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승자 독식’ 소선거구제
득표·의석수 비율 맞지 않고
제3당이 들어설 공간도 없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대세
야 3당 대표, 한목소리 압박
한 세대를 의미하는 30년은 우리에게는 ‘한 시대를 마감하는’ 역사적 변곡의 시간이다. 1987년에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을 권리를 쟁취한 국민이 2017년에 ‘대통령을 내 힘으로’ 내쫓을 권리를 증명할 때까지 걸린 시간도 30년이다. 30년 주기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을 잃기도 했다. 1919년 고종, 1949년 김구, 1979년 박정희, 2009년 김대중의 죽음은 조선, 독립운동, 산업화, 민주화의 시대가 끝났음을 상기시켰다.
1988년에 도입된 ‘소선거구제’도 30년이 지났으니 이젠 바꿀 때가 됐다. 과연 바꿀 수 있을까? 여전히 비관론이 우세하지만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도 있다’고 믿는 낙관주의자의 목소리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사실 인류의 진보는 소수의 낙관주의자들이 만들어왔다. <호모 데우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죽음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긴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모든 기술적인 문제에는 기술적인 솔루션이 있다고 믿는 게 과학이다”라는 담대한 주장을 했다.
‘신이 되려는 인간’이 출몰하는 시대에 이깟(!) 낡은 선거제도 하나 못 바꾼대서야 미래를 향한 우리의 꿈이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물론 한국 정치의 문제를 모두 소선거구제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핵심적 원인 중의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세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세 가지 중 하나다. 문제의 원인도 알고 해결책도 아는데 (기득권의 저항으로)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 원인은 아는데 좋은 해결책을 찾지 못한 경우, 아직 원인도 못 찾은 경우다.
소선거구제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여전히 있지만, 득표와 의석수의 ‘비례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승자독식’의 선거 제도를 바꿀 때가 됐다는 주장이 대세가 되고 있다. 이제 논쟁의 전선은 ‘이미 대안은 나와 있다’는 측과 ‘아직 좋은 대안을 찾지 못했다’는 측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언제부터인가 ‘유일한’ 대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주장이 세를 얻고 있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28일 합동 결의대회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수용을 압박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야 3당의 선거제도 개혁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통일돼 있다”고 했고,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 모두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은 노예해방을 위해 어떤 정치적 수도 마다하지 않았던 에이브러햄 링컨의 길을 가야 한다”며 역사적 결단을 촉구했다.
국민 반대에 총대 멘 심상정
“개혁 방패로 민심 이용 안돼”
지역구 줄여 비례대표 늘릴
의지도, 의사도, 용기도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상수’로 보는 사람들은 ‘의원정수 확대’를 ‘필수’로 본다. 국회의원 정수 확대 논리도 갈수록 거침이 없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심상정 위원장은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이 정수 확대를 반대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밥값 하는 의원들 늘리는 개혁을 가로막는 방패로 민심이 이용되는 건 용인되기 어렵다”며 총대를 멨다. 28일에 열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자문위원 간담회에서 성한용 한겨레신문 대기자는 “국민이 욕하기 때문에 의원 정수를 늘릴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욕먹고 늘려라. 늘린 다음에 잘하는 게 낫다”며 노골적으로 의원 정수 확대를 주장했다.
놀라운 주장이다. 물론 정치 지도자라면 국민의 반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한다. 욕먹는 걸 두려워하면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 문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시한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그대로 두고 지역구·비례대표 비율을 2:1로 하자는 방안에 대해서 심상정 위원장은 “의원 정수 300명을 가지고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를 2:1의 비율로 하자는 선관위 의견은 완성된 안이라고 볼 수 없다. 2018년 버전을 제출하도록 요구할 생각”이라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한마디로 국회의원 지역구를 줄여서 비례대표를 늘릴 의지도, 용기도 없다는 고백이다.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주장을 하려니 ‘국회의원 1인이 대표하는 국민이 너무 많다’ ‘밥값 잘하는 국회의원 늘리자’ ‘욕먹더라도 늘리자’는 궁색한 논리를 내세울 수밖에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상수로 두지 말고 ‘왜 선거제도를 바꾸려고 하나?’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가 소선거구제를 바꾸려는 이유는 정당별 득표율과 총 의석배분비율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과, ‘승자독식’에 따라 지역적 기반이 있는 거대 양당 외의 3당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는 것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편의 핵심은 ‘비례성’ 강화와 ‘다당제’ 보장이다. 결국 ‘공정한 대표성’과 ‘협력의 정치’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두 가지 목표를 다 얻으면서 단점을 최소화하는 제도를 선택하면 된다. 정당별 득표수와 총 의석배분비율이 완벽히 일치하는 제도는 완전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밖에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독일식 ‘(지역구·비례대표)혼합명부 비례대표제’는 ‘초과의석’이 발생하기 때문에 득표율과 의석배분율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우리도 (의원 정수를 늘린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추가로) 초과의석을 피할 수 없다.
지역 기반 거대 정당 버틸 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하면
대부분 지역구는 1·2당 차지
비례는 3당 이하 독식 가능성
지역 기반이 강한 두 개의 거대 정당이 있는 한국에서는 지역구는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독식하고 비례대표는 3당 이하의 정당이 독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상황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치는 하고 싶지만 선거는 싫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제도’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기본적으로 인물이 아니라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제도다. 정당이 정부가 되는 내각제에 어울리는 제도다. 논리적으로 비유하자면 국민들이 대통령을 직접 뽑지 못하고 정당을 선택할 권리만 갖는 격이다. 만약 국민은 집권당을 선택할 권리만 갖고 대통령은 정당 내에서 당원들이 뽑는다면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 것이 좋은 제도라면 국회의원도 ‘직접’ 뽑는 것이 더 좋은 제도다.
한국처럼 이념 갈등이 큰 나라에서는 (5%의 봉쇄조항이 있다 하더라도) 극좌·극우 정당이 출현할 위험이 커지는 것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또 다른 문제점이다. 북한·난민·동성애·젠더·종교 이슈에서 극단적 주장을 하는 정당이 (유럽의 극우정당처럼) 세를 넓혀갈 수 있다.
어쨌든 혼합형 선거 제도를 선택한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조합은 네 가지다. 비례대표를 연동형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병립형으로 할 것인가, 지역구를 소선거구제로 할 것인가 중선거구제로 할 것인가에 따라 나눌 수 있다. 물론 그 외에도 비례대표를 전국으로 할 것인가 권역별로 할 것인가, 비례대표제를 연동형과 병립형 혼합으로 할 것인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모두 출마할 수 있는 이중등록제를 허용할 것인가, 도농복합형 선거제를 할 것인가, 석패율제를 도입할 것인가에 따라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지만 중요한 논제는 아니다.
너무 복잡하지 않은가. 제도는 단순할수록 좋다. 내 제안은 단순하다. 의원 정수는 300명으로 유지한다. 비례대표제를 없앤다. 한 선거구에서 3~4명을 뽑는다. 농촌지역은 지역이 넓으니 소선거구제를 유지하자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한 지역에 한 명의 국회의원이 있는 소선거구제는 한국 정치문화에서는 국회의원이 (지역구 행사와 민원 때문에) 지방의원 신세를 벗어날 수가 없다. 지역의 이익을 챙기느라 국가의 이익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중선거구제를 반대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동원하는 한 선거구에서 두 명 뽑는 제도는 나도 절대 반대다. 그 제도는 우리가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실시한 적이 있다는 역사적 흠결 외에도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더 강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동의할 수가 없다. 내가 3명 이상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양당제가 아니라 다당제를 확실히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숫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선거구에서 4명을 뽑는 것을 선호한다.
서울의 경우는 두 개 구를 하나의 선거구로 합쳐 네 명을 뽑으면 된다. 예컨대 강서·양천, 마포·서대문, 강남·서초로 합치면 된다. 송파구와 노원구는 세 명을 뽑으면 된다. 고양·성남·부천·안산 등은 네 명을 뽑고, 수원·창원과 같이 인구가 많은 도시는 3인 선거구 두 곳에서 여섯 명을 뽑으면 된다. 지역이 넓은 강원도의 경우도 4인 선거구 두 곳으로 나누거나 한 명을 늘려 3인 선거구 세 곳으로 만들면 된다.
정당의 복수공천을 허용한다. 의원 정수를 줄이지 않고 300명을 유지한다면 4인 선거구 기준으로 75개 선거구, 3인 선거구를 기준으로 100개의 선거구지만 현실적으로는 4인 선거구 60개·3인 선거구 20개 정도로 총 80개의 선거구를 상정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인구편차에 따른 대표성 논란은 없을 것이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지역 기반이 강한 텃밭에서는 복수공천을 통해 두 명 이상의 당선을 노릴 것이다. 기반이 약한 상대의 텃밭에서는 한 명만 공천함으로써 최소한 3등 내지 4등으로 당선을 노릴 것이다.
최소한 3~4명은 선출해야
양당제 아니라 다당제 담보
모든 당이 손해볼 일은 없다
민주당은 지금의 당세를 고려하면 (가장 취약한 경북을 포함한) 모든 선거구에서 최소한 한 명의 당선은 가능할 것이다. 영남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복수공천을 통해 2명의 당선을 노릴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30~50개 지역에서 복수의 당선자를 낼 수 있다면 전체 의석수는 110~130석 사이가 될 것이다. 물론 공천과정에서 같은 당의 의원과 경쟁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아마도 3~4인을 뽑는 제도라면 고향으로 내려가 도전하려는 의원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조정될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지금의 당세로는 호남과 3인 선거구에서 당선자를 못 낼 수도 있다. 반면 경북을 포함한 영남에서는 두 명을 넘어 세 명의 당선자를 내는 곳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100~120석 사이 정도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소선거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거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의석을 많이 얻을 것이다.
바른미래당과 정의당은 복수공천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역구마다 한 명의 확실한 후보만 낸다면 연동형 비례대표로 기대하는 의석은 충분히 얻을 것이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평화당은 호남에서는 전 지역구에서 한 명의 당선자를 낼 수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복수 당선을 노릴 수 있다. 수도권에서도 호남세가 강한 일부 지역은 호남의 현역의원들이 올라온다면 싸워볼 만할 것이다.
정의당도 이제는 비례대표에만 의존하는 당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지역에 기반한 정당으로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다. 그래야 조직적 기반이 확대된다. 정의당의 당세로 보면 중선거구제를 도입해도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는 충분히 될 것이다. 총선 이후에 개헌을 통해 내각제나 대통령 결선 투표제를 관철시키는 것이 수권정당으로 가는 현실적 로드맵이 될 수 있다.
소선거구제는 1988년 총선 직전에 도입되었다. 1987년 대선에서 승리한 민정당이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았다면 과반 의석을 확보했을 것이다. 당시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한 선거구에서 두 명을 뽑고, 전국구 의석의 절반을 1당에 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민정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아마도 민정당은 (과반 의석을 포기하더라도) 김대중을 살려주어야만 1992년 대선에서도 양김의 분열로 또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소선거구제를 받았을 것이다.
1987년에 통일민주당을 탈당해서 평화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출마했던 김대중은 소선거구제만이 살길이라고 봤기 때문에 강하게 소선거구제를 주장했다. 그렇다면 김영삼은 도대체 왜 소선거구제를 받았을까? 전국구 정당이었던 통일민주당은 중선거구제였다면 무조건 제1야당이 되었을 것이다. 김영삼은 김대중이 소선거구제만 받아주면 (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한겨레민주당 3당의) 야권통합을 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소선거구제를 받았다. 야권통합이 되지 않으면 다음 대선에서도 1987년의 재판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소선거구제만 도입되고 야권통합은 무산되었다. 총선에서 통일민주당은 23%를 득표했지만 의석은 59석밖에 얻지 못한 반면 평화민주당은 19%를 득표했지만 (소선거구제의 특성 때문에) 70석을 얻었다. 제2야당으로 전락한 김영삼은 결국 1990년에 3당 합당의 승부수를 던져 대통령이 되었다. 민주당이 30년 전 집권당의 전략처럼 선거제도를 통한 보수의 분열을 노릴지도 선거제도 개편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