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가 불러올 정치 지형의 변화
‘조국 사태’라는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지 않고 있다. 국민이 자유한국당을 대안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에 동의하는가?’ ‘야당이 대안인가?’라는 두 질문 모두 ‘동의한다’가 50%를 넘어야 정권의 위기로 볼 수 있는데 아직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국민이 지지를 결정하는 세 가지 기준, 즉 ‘좋아해서’ ‘필요해서’ ‘상대가 싫어서’ 찍는다는 이유도 아직은 민주당이 자유한국당보다 높다. 자유한국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 실망한 사람들조차 지지 철회를 주저하고 있다.
물론 조국 임명 강행이 문재인 정권의 치명적 실수가 될 수도 있다. 초기에 낙마했다면 모르겠지만 핵심 지지층이 총결집해 싸운 마당에 임명 철회나 자진 사퇴는 선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권은 30%의 핵심 지지층에 맞설 용기가 없었다.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검찰이 조 장관 주변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하고, 청문회 당일 부인을 전격 기소한 상황에서 지명 철회나 자진 사퇴는 대통령의 인사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겨준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진퇴양난이었다. 문 대통령이 임명 재가를 하고, 임명식 직전에 조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문 대통령은 임명 강행수순을 밟았다.
문 대통령은 임명장 수여식에서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과거 어느 정권도 인사 문제에서만큼은 민심을 거스르며 임명한 사례가 없었다. 부인은 기소됐고, 자신은 사실상 피의자이며, 가족과 주변이 한꺼번에 수사받는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예는 없다. 이미 최악의 사례다.
문 대통령의 두 가지 패착
조국 장관 임명으로 검찰도 ‘검찰이 해야 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면서 “윤 총장은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 그렇게 해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국민이 체감하게 되고, 권력형 부패도 막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윤 총장은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감내하기로 한 리스크가 어느 정도일지 지금은 가늠이 안 된다.
문 대통령은 집권 후 두 개의 전략적 패착을 범했다. 국민 80% 이상이 탄핵을 지지했고, 국회의원 234명이 탄핵에 찬성했다면, 탄핵연대를 개혁연대로 발전시켜 불가역적인 ‘2017 체제’로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대한민국 시대를 열었어야 했다. 개헌이나 검찰 개혁 역시 개혁의 골든 타임인 2017년에 끝냈어야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새로운 체제는 오지 않았다. ‘촛불 정부’를 자처하면서도 처삼촌 묘 벌초하듯이 시늉만 내고 아무 개혁도 안 하다가 뒤늦게 검찰의 수사 대상자가 된 법무부 장관을 통해 검찰 개혁을 하겠다니 될 리가 있겠는가.
또 하나의 결정적 패착은 ‘보수 동맹’으로부터 이탈한 중도 보수를 ‘민주 동맹’으로 견인하지 못한 것이다. 탄핵의 주역을 ‘민주·진보’ 진영으로 축소하는 우(愚)를 범했기 때문이다. 만약 중도 보수를 민주 동맹의 우군으로 끌어냈다면 대한민국 주류 교체의 강력한 지원군이 되었을 것이고, 문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되뇌었던 퇴행적 수구 세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것이다.
‘진영 전쟁’ 규정하는 전략적 오판
조국 사태는 청와대와 민주당이 이 싸움을 물러설 수 없는 ‘진영 전쟁’으로 규정하는 전략적 오판을 저질렀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를 위험을 빠뜨리는 위기로 번지고 있다. 위험한 전략이다. 현재의 국면은 보수 진영, 자유한국당, 검찰과의 싸움이 아니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대선에서 문 대통령을 찍었고, 지금도 문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지만 조국 장관 임명에 비판적인 지지층에 맞서고 있는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조국 임명을 강행하는 순간 ‘조국 이슈’가 ‘문재인 이슈’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추석 연휴 이후의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 지지율이 40% 밑으로 떨어지는지 지켜봐야 한다. 검찰 수사에서 치명적인 스모킹 건이 나오면 연대보증을 선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지지율이 35% 밑으로 급락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정권의 위기는 ‘선거 연합’보다 ‘통치 연합’의 범위가 축소될 때 시작되었다. 김영삼(YS) 정권은 김종필(JP) 전 총리의 탈당과 전두환·노태우의 구속으로 3당 합당의 두 축이 붕괴하면서 위기가 찾아 왔다. DJP 연합으로 집권한 김대중(DJ) 정권은 JP와 결별하면서 위기가 시작되었다. 노무현 정권은 호남과 결별하면서 임기 첫해에 레임덕에 빠졌다. 이명박 정권은 박근혜가 “국민도 속고, 저도 속았다”고 말했을 때, 박근혜 정권은 ‘보수 동맹’을 해체하는 순간 위기가 시작되었다. 반면 군사쿠데타의 주역이자 36.6%의 낮은 지지율로 당선되어 정통성이 약했던 노태우 정권은 3당 합당을 통해 선거 연합보다 훨씬 넓은 통치 연합에 성공했기 때문에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통치 연합에 성공한 유일한 사례다.
통치 연합으로 세 확대해야 국정 성공
정체성을 넘어 외연 확대의 선거 연합을 해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고, 선거 연합을 뛰어넘어 생각이 다른 세력과도 손잡는 통치 연합을 해야 국정에 성공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은 선거 연합보다 훨씬 넓은 통치 연합을 만들 기회가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조국 사태로 인해 처음으로 선거 연합의 균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핵심 지지층의 이탈이 두려워 임명 강행을 결정했다면,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그것도 오판일 수 있다. 군사쿠데타 세력과 3당 합당할 때도 YS의 지지층은 동요하지 않았다. 이념이 다른 JP와 연합을 할 때 DJ의 지지층 역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벌 출신의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했을 때도 지지자들은 이탈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보 의제인 ‘경제 민주화’를 선언했을 때도 그의 지지자들은 떠나지 않았다.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전술적 일탈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결단하고 이해를 구했으면 지지자들은 받아들였을 것이다.
선거 승리 열쇠는 중도층 지지
지금은 모든 정당이 진영 논리에 빠져 극단적 지지층만 바라보는 분열의 시대다. 그러나 선거 승리의 열쇠는 양극단의 50%가 아니라 언제든 지지를 철회할 수 있는 50% 중도층의 손에 들려 있다. 댓글로 응원하거나, 문자 폭탄을 보내거나,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끌어올리는 극단적 지지층이 선거 승리를 가져다주는 게 아니다. 정권이 잘못했을 때 지지를 철회하는 중도 스윙 보터(swing voter)의 지지를 잃지 않는 게 훨씬 중요하다. 정치는 단순하다.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예외가 없다. 보수든, 진보든 중도를 잃으면 정권을 잃는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맺어진 ‘보수 동맹’은 자유주의 세력과 보수 세력이 ‘개혁’과 ‘보수’로 충돌하면서 만들어낸 긴장이 당을 강하게 만들었다. 정체성이냐 외연 확대냐의 치열한 논쟁은 당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반면 박근혜 정권은 역사 국정교과서 채택, 통합진보당해산 등 종북 좌파 청산에 에너지를 소진하면서 집권 초기 개혁의 골든 타임을 놓쳤다. 자유한국당의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참패는 혁신 대 기득권, 미래 대 과거, 새로움 대 낡음, 통합 대 분열의 싸움에서 기득권, 과거, 낡음, 분열의 샅바를 잡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다른 목소리를 막는 순간 정당은 죽는다. 당내 이견에 대한 지지자들의 공격은 몰락의 전조다. 조국 사태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념적 선명성과 진보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는 한 울타리를 떠난 중도 보수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총선 승리는 기대 난망이다. 생각대로 현실을 바꿀 힘이 없다면 현실에 맞춰 생각을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