이슈도 과연 돌파할 수 있을까. 민주당 후보가 유력한 이재명의 위기는 민주당의 위기다. 너무 멀리 와서 이젠 돌아갈 수도 없다. 믿고 정면돌파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미 그렇게 결정한 듯하다.
그러나 이재명 지사와 민주당이 최순실 사태로부터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교훈이 있다. 어느 정권, 어느 정당, 어느 정치인도 지지자를 부끄럽게 만들면 안 된다. 최순실 사태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박근혜 지지를 호소했던 지지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내가 이러려고 박근혜를 지지해달라고 했나’라는 자괴감은 ‘홧김에 민주당 지지’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민주당도 똑같은 위기를 맞고 있다. 대장동 사태도 자칫하면 ‘내가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하는 자괴감을 갖게 할 수 있다. 국정교과서와 같은 이념적 광기를 참아준 지지층이 최순실 사태 때 분노로 폭발했듯이 조국 사태를 진영 논리로 버텨준 민주당 지지층도 배신감으로 등을 돌릴 수 있다. 특히 2030세대의 분노는 이탈을 가속화할 것이다. 대장동 둑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110032113005#csidxc8a8dd1f56923f99860f4705be0a051
1
0
50
nunjaragi01
2021년 9월 09일
In News
‘이재명 대세론’과 대항마 16대 대통령 선거 사흘 전인 2002년 12월16일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오른쪽)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SBS에서 열린 합동 TV토론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유권자 투표 행태에 대한 여러 학설이 있다. 사회학적으로 접근한 컬럼비아 학파는 유권자는 그가 어떤 사회집단이나 사회네트워크에 속했는가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지역·계층·인종·종교 등이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본 것이다. 반면 사회심리학적으로 접근한 미시간 학파는 정당에 대한 귀속감, 쟁점에 대한 태도, 후보자에 대한 선호에 따라 투표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복잡한 정보의 지름길로서 ‘정당 일체감’을 강조했다. 쉽게 말해 판단이 어려우니 “정당 보고 찍는다”는 것이다.
‘합리적 선택이론’도 있다. 유권자는 과거에 대한 평가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미래를 선택한다는 주장이다. 선거의 성격에 따라 ‘전망적 투표’와 ‘회고적 투표’로 구분한다. 정권 중간에 치러지는 총선은 ‘심판’이라는 회고적 성격이 강한 반면, 새로운 5년을 맡길 대통령 선거는 ‘기대’를 반영한다는 논리다. 미국 대통령의 재선 도전 선거는 회고적 성격이 강하고, 5년 단임 우리 대통령 선거는 전망적 성격이 좀 더 강하다.
오랜 시간 선거를 관찰한 결과 우리 대통령 선거는 ‘정당 일체감’보다는 ‘인물 일체감’이 더 큰 듯하다. 민주주의 역사가 짧아 ‘인물을 좇아’ 이합집산하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 7명의 대통령 모두 다른 당명으로 당선되었다. 노태우는 민주정의당, 김영삼은 민주자유당, 김대중은 새정치국민회의, 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 이명박은 한나라당, 박근혜는 새누리당, 문재인은 더불어민주당이다.
2016년 총선 당시 정당 지지율이 선거 예측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① 김대중 대통령 ② 노무현 대통령 ③ 이명박 대통령 ④ 박근혜 대통령 중 누구를 좋아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내심’이 드러났다. 새누리당 지지가 더 높은 지역에서도 ①과 ② 합이 ③과 ④ 합보다 높은 지역은 민주당 후보가 이길 가능성이 높았다.
한국의 역대 대선을 지켜보면
정당보다는 인물 보고 찍어
노태우 이후 7명 대통령 모두
다른 당명으로 당선이 방증 나는 이 결과에서 한국 유권자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인물에 투사한다는 영감을 받았다. 조국 사태 때 “① 조국 법무부 장관을 신뢰합니까? ② 윤석열 검찰총장을 신뢰합니까?”로 묻거나 “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신뢰합니까? ② 진중권 동양대 교수를 신뢰합니까?”로 물었다면 민심을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보수 측 인사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홍준표가 국민의힘 후보가 될 수도 있나요?”와 “이재명이 대통령이 될 수도 있나요?”다. 질문을 해석하면 “윤석열이 좀 불안해 보이네요” “민주당은 이재명이 되겠죠?”라는 전망과 함께 “어떻게 이재명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나요?”라는 불만과 불안이 읽힌다.
좋은 학교를 나온 ‘주류 엘리트’일수록 홍준표나 이재명 같은 ‘아웃사이더’를 인정하지 못한다. 그건 미국 주류 엘리트가 버락 오바마나 도널드 트럼프를 배척한 것과 비슷하다. 그들은 비주류 아웃사이더인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 이미 대통령이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이재명은 왜 안 되겠는가.
아웃사이더는 기득권 엘리트에 대해 ‘분노’하는데 주류 엘리트는 “밑에서 올라온” 아웃사이더를 ‘경멸’한다. ‘주류 중의 주류’ 이회창과 ‘비주류 중의 비주류’ 노무현이 맞붙은 2002년 대선이 그런 양상으로 흘러갔다. 두려움에 과도하게 사로잡히면 상대를 경멸하게 된다. 경멸은 두려움의 방증이다. “두려움이 잉태하여 경멸을 낳고, 경멸이 장성하여 패배를 낳는다.”
“왜 최고의 학벌을 가진 주류 엘리트들이 아웃사이더에게 패배하는가?”는 나의 오랜 주제였다. 최고 엘리트들이 정치에서 실패하는 이유에 대한 나의 결론은 이렇다. ① 정치를 (가슴이 아닌) 머리로 한다. ② 정치를 (동지들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한다. ③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가 없다. 내 결론은 그들의 그런 특성이 정치에서 실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정치는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사람이 성공한다.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사람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정말 유권자의 투표 행태는 합리적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사람에 따라 ‘합리’에 대한 해석이 다를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자산이 크게 늘어난 강남에 반문재인 유권자가 많고, 자산이 줄고 전·월세 대란의 피해를 본 서민이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다면 뭔가 불합리해 보인다. 언뜻 보면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다. 지지한 정부의 ‘정책의 배신’으로 물질적 손실이 따르더라도 자신이 싫어하는 기득권 엘리트에게 ‘정신적’ 고통을 줄 수 있다면 그 선택을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는가. 돌이켜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을 인정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고통당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했는가.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도 극심한 정신적 분열을 겪었다.
어려운 이론이 아니더라도 유권자가 정당이나 후보를 선택하는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 있다. ① 좋아해서, ② 필요해서, ③ 상대가 싫어서 찍는 것이다. 팬덤이 많거나, 국정 능력이 뛰어나거나, 비호감이 적어야 이길 수 있다. 정권 교체 여론이 정권 유지 여론보다 다소 높기는 하지만 국민의힘이 정권 교체를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①, ②, ③ 중에 어느 것 하나 민주당을 압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능하다는 이미지를 잃은 게 치명적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동의 이름은 ‘여민관(與民館)’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위민관(爲民館)’으로 바뀌어서 박근혜 정부 때까지 유지되다가 문재인 정부가 다시 ‘여민관’으로 돌려놓았다. 두 이름은 두 정치 세력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 여민과 위민은 ‘대중주의’와 ‘엘리트주의’를 상징한다. ‘더불어’는 민주당의 정치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엘리트주의는 대중을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보는 한계가 있지만 능력·품격·헌신(노블레스 오블리주)이 강점이다. 보수는 최근 이 세 가지를 모두 상실했다.
히말라야가 무너지면 에베레스트의 아우라도 사라진다. 보수의 페르소나 박근혜가 몰락하자 보수의 아우라도 사라졌다. 민낯이 드러나자 보수는 저잣거리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김어준의 나꼼수와 뉴스공장은 타락한 양반(주류 엘리트)들의 위선을 조롱하는 한판의 마당놀이다. 미(美)나 숭고함보다는 추(醜)와 비속이 두드러지고, 서민적 비애, 풍자와 해학으로 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반란의 시대, 놀이의 시대다. 대중은 환호하고 엘리트는 환장한다.
민주당 첫 지역 경선서 압승
이재명, 승기 굳히기 확실시
국민의힘 경선 판도를 바꾸는
게임체인저로 작용할 듯 ‘누가 문재인 정권에 맞섰나’서
‘누가 이재명에 경쟁력 있나’로
야당 후보에 대한 질문 달라져 전통적으로 민주당 경선은 기득권 엘리트를 향한 대중의 잠재적 전복 기운이 폭발하는 정치적 반란의 장이다. 이 에너지를 과소평가하는 보수 엘리트들은 ‘이재명 현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순회 경선 첫 지역인 대전·충남에서 54.81%로 압승했다. 27.41%를 얻은 이낙연 전 대표를 더블 스코어로 눌렀다. 본인도 “제 생각보다 좀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고 놀랄 정도로 큰 격차였다. 무엇보다 과반의 지지를 받은 것이 의미 있다. 당심도 결국 민심을 따랐다. 대세론이 탄력을 받았다. 민주당 경선은 사실상 승부가 끝났다. “될 사람 밀어주자”는 분위기가 확산되면 9월12일 1차 ‘슈퍼위크’에서 민주당 후보가 조기에 확정될 수도 있다.
모든 정권이 ‘믿을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 후보를 찾았지만 늘 실패했다. 언제나 “이길 수 있으면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있으면 이길 수 없었다”. 친문도 “이재명은 믿을 수 없고, 이낙연은 이길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하지만 결론은 뻔했다. 어느 정당이 이길 수 없는 후보를 뽑겠는가. 조금이라도 이길 가능성 있는 후보를 믿을 도리밖에 없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 조기 확정은 국민의힘 경선 판도를 바꾸는 게임체인저다. 지금까지는 “누가 가장 문재인 정권에 맞섰는가?”였지만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가시권에 들어오는 순간 “누가 이재명에 맞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가?”로 질문이 바뀐다. 기준이 바뀌면 선택도 달라진다. 첫 번째 질문의 정답은 누가 봐도 윤석열이지만 두 번째 질문의 정답은 이제부터 찾기 시작할 것이다.
윤석열의 첫 번째 위기다. 이 위기를 잘 넘긴다고 하더라도 “누구로 승리하는 것이 진정한 정권 교체인가?”로 질문이 또 바뀌는 순간 두 번째 위기가 올 수 있다. 국민의힘 입당을 선택한 순간 대비했어야 할 위기다. 최재형의 처지는 더 군색하다. 애초부터 (윤석열) ‘대체 카드’로 출발한 한계가 뚜렷하다. ‘반문 주자’로서는 윤석열에 밀리고, ‘보수 정통성’으로는 홍준표를 이길 수 없고, ‘개혁 보수’로는 유승민·원희룡을 넘을 수 없다. 4명이 참여하는 파이널 경선에서 보지 못할 수 있다.
‘역선택 방지’ 주장은 윤석열·최재형의 정치적 역량 미숙을 보여준다. 자칫 명분도 실리도 다 잃을 수 있다. 사실 역선택 방지는 누구나 선거인단이 될 수 있는 민주당에서 나올 얘기지 랜덤으로 여론조사하는 국민의힘에서 나올 얘기가 아니다. 확률적으로 희박한데 현실적으로 벌어질 일인 양 호도하는 것은 패배에 대한 불안과 초조만 노출시킬 뿐이다.
결국 최재형이 발을 뺐다. “저희 캠프 역시 역선택 방지를 주장한 바 있으나 정해진 룰을 바꾸는 것이 저의 가치관과 맞지 않아 멈추기로 했다”고 했지만 경선룰이 아니라 현직 감사원장이 곧바로 대선에 출마하는 선례를 남기는 일이 가치관에 맞는지부터 신중했어야 한다. 윤석열만 우스운 꼴이 됐다. 관철시킬 수 있는 정치적 힘도 없이 ‘대선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을 주장한 것은 전략적 실수다.
뜨는 홍준표, 봉하마을 찾아
‘2002년 노무현처럼’ 문구 남겨
윤석열은 위기 넘길 수 있을까 “추석 전후로 골든크로스로 갈 수 있다”며 부쩍 자신감을 보인 홍준표는 광폭행보를 하고 있다. 3일 경남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후 방명록에 “2002년 노무현 후보처럼”이라는 문구를 남겼다. “노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 제일 소탈했던 분이었다. 당이 달라 그분을 힘들게 한 적이 있었다”고 솔직하게 회상했다. “진보에는 노무현이 있었다면 보수에는 홍준표가 있다”며 ‘보수의 노무현’으로 불리길 기대했다.
윤석열로서는 홍준표만 버거운 상대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맞서 ‘따듯한 보수’를 내세운 ‘개혁 보수’의 상징 유승민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무엇보다 그는 경제 전문가다. 경쟁자인 윤석열·홍준표·원희룡·최재형이 모두 법조인이라면 확실히 차별화된 경쟁력이다. 토론에 강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다. 파이널 경선에서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원조’ 개혁 보수 원희룡도 무시할 수 없다. 3선 국회의원과 재선 도지사 경력의 원희룡은 민주당 후보가 유력한 이재명과 같은 50대다. 국민의힘으로서는 2002년 노무현이 ‘변화’로 보이고 이회창이 ‘기득권’으로 비친 구도를 피할 수 있는 좋은 카드다. 실력으로 이룬 ‘수석 인생’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홍준표와 더불어 그도 ‘밑에서 올라온’ 정치인이다. 민주화운동 경력과 민주당과 다섯 번 싸워 모두 이긴 것도 어필할 수 있는 이력이다.
이번 대선도 ‘아웃사이더’가 ‘주류 엘리트’에 맞서 이긴 2002년 대선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109052107005#csidxd030179b5d09b04b449ab53ea108559
0
0
100
nunjaragi01
2021년 9월 09일
In News
윤석열의 입당 대선 사실상 ‘양자구도’로
과거를 보면 5%P 이내 승부
결국 승자는 중도층이 선택 입당으로 쉬운 길 택한 ‘윤’
비전·리더십 제시 못하면
외연 확장 앞길은 어려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제3지대는 사실상 소멸되었다. 이로써 2022년 대선은 2002년, 2012년 대선과 같이 사실상 양자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커졌다. 2002년 대선은 노무현 48.91%, 이회창 46.59%로 불과 2.3%포인트(P) 차이였다. 2012년 대선은 박근혜 51.55%, 문재인 48.02%로 3.53%P 차이였다. 두 번 모두 3%P 내외의 박빙이었다.
반면 다자 구도로 치러진 2007년 대선은 이명박 48.67%, 정동영 26.14%로 무려 22.53%P, 2017년 대선은 문재인 41.08%, 홍준표 24.03%로 17.05%P 큰 격차였다. 내년 대선이 양자 구도로 치러진다면 양 진영이 총결집하면서 5%P 이내에서 승부가 갈릴 가능성을 역사는 예고한다. 극심한 네거티브에도 1·2위 후보의 지지율이 크게 무너지지 않는 건 이미 진영 간의 전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땅에 떨어진 권력을 주우러’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한나 아렌트는 <한나 아렌트의 말 - 정치적인 것에 대한 마지막 인터뷰>에서 “혁명가는 혁명을 만들어내지 않아요. 혁명가는 길거리에 권력이 떨어져 있는 것이 언제인지를 알고, 그걸 집어 들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사람이에요”라고 통찰했는데 그런 의미에서는 윤석열도 혁명가의 피가 흐른다. 혁명이든 쿠데타든 기습이 성공을 보장한다. 적(?)들이 분열되어 있고 ‘반(反)윤석열’로 뭉칠 수 없는 지금이 기습의 적기다.
제3지대 닫아버린 국민의힘
정권교체 전략은 안 보이고
이준석 당대표 불안감 심화 입당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윤석열의 야권 후보 가능성이 올라간 만큼 정권교체 가능성은 낮아졌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국민의힘 후보가 뽑힌 11월 이후 단일화하는 것이 훨씬 좋은 전략이다. 안철수가 입당하지 않고 국민의힘 오세훈과 단일화한 것이 (정권교체를 원하는) 중도 지지층의 이탈을 막았다. 안철수의 후보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선거 승리 가능성은 높아졌다.
윤석열이 “11월 이후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에서 제가 이긴다면 국민의힘에 입당하여 기호 2번으로 대선에 나가겠습니다”라고 했다면 윤석열의 후보 가능성은 조금 낮아졌겠지만 정권교체 가능성은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윤석열은 손쉬운 선택을 했고, (윤석열과 최재형을 입당시킨) 국민의힘은 위험한 선택을 했다.
윤석열은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제1야당에 입당해서 초기 경선부터 참여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의힘이 국민으로부터 더 넓고 보편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결심했다”고 솔직하게 말함으로써 어렵고 좁은 길 대신 쉽고 넓은 길을 택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정권교체를 위해 입당했다”는 말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입당했다”는 뜻이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 후보가 돼야 대통령이 될 테니까.
이해할 수 없는 건 국민의힘이다. 정권교체를 위한 전략적 구상이 없다. 윤석열·최재형·김동연·안철수가 정권교체에 뜻을 같이한다고 분명히 밝혔다면 이들에게 ‘중원’을 장악할 시간과 공간을 열어줬어야 한다. 중원 장악 후 연대하는 것이 확실한 승리 전략이었다. 4·7 서울시장 선거 때는 안철수가 그 역할을 자임했다. 과연 윤석열의 입당은 정권교체를 위한 좋은 선택일까.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군사적 요충지인 형주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 잘 알 것이다. 제갈량은 ‘융중책’에서 천하삼분 계책의 핵심으로 형주 장악을 제언했다. 어렵게 손에 넣은 형주를 다시 빼앗기면서 유비는 몰락했다. 한국 대선의 형주인 중도는 ‘보수의 회군’으로 무주공산이 되었다. 보수 진영의 전략적 실책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강’ 의지가 없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당내 주자들은 외면한 채 “윤석열이네… 최재형이네…” 하면서 권력을 좇는 부나방처럼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살던 시대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였으나 전쟁을 용병에 의존했다. 그는 용병을 싫어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자신의 안전을 자신의 힘으로 지킬 의지가 없으면 어떤 국가도 독립과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힘이 아니라 운에 의존해 자신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력에 기초를 두지 않는 권세나 명성만큼 허무한 것은 없다’는 타키투스의 말은 어느 시대에나 유용한 현명한 생각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패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민주당은 4·7 패배의 교훈을 벌써 잊었다. 국민의힘도 2016년 총선·2017년 대선·2018년 지방선거·2020년 대선 패배 때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두 당 모두 승패를 결정할 중도를 외면하고 핵심 지지층에 의존하는 ‘정체성’ 정치에 갇혀 있다.
한국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①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여전히 40%나 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 ②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직도 저렇게 많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사람. ③저 두 세력이 저렇게 많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사람. 단언컨대 대선은 ③의 지지를 받는 쪽이 이긴다.
중도의 지지가 중요한 이유는 선거 승리뿐만 아니라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말한 대로 ‘압도적 승리’가 아니라 ①과 ②의 전쟁에 ③이 양쪽으로 흩어져서 5%P 내의 초박빙으로 끝난다면 끔찍한 미래가 기다릴 것이다. 대한민국은 보복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또다시 ‘광장’에서 충돌할 것이다.
우리에게 대통령은 통합의 지도자는커녕 분열의 늪이다. 지금은 ‘문재인의 늪’에 빠져 있다. 민주당은 ‘친문’ 늪, 국민의힘은 ‘반문’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과 최재형마저 그 늪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민주당이 외면한 중도를 취할 절호의 기회를 버리고 회군함으로써 대선전쟁을 위험에 빠뜨렸다. 두 진영 모두 궁중암투로 인해 텅 빈 전략 요충지를 방치하고 있다.
이낙연과 경쟁하던 이재명
지지자 이탈 리스크 적어져
앞으로 더 집중공세 펼칠 듯 보궐선거 참패로 대선 전망이 어두웠던 민주당은 기회다.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입당했기 때문에 민주당은 맘 놓고(?) 싸울 수 있게 됐다. 윤석열이 밖에 있었다면 이재명과 이낙연 지지층 일부는 경선 후 이탈했을 것이다. 이젠 그럴 염려가 없다. 후방을 노리는 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보궐선거를 앞두고 안철수는 “누가 서울시장이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지지층 누구도 실망하지 않도록 국민의힘이 오픈 플랫폼을 열어주십시오”라고 했는데, 윤석열도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권교체가 중요합니다. 중도와 민주당 이탈층까지 정권교체에 함께하도록 11월 이후에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하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었다.
안철수와 달리 윤석열은 이 말도 덧붙일 수 있었다. “제가 후보가 되면 국민의힘에 입당해서 2번으로 출마하겠습니다.” 들어가서 후보가 되는 것과 후보가 된 후 들어가는 것은 중도의 지지 명분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이제 중원에는 안철수와 김동연만 남았다. 세력과 지지율 없이 어느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팽팽한 싸움으로 흐르면 몸값이 치솟을 수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7월31일 “안철수 대표가 합당을 위해 만남을 제안한다면 언제든 버선발로 맞을 것이지만 시한은 다음주로 못 박겠다. 다음주가 지나면 저는 휴가를 가고 휴가 이후에는 안 대표를 뵈어도 버스 출발 전까지 제대로 된 합당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갖기 어렵다”며 최후통첩을 했다.
걸핏하면 휴가를 말하면서 유력 대선 주자들을 압박하는 것은 무례다. 윤석열이 입당했는데 이제 와서 안철수가 서둘러 들어갈 이유가 없다. 윤석열이 밖에 있었다면 제3지대 연대를 모색할 수도 있고, 국민의힘에 들어가 경선에 참여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둘 다 어렵다. 그렇다면 이준석 대표와 협상을 하는 것보다 11월 이후 대표 권한을 넘겨받게 될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협상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 가능성은 낮지만 밖에 있으면 출마의 문도 조금은 열려 있다.
“권력기관장·헌법기관장 하신 분들이 임기를 채우기 전에 나와서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해 국민이 어떻게 볼지 생각해봐야 한다. 감사나 수사를 통해 과거를 재단하는 일을 하셨던 분들이다. 정치는 미래에 대한 일이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인데 잘 맞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어떤 비전과 콘텐츠가 있는지 궁금하다”며 윤석열·최재형을 직격한 김동연 전 부총리는 진영 논리를 비판하는 캠페인을 독점할 수 있는 포지션이다. 진영 싸움 속에서 존재감이 지워질 수도 있지만 수혜주가 될 수도 있다.
국민의힘 입당을 선택한 윤석열은 ‘보수 정체성’과 ‘중도 확장성’의 상충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보수 DNA’를 증명하면서 호남 표도 노려야 한다. 쉽지 않은 목표다. 2017년 안철수도 호남과 영남, 보수와 중도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어려운 캠페인 목표 속에서 길을 잃었다. 홍준표·유승민·원희룡이 던지는 “윤석열로 이긴다고 해도 진정한 국민의힘의 승리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입당했으니 이제부터는 뒤가 없는 진검 승부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들의 협공을 버텨내야 한다.
도전자 포지션의 윤석열은 세 가지 캠페인 목표가 있다. ①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대한민국을 잘못 이끌고 있다. 반드시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②내가 더 나은 비전과 리더십이 있다. ③내가 가장 경쟁력이 있다. ①은 야권 후보의 공통된 캠페인 목표다. ‘이길 후보’를 찾는 보수층은 ③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대한민국과 나를 위한 더 좋은 정권교체를 찾는’ 중도층은 ②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윤석열이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지, 어떤 대통령이 될 것인지를 판단하고 지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유승민은 “이번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다. ‘반문’과 ‘정권심판’만으로 이길 수 없다. 이번 대선은 과거와 싸우는 게 아니고 미래를 놓고 국민이 어느 세력에게 더 믿음을 주느냐의 싸움”이라며 중도·수도권·청년층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며 보수층의 반문 정서에 기대 정권교체만을 외치는 윤석열을 겨냥했다. 실제로 윤석열 캠프에 참여한 인사들의 면면이나 후보의 메시지는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중도 확장성에 대한 의구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원희룡도 “집권하면 문재인 정부 청산은 불가피한데 윤석열·최재형은 ‘보복 프레임’에 걸려들 수 있다”며 두 사람은 ‘승복할 수 있는 청산’의 적임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은 대환영이지만 그런 분들이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는 것은 문제”라며 윤석열과 최재형은 정권교체의 주연이 아니라 조연에 그쳐야 한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훼손하면서 정치에 참여한 이유와 야당의 대선 후보가 되려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면 국민의힘 입당은 자충수를 넘어 패착이 될 수도 있다. 정치에서 명분을 잃는 건 씨름에서 샅바를 놓친 격이다.
무리한 압박으로 장수들을 불러들여 중도를 공략할 기회를 잃게 만든 이준석 대표는 불필요한 ‘젠더 이슈’로 여성을 등 돌리게 하고 있다. 대표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지난주 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에서 남성은 32%로 같지만 여성은 민주당 39%, 국민의힘 24%로 15%P까지 벌어졌다. 그런데도 젊은 대표와 대변인은 오기로 ‘쓸데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정치는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윤석열 입당으로 민주당 경선은 이재명 지사에게 좀 더 유리한 상황이 됐다. ‘친문’과 ‘호남’ 이중 덫에 갇힌 이낙연은 ‘본선 경쟁력’을 무기로 약점을 파고드는 이재명에게 실점하고 있다. 지역주의 논쟁도 잃은 것이 더 많다. 안동 출신 이재명은 ‘호남이 지지하는 영남 후보’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지역주의 논쟁을 마다할 리 없다. 계속 도발함으로써 논쟁을 키울 것이다. 윤석열이 밖에 있었다면 그런 도발은 도박이었다.
국민의힘은 2002년 대선의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 한나라당 이회창이 여당 후보이자 챔피언처럼 보였고, 민주당 노무현이 야당 후보이자 도전자처럼 보였다. 2002년처럼 국민의힘이 ‘주류 기득권’으로 보이는 순간 대선 승리는 낙관할 수 없다. 만일 이재명이 민주당의 후보가 된다면 노무현처럼 싸울 것이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사례에서 보듯 문재인·이재명도 정권교체 성격이 있다. 이재명의 강점이다.
윤석열의 입당은 ‘게임 체인저’다. 구도가 달라졌으니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108012116005#csidx6176fd5954a8d229fc6b6c30e13d7fd
0
0
35
nunjaragi01
2021년 9월 09일
In News
2022 대선 키워드 ‘진영 전쟁’ 수십년 만에 주류 차지한 민주당
비주류로 위치가 바뀌어 버린 보수
두 세력의 치열한 ‘패권 공성전’과
‘586’의 대통령 첫 배출 여부가
이번 대선에서의 최대 관전포인트 2022년 대선 레이스 출발 총성이 울리자마자 몸을 풀던 선수들이 빠른 속도로 뛰어나갔다. 국민의힘은 강력한 오너가 없는 권력의 공백 상태고 여당도 절대 주주가 없는 상황이라 유례없이 많은 후보가 패권을 노리고 있다. 군웅의 할거는 11월이 되면 삼국시대로 좁혀질 것이다. 누가 중원의 패권을 차지할까.
1990년 3당 합당 이후 한국의 정치 지형은 민자당 대 반(反)민자당,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의 구도였다. 보수가 상수인 보수 우위 시대였다. 2017년 보수의 분열과 탄핵 이후 정치 지형은 민주당 대 반민주당으로 변했다. 민주당이 상수인 민주당 우위 시대다. 오랜 시간 연대, 통합, 단일화는 (단독 집권이 불가능했던) 민주당의 전매특허였는데 지금은 보수의 고육지책이다. 2017년 탄핵 지진은 정치 지형을 바꿔 놓았다.
이번 대선은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수십년간 비주류였던 민주당이 어렵게 차지한 주류의 지위를 굳힐 것인가, 아니면 몰락한 보수가 다시 주류의 패권을 회복할 것인가. ‘주류 교체 전쟁’의 중대한 분수령이다. 또 하나는 민주화세대인 ‘586’ 대통령의 첫 탄생 여부다. 1960년 이후 태어난 세대에서 대통령이 나온다면 ‘586권력’은 패권의 정점을 찍을 것이다. 세력과 세대의 패권 공성전이 최대 관전 포인트다.
‘역사적’ 도전도 몇 가지 있다. ①1987년 이래 유지돼온 보수·민주 진영 권력 교체 ‘10년 주기설’이 깨질까. ②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제3지대’ 대통령이 나올까. ③국회의원 경험 없는 최초의 대통령이 탄생할까. ④더불어민주당이 역사상 처음으로 같은 당명으로 대통령을 만들 수 있을까.
최초는 아니어서 역사적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두 번째 도전도 있다. ①2007년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지방자치단체장 출신 대통령이 나올까. ②1992년 김영삼 대통령처럼 30년 만에 진영을 넘어간 대통령이 나올까.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야권 후보로 분류되는 이례적 상황이라 가능성이 꽤 있다.
의미 있는 세 번째 도전도 있다. ①다자구도가 디폴트(기본 설정)인 한국 대선에서 2002년, 2012년 같은 사실상 양자 구도가 재현될 것인가. ②2002년 노무현·정몽준, 2012년 문재인·안철수와 같은 극적인 단일화가 성사될 것인가. ③2002년 노무현, 2007년 이명박이 대세론으로 앞서가던 이인제, 박근혜를 꺾은 것처럼 ‘언더도그’ 돌풍이 불 것인가.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역시 “누가 이길까”다. 여기서 ‘누가’는 ‘누구’가 아니라 ‘어느’를 뜻한다. “누가 대통령이 될까”보다 “어느 진영이 집권할까”가 훨씬 중요하다. 한국 대선은 국정운영을 책임질 정부를 쇼핑하듯 구매하는 선택이 아니다. 좋아하는 팀을 광적으로 응원하는 스포츠 경기도 아니다. 실존을 걸고 싸우는 진영 간 전쟁이다. 상대는 ‘이길’ 경쟁자가 아니라 ‘죽일’ 적이다.
전쟁과 스포츠 중간 어디쯤에 있는 선거도 전쟁과 스포츠처럼 전력·전략·정신력에서 승패가 갈린다. 정신력은 잃은 정권을 되찾겠다는 야당이 원래 강하다. 분열을 막으려는 의지, 투표를 하겠다는 의지 모두 야당 지지자가 훨씬 강하다.
전력도 밀리지 않는다. 2016년 총선 이후 잃었던 영토를 거의 되찾았다. 몽골 기병 같은 빠른 속도로 진군하는 이준석 체제는 지역·세대·이념·계층 모든 전선에서 연일 승전보를 올리고 있다. 변화 속도와 폭에서 민주당을 압도한다. 빼앗겼던 땅을 되찾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적인 민주당의 영토까지 넘보고 있다.
보수의 심장 대구서 “탄핵은 정당했다”고 당당히 밝힌 이준석은 민주당의 심장인 광주서 “저에게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단 한 번도 광주사태였던 적이 없고 폭동이었던 적이 없다.…대한민국 민주화 역사 속에서 가장 처절하고 상징적이었던 시민들의 저항”이라고 했다. 봉하마을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우려고 했던 가치인 소탈함이나 국민과의 소통을 우리 당의 가치에 편입시키겠다.…앞으로 우리 당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폄훼를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백범 기념관에서는 “보수 세력이 김구 주석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를 하는 데 소홀했다면 잘못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온라인 엔터테이너’인 이준석은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2030 MZ세대’에 ‘공정한 경쟁’의 대변인으로 비친다. 'K를 생각한다'의 저자 임명묵은 “1990년대생 사이에서 공정은 가치와 논리보다는 느낌, 즉 ‘공정감’의 문제가 된다”고 썼는데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586’은 바로 이 싸움에서 이준석에게 참패하고 있다.
이준석과 MZ세대는 경쟁이 피곤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키는 아니지만 적어도 반칙과 특권보다는 공정하다고 보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정치 활성화 경쟁에서 우리 당과 민주당은 서로 다른 대안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민주당은 여러 명의 청년 정치인을 발탁해서 그들에게 중책을 맡기는 방식으로 임해왔고, 우리 당은 젊은 사람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임하고 있다. 그 경쟁에서 자신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부동산정책 전환을 통해 ‘중도로의 회군’에 애쓰고 있지만 지하철과 따릉이로 출근하는 이준석 대표에게 ‘변화 이미지’에서 역부족이다. 정치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생각대로 현실을 바꿀 힘이 있거나, 그럴 힘이 없다면 현실에 맞춰 생각을 바꿔야 한다. 독재가 불가능하다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 민주당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상이 민주당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민주당 위기의 핵심은 전략 기능이 망가졌다는 데 있다. 국민의힘은 국민 55% 이상의 지지를 받는 길로 가는데, 민주당은 국민 35% 이상 지지를 받기 어려운 길에 집착한다. 지금은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전략적 캠페인에서 훨씬 유능한 정당이다. 국민의힘은 외연확장에 주력하는데, 민주당은 정체성에 집착한다. 정치는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선거에서 55% 대 35%는 매우 중요한 수치다. 정권교체에 동의하는 여론이 55%를 넘고 정권재창출에 동의하는 여론이 35%를 밑돈다면 정권은 교체된다. 지금 그 언저리에 와 있다.
2020년 총선에서 마침내 주류 교체 전쟁서 승리한 듯 보였던 민주당이 역사상 최대로 확장했던 영토를 불과 1년 만에 거의 다 잃었다. 180석 오만이 결국 독이 되었다. 영남 빼고는 모든 지역을 석권했던 민주당이 이제는 호남에서만 확실한 우위다. 20~50대까지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세대에서도 40대만 여전할 뿐 50대는 이미 이탈했고 20~30대의 이탈 징후도 뚜렷하다. 부동산정책의 참담한 실패로 2% 부자뿐 아니라 중산층과 서민도 등을 돌리고 있다. 이념적으로도 진보층만 지지할 뿐 중도층은 오래전부터 보수와 같은 배를 타고 있다.
정치에서 상대를 경멸하면 민심을 잃는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이회창에게 분노했지만 이회창은 노무현을 경멸했다. 그것이 승부를 갈랐다. 36세 이준석 대표는 당내 대선 주자들에게도 거침없이 경고하고 의원들의 잘못된 발언에 대해 제지하겠다고 하는데, 송영길 대표는 야권 대선 주자와 야당을 향해 경멸을 쏟아내는 당내 의원들을 통제하지 못한다. 에토스(신뢰)·로고스(논리)·파토스(감성)가 모두 망가진 민주당은 메신저로서의 신뢰를 잃었다.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다 맞는 말이지만 민주당이 할 말은 아니지”라는 말이 돌아올 뿐이다. 그나마 다행은 송영길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비록 국민의힘 이준석 체제보다는 느리고 완만하지만) 변화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민심을 악화시키는 결정을 하지는 않는다. 국민 55% 이상의 지지를 받는 선택은 못하더라도 35%의 동의를 받지 못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또 다른 위안(?)은 여론 지형과 정치 지형이 아직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민심은 분명히 정권교체 쪽이지만 국민의힘과 윤석열·안철수의 제3지대가 여전히 하나로 묶이지 않았다. 홍준표는 복당했지만 안철수와의 합당, 윤석열의 입당은 팽팽한 긴장 속에 있다. 잘못 다루는 순간 언제든 깨질 수 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서 다른 의원들이 나간 것은 ‘탈당’이지만 안철수가 나간 것은 ‘분당’이듯, 지금은 영향력으로 볼 때 안철수의 합당은 ‘입당’이고 윤석열의 입당은 ‘합당’이다. 윤석열이 들어오고 안철수가 안 들어온다면 문제가 아니지만 안철수만 들어오고 윤석열이 안 들어오면 그건 문제다. 둘 다 안 들어오면 심각한 상황이다.
오세훈·이준석·윤석열 지지 기저에는 강한 정권교체 열망이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선에서 예상을 깨고 오세훈이 나경원을 이긴 것은 중도 이미지 덕도 있지만 나경원이 후보가 되면 단일화 없이 3자 구도로 갈 가능성에 대한 우려 탓이 더 컸다고 본다. 승리에 대한 절박감이 경선 승부를 갈랐다.
윤석열이 입당 않고 단일화 택하면
국민의힘 경선은 단일화 의지 강한
후보에게로 당연히 지지가 몰릴 것
승자 가늠하기 어려운 이번 대선
분명한 건, 분열한 쪽이 계속 졌다 만약 윤석열이 입당하지 않고 단일화 트랙으로 갈 경우 국민의힘 경선 역시 단일화 의지가 강한 후보에게 지지가 몰릴 것이다. 그럴 경우 2017년 대선에서 한 자리 지지율에서 출발해 최종적으로 24.1%를 얻어 21.41%의 안철수를 3등으로 밀어낸 경험이 있는 홍준표의 단일화 의지에 대해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야권 지지자들은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윤석열이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하든, 단일화를 하든 보수의 적자인 홍준표·유승민·원희룡이 던지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 질문은 2002년 노무현이 이인제에게 던진 질문이다. ①윤석열로 이길 수 있을까? ②설사 이긴다 하더라도 그게 국민의힘의 승리인가? ‘민주당 DNA’가 약한 이인제가 (이회창에게) 이길 수도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대세론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국민의힘 정체성이 약한 제3지대 후보의 치명적 약점은 야권에서 ‘누가 나가도 이기는’ 상황이 오면 지지율이 무너지는 것이다. 윤석열이 나가야만 이기는 상황이라면 어떤 방식이든 승산이 있다. 다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국민의힘으로서는 대선 후보를 못 내는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야권 단일 후보 윤석열은 국민의힘 후보로 나가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윤석열은 안철수와 달리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어떨까. 기대대로 윤석열이 무너지면 기회가 올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최재형은 민주당을 탈당한 후 야권 경선에 참여한 ‘금태섭 포지션’에 있다. 윤석열이 무너진다면 최재형이 아니라 홍준표·유승민·원희룡에게 기회가 돌아갈 것이다. 최재형이나 김동연 같은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있다고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브랜드(능력)’와 ‘정체성(신뢰)’이 약한 후보가 스토리(매력)만으로 이길 수는 없다.
오랫동안 선거를 관찰해왔지만 2022년 대선 승자가 누가 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특히 윤석열과 안철수가 모두 제3지대에 머무르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대선 구도가 양자 구도, 3자 구도, 4자 구도 모두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분열하거나 (정체성에 집착하다) 스스로 지지기반을 좁힌 세력은 패했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다. 민주당은 역사의 경고 앞에 겸허해야 한다. 민주당은 혁명적 변화가 절실하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107030600005#csidx2be69666a5d9899bd94e77e825292b0
0
0
17
nunjaragi01
2021년 6월 09일
In News
식민지 치하서 태어나
6·25 겪으며 청춘을 보낸 ‘1920~1930년대생’…
‘10대 때 철이 들 수 밖에 없던’ 20세기 가장 위대한 세대
미국 NBC의 대표적 앵커이자 저널리스트인 톰 브로코는 <위대한 세대(The Greatest Generation)>라는 책에서 1910~1920년대에 태어난 부모세대에게 ‘가장 위대한 세대’라고 경의를 표했다. 1940년생인 그는 1984년 봄, 아돌프 히틀러 제3제국의 종막이 시작된 연합군의 대규모 유럽 침공 D-데이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참전 군인들과 노르망디로 갔다.
“그들은 내가 성장하는 동안 내 주변에 어디든지 있었지만 그들이 어떤 일을 겪었으며 무엇을 이룩했는지 내가 제대로 인정하거나 감사할 줄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해리 가튼도 우리와 동행이었는데 그는 전쟁터에서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었다. ‘즐비하게 뒹굴던 시체와 비명 소리가 기억에 생생합니다’. 나는 그때 무서웠느냐고 물었다. ‘두려움과 분노, 평온함이 교차되며 스쳐 지나갔고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가 너무나 강렬했어요.’ ”
이 세대는 어린 시절 참혹한 대공황을 겪었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정치·경제·군사·과학기술·문화에서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주역이 되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한국에서도 기꺼이 싸웠다. 이들은 1950년대 공산주의 소련이 두려웠다. 케네디의 죽음과 닉슨의 사임도 지켜보았다. 1960~1970년대에 자녀들이 반전과 히피문화에 빠져드는 것도 받아들여야 했다. 냉전도 묵묵히 참아냈다. 미국의 언론은 이 세대가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세대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나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세대는 1920~1930년대 이 땅에 태어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버지 세대다. (불행하게도 1910년대 태어난 분들은 해방되기 전에 성인이 된 죄(?)로 친일이든 반일이든 일본에 대한 태도를 가져야 했다.) 그들은 식민지에 태어나 나라 잃은 서러움으로 어린 날을 보냈다. 해방되자 분단이 기다렸다. 끔찍한 좌우대립도 겪었다. 혼돈과 혼란, 공포와 불안 속에 청춘은 흘러가버렸다. 죽는 날까지 씻기지 않을 영혼의 상처인 6·25전쟁도 경험했다. 10대에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세대다.
이 세대의 대표적 지성인 이어령은 언젠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 강연에서 “나보다 더 늦게 태어난 나의 조국”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들은 조국보다 먼저 태어났다. 민주주의를 갈망했으나(4·19) 몇 차례의 쿠데타 앞에 저항 못한 무기력을 부끄러워했다. 자신들은 많이 배우지 못했으나 먹지도 입지도 않으면서 자식들을 가르쳤다. 보릿고개를 견뎌내며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자”는 생각 하나로 닥치는 대로 일했다.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자”는 그 시대의 모토였다. 독일로 갔고 중동으로도 갔다. ‘한강의 기적’은 그들이 이룬 신화다.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는 자식들을 보며 하루도 맘 편히 자지 못했다. 그들은 두려웠고 때론 자식들과 불화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자식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젠 힘도 없고 건강도 잃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을 기억해주지 않는다. 진정한 영웅들은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못했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이자
민주화의 주역 ‘1953~1968년대생’…
이들은 ‘20대에 철이 들 수 밖에 없던 세대’
미국인들은 위대한 세대에 이어 또 하나의 세대에 주목했다. 미국인들은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1965년에 태어난 이들을 베이비붐세대라 불렀다. 한때 ‘잃어버린 세대’라 불린 이들이 재평가받게 된 것은 베이비부머인 레너드 스타인혼이 2006년에 쓴 책 <더 위대한 세대(The Greater Generation)> 때문이다. 실용적인 세대라 불렸으나 부모들에게는 이기적 세대로 인식되어 온 그들에게 1946년에 태어난 빌 클린턴은 그 세대의 총아였다. 클린턴의 개인사가 그들 세대의 역사다. 클린턴의 문화가 그들의 문화였고, 클린턴의 정치의식이 그들의 정치의식이었다. 그러므로 1992년 그들이 미국 유권자의 중심으로 떠올랐을 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스타인혼 교수가 이 책을 쓴 것은 빌 클린턴과 같은 1946년생인 조지 W 부시가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그들 세대의 가치가 훼손된 것처럼 인식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클린턴을 선택한 것도 그들이고 부시를 선택한 것도 그들이다. ‘586세대’의 광주처럼 이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것은 베트남전이었다. 반전과 히피로 상징되던 보헤미안(진보) 기질은 시간이 흐르자 부르주아(보수) 기질로 변질되었다. 1960년대 보헤미안 가치와 1980년대 부르주아적 문화의 모순적 결합인 보보스(BOBOS)는 ‘강남 좌파’와 같은 변절의 상징이다.
한국에도 1953~1968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민주화세대’가 있다. 53년생은 전쟁이 끝나는 해에 태어났다. 대학에 입학하던 1972년에는 유신이 선포됐다. 이른바 긴급조치 시대, 혹독한 겨울이 시작됐다. 길고도 추웠던 겨울은 1987년 6월에 끝났다. 1968년생들이 대학에 입학하던 해였다.
이들은 보릿고개를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풍족과도 거리가 멀었다. 국민교육헌장을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워야 했다. 중고생들은 체력 테스트에서 모조 수류탄을 던졌다. 여학생들도 군사훈련을 받았다. 북한보다는 북괴라는 단어가 더 익숙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는 뉴스에 기쁨보다 두려움에 떨던 세대였다. 또 한 번의 쿠데타가 있었고, 광주를 경험했다. 수배와 고문, 투옥이 이어졌다. 살아서 서른을 맞는 것이 부끄러운 시대였다. 20대에 철이 들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시대’ 살았던 6·25 세대와
‘시민의 시대’ 살았던 586 세대는
‘개인의 시대’ 여는 MZ 세대의 도전에 직면
시대가 세대의 정체성을 만든다. 미국이나 한국 모두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불화는 ‘시대와의 불화’ 때문이다. 식민과 전쟁으로 정체성이 만들어진 ‘6·25세대’와 독재와 민주로 정체성이 만들어진 ‘민주화세대’는 실존적으로 불화의 운명이다.
‘국산 라디오 1호를 만든 엔지니어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아버지의 라듸오>는 두 세대의 불화와 화해를 담은 책이다. 저자인 아버지 김해수(1923~2005)는 한국 최초의 라디오 ‘금성 A-501’을 만든 엔지니어이고, 책을 엮은 딸 김진주는 ‘사노맹’으로 유명한 박노해 시인의 부인이다. ‘산업역군’ 아버지의 기록을 ‘민주투사’ 딸이 엮은 것이다.
김진주(1955~)는 약사라는 안정된 기반을 버리고 구로공단 미싱사가 되어 사회주의혁명을 꿈꾸던 박노해 시인과 결혼한다. 금성사(현 LG전자) 1회 공채시험에 수석 합격하여 최초의 라디오, TV 등을 설계하며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새벽을 연 김해수는 1991년 수배 중이던 딸과 사위가 안기부에 체포되자 거실에 자랑스럽게 걸어두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표창장을 책상 서랍 속에 밀어 넣는다.
김해수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조국 근대화의 주역으로 산업현장에서 심혈을 바쳤던 우리 세대는 위대했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당했던 고통을 강요하거나 외면했던 죄를 짓기도 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임무를 떠넘기게 됨으로써 우리 사회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김진주는 이렇게 말했다. “20세기 초에 첨단의 전자공학을 공부한 엔지니어로서 그가 살아낸 한국의 현대사는 ‘희망의 시대’이자 ‘배신의 시대’였다. 아버지가 겪어온 날들의 희망과 배반을 잊지 않고 되새겨보는 일은 지금 이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 삶의 의미와 과제들을 좀 더 뚜렷하게 밝혀주리라 믿는다.”
아버지의 육필 원고를 정리하던 김진주는 ‘아버지의 라디오’를 찾아 나섰다. 전국에 대여섯 대만 남은 아버지의 라디오는 2016년 무려 57년 만에 부활했다. 김진주는 아버지가 손수 만든 ‘금성 A-501’ 라디오가 세상을 향해 첫 발신을 하던 순간에 전율을 느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김해수는 “후손들이 우리 세대를 향해 기립박수를 쳐줄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둔다. 라디오 시대보다 소통의 기술이 훨씬 발달된 인터넷 세상을 경쾌한 걸음으로 누비고 다니는 저 낯선 세대를 믿어도 좋을 것인가”라며 자식 세대에 대한 불안을 드러냈다. 김진주도 “21세기의 험로를 함께 개척하고 있는 우리 세대와 신세대는 서로를 배반하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며 아버지와 같은 경계를 살짝 드러냈다.
김진주가 말한 ‘신세대’(MZ세대)가 김해수가 말한 ‘낯선 세대’(민주화세대)를 밀어내기 위해 몰려오고 있다. 6·25로 6월을 기억하는 세대가 6·10으로 6월을 기억하는 세대에게 밀려났듯이 ‘6·11’(국민의힘 전당대회)로 6월을 기억할 수 있는 세대에게 밀려날 운명이다. 디지털 시대에 디지털 세대가 주역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후진국 세대가 선진국 세대에게 밀려나는 것은 석기가 청동기나 철기에 밀려나듯, 칼이 총에 밀려나듯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다.
586 세대가 물러나 ‘이준석’이 나온 것이 아니라,
‘이준석 태풍’이 불기에 586 세대가 날아간 것
‘국민’의 시대를 살았던 ‘6·25세대’와 ‘시민’의 시대를 열었던 ‘586 민주화세대’는 ‘개인’의 시대를 열고 있는 ‘MZ세대’의 도전에 직면했다. 이들은 혁명의 무기인 스마트폰으로 무장했다. ‘메타버스’에서 일상을 즐기는 이들은 몽골 기병보다 빠르다. 1985년생 이준석이 상징하는 디지털 세대의 세대교체 선언이다.
지난 칼럼에서 “어둠이 물러가서 아침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해가 뜨기 때문에 어둠이 물러가는 것”이라고 썼다. ‘586세대’가 물러가서 이준석이 나온 것이 아니다. 이준석태풍이 불기 때문에 ‘586세대’가 쫓겨나는 것이다. 이준석바람은 꺾일 수도 있지만 이준석세대의 등장을 막을 수는 없다. 이 세대는 퍼스트 펭귄 이준석을 따라 두려움 없이 뛰어내릴 것이다.
2030세대는 지난 보궐선거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자신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더 이상 변방이 아니라 중심, 변수가 아니라 상수, 객체가 아니라 주체, 엑스트라가 아니라 주연임을 깨달았다. 세대교체는 불가역적 흐름이다. 다음 대통령은 이 세대가 결정한다. 이 세대의 지지를 놓치고 집권할 수는 없다. 새로운 세대가 오고 있다.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새로운 시대가 오면 구시대는 와해적 종말을 맞는다.
‘이준석 바람’은 꺾일 수도 있지만
‘이준석 세대’의 등장은 막을 수 없어…
다음 대통령은 이 세대가 결정
나의 아버지 세대를 존경하고
나와 같은 민주화 세대에 경의를 갖지만 이젠 물러날 때…
나는 ‘새로운 세대’를 신뢰한다
나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세대’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존경을 표한다. 그들이 남긴 업적과 유산은 세계 어느 세대와 비교해도 위대하다. 평양 근교에서 태어나 전쟁 중 내려오신 내 아버지는 대한민국 최초의 라디오 같은 위대한 유산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누구도 지배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DNA를 내게 남기고 돌아가셨다.
나는 같은 세대인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깊은 경의를 갖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그들과 같은 용기가 없었던 내게 영웅이었던 그들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마음속 눈물로 안타깝게 보내고 있다. 우리 세대도 아버지 세대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우리 시대의 역할을 잘 해냈다. 다음 세대를 믿고 물러갈 때가 됐다.
나는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 딸이 있다. 선진국에서 태어나 다른 나라에 대한 열등감도 없고 자유분방한 그 세대를 나는 신뢰한다. 우리의 불편은 완전히 다른 세 세대가 같은 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 현실이다. 불편해도 괜찮다. 이 세대는 대한민국을 훨씬 위대한 나라로 이끌 것이다. 그날이 오면 내 딸도 김진주와 같이 아빠 세대를 좀 더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볼 여유가 생길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6041626005&code=910100#csidx24227fd2accdf2ba5d68a0431a54761
0
0
85
nunjaragi01
운영자
더보기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