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우려 속 전쟁은 2019년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됐다 2020년 12월 들어 문재인 정권·윤석열의 전쟁은 정점
조국 사태에서 ‘자폐적 광기’로 중도층 지지 잃어 집권 5년 평가하면 ‘피해망상’과 ‘반박 강박’으로 압축 결국 민주당의 전략적 패착에 ‘주류 교체 전쟁’ 원점으로
2020년 4월 총선 직후인 5월 ‘정치 인사이드’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글은 ‘정치 인사이드’의 에필로그다. 2018년 1월2일에 기고한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는 칼럼이 프롤로그였다면 (보수 진영이) ‘경악할’ 참패로 끝난 4·15 총선 후일담이 에필로그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범민주가 아닌 단독으로 꿈만 같았던) 180석을 얻었다. … 민주당이 ‘주류 교체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했다. 길게 보면 1990년 3당 합당의 ‘보수대연합’ 이후 지속되었던 보수 우위의 지형이 종말을 맞았다. 지역·세대·이념·계층 전 전선에서 보수는 우위를 잃었다. 보수는 상수에서 변수로, 주류에서 비주류로 전락했다. 바야흐로 민주당 우위의 시대가 열렸다.”
오늘 이 글은 ‘정치 인사이드 시즌2’의 에필로그다. 뭐라고 써야 할까. 애매한(?) 결과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10년 주기’를 깬 5년 만의 정권교체에 방점을 찍어야 할까, 아니면 0.73%포인트 최소 표차에 의미를 둬야 할까. 며칠 전 조선일보에 기고한 ‘尹, 잘해서 이긴 게 아니라 잘못해서 질 뻔했다’는 칼럼을 인용해야겠다.
“… 5년 만의 정권교체다. 무능·오만·위선·내로남불·분열로 일관한 5년이었다. 정권교체 ‘10년 주기’를 깬 부끄러운 첫 기록이다. 축구로 치면 전반 45분이 끝난 하프타임에 전격 교체해 버린 격이다. 치욕적 교체다. 민주당의 대선 평가는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에서 시작하면 안 된다. 0.73%는 윤석열과 국민의힘 반성의 출발점이지 민주당 위로의 출발점이 아니다.
0.73%. 질 뻔했다. 윤석열 캠페인 전략은 시종일관 위험했다. 경선도 홍준표에게 질 뻔했다. 본선도 캠페인을 잘해서 정권교체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잘못해서 정권교체에 실패할 뻔했다. 승리의 일등 공신, 이등 공신, 삼등 공신 모두 국민의힘 밖에서 찾아야 한다.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된 초현실적 상황이 문재인 정권 실패를 상징한다. 이등 공신, 삼등 공신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다. 수많은 사람을 열거할 수 있다. ….”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권 5년은 초현실적 상황의 연속이었다. 조국·추미애·박범계 세 명의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1년6개월 이상 수사와 징계로 정면충돌하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수수방관했다.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에 대해 “재량 없이 재가했다”는 말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서초동에서는 수십만명이 ‘윤석열 구속’을 외치고, 광화문에서는 수십만명이 ‘조국 구속’을 외치는데도 국론 분열이 아니라고 했다. 그 결과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되는 초현실적 사태를 초래했다.
나는 2019년 7월2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사에 대해 “헌법 1조를 인용하는 분들은 국민의 강렬한 지지를 원한다. 정치인들이 쓰는 용어로 정치적 미래에 대한 계획이 더 있을 때 주로 쓴다. 취임사를 봤을 때 두 가지가 읽힌다. 국민 편에 서서 집권층에 부담스러운 수사를 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검찰총장 이후도 생각하는 것 같다. 법무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조국 전 민정수석과 긴장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 조국 수석이나 윤석열 총장은 굉장히 개성이 강하고 자존심도 세고 정치적 야망도 있어 보인다. 호흡이 잘 맞기보다는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전쟁은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됐다. 2019년 9월 정치 인사이드 ‘조국의 위기, 여당의 오판, 정치의 몰락’에서 “한국의 대표적 셀럽이자 ‘강남 좌파’의 상징인 조국 때문에 온 나라가 사실상 내전 상태다. … ‘혁명 세대’인 586은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검찰 쿠데타’로 규정함으로써 이 싸움의 본질을 권력투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 검찰을 개혁 주체로 보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검찰을 개혁 대상으로 보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진검 승부는 피할 수 없다. 검찰이 전광석화 같은 기습을 했다. 검찰의 칼이 훨씬 예리하고 빠른데 싸움의 기술도 능하다. 회복불능의 치명적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 만약 검찰, 언론, 야당에 의해 회복불능의 치명적 상처를 입으면 이런 상황을 야기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지지층이 꽤 될 것이다. 최순실 사태 때 중도 보수가 ‘왜 부끄러움이 우리 몫이어야 하는가?’를 물었던 것처럼 똑같은 질문을 문 대통령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정권, 어떤 정당, 어떤 정치인도 지지자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면 안 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후보자를 임명한다면 ‘불공정’에 예민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이탈은 불 보듯 뻔하다. ‘이게 나라냐’는 분노는 ‘이건 나라냐’로 되돌아올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 후보자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싸움의 본질을 진영 간 싸움으로 보는 전략적 오판 때문일 것이다. ‘조국이 무너지면 문재인도 무너질 것’ ‘조국을 지키지 못하면 핵심 지지층이 등을 돌릴 것’ ‘검찰 개혁에서 큰 성과를 내면 지지율은 회복될 것’ ‘그래도 자유한국당에 지지는 않을 것’ 등의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옳은 판단일까?”라며 민주당의 전략적 판단에 의문을 던졌다.
2020년 2월 칼럼 ‘이제 중도 진보가 묻는다, 왜 부끄러움은 우리 몫이어야 하는가’에서 “…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은 상대가 딛고 서 있는 땅에 대해 서로 무지했다. 정치를 권력투쟁으로 보는 정치인 문재인과 법과 원칙으로 보는 검사 윤석열의 실존적 충돌이다. … ‘586’은 권력은 싸워서 쟁취하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즉각 ‘검찰 쿠데타’ ‘윤석열의 난’ ‘적폐 검찰’로 규정하고 총동원령을 내렸다. 훗날 이 결정이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돌이킬 수 없는 전략적 패착으로 지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칙 있는 승리’가 가장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원칙 있는 패배’가 ‘원칙 없는 승리’보다 낫다고 했다. ‘원칙 없는 패배’는 경멸했다. 노무현이라면 (검찰의 수사를 받아들이는) ‘원칙 있는 패배’를 선택했을 것이다. 청와대가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택한 순간 ‘원칙 없는 승리’와 ‘원칙 없는 패배’만 기다릴 뿐이다. ‘원칙 있는 승리’와 ‘원칙 있는 패배’는 검찰의 몫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 검찰에 승리한다고 민심을 얻는 건 아니다. 이기고도 뒤로 가고, 지고도 앞으로 가는 것이 정치다. 노무현은 지는 길을 택하면서 앞으로 간 정치인이다. 정치는 민심을 잃으면 모든 걸 잃은 것이다”라고 쓴 대로 전략적 패착이 되었다.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전쟁은 2020년 12월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12월 칼럼 ‘윤석열을 마주한 문 대통령 … 이겨도 지는 전쟁 길목에 섰다’에서 “결국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맞서는 상황이 왔다. … 문 대통령도 더 피할 수 없다. … 회군할 마지막 기회는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징계 절차의 문제점과 해임의 부적절을 주장하며) 사의를 표명했을 때다. 징계위원장을 맡은 차관의 사의는 ‘플랜 B’의 출구전략을 검토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다음날 바로 새 차관을 임명하며 윤석열 해임이라는 ‘플랜 A’의 가속 페달을 밟았다.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었다. ‘윤석열의 검찰 쿠데타’인지, ‘추미애의 친위 쿠데타’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검찰 개혁에 명운을 건 문 대통령과 ‘개혁 주체’에서 졸지에 ‘개혁 대상’으로 전락한 윤 총장의 피할 수 없는 전쟁이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다. 얻을 건 별로 없고 잃을 건 많은 문 대통령이 훨씬 부담스럽다”며 재차 경고했다.
결국 2021년 1월 ‘민심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민심을 이긴 정권은 없다’ 칼럼에서 예견된 종말을 썼다. “… 문재인 정권의 ‘검찰 개혁’은 2020년 12월 완벽한 패배로 막을 내렸다. 정경심 교수에 대한 4년 선고로 도덕적으로 패했고,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정지와 징계 모두 법적으로 패했다. 도덕적·법적·정치적 완패다. 민심도 잃었다. 자칫하면 레임덕에 빠지고 정권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다. … 민주당이 국정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스윙보터인 중도의 지지를 계속 잃을 것이다. 중도의 지지를 잃으면 정권을 잃는다. 정권을 잃으면 친문도 친박처럼 빠르게 세가 약해질 것이다. 민심을 이긴 정권은 없다.”
지난 10년,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퇴행적 이념 정체성에 갇혀 산업화와 민주화의 위대한 유산을 모두 탕진했다. 박근혜 정권은 ‘국정 교과서 파동’, 문재인 정권은 ‘조국 사태’에서 ‘자폐적 광기’로 중도의 지지를 잃었다. 두 정권 모두 이견을 허용하지 않았다. ‘보수 동맹’은 중도 보수를 잃고 몰락했고, ‘민주 동맹’은 든든한 우군 2030세대를 잃고 정권을 잃었다. 정치는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예외가 없다. 두 정권 모두 스스로 지지기반을 좁히며 자멸했다.
문재인 정권의 전략적 패착은 두 가지다. 첫째, ‘1987 체제’ 이후 30년 만에 ‘2017 체제’로 대한민국을 리빌딩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오판과 오만으로 날려 보낸 것이다. 국민 80% 이상이 탄핵을 지지하고, 국회의원 234명이 찬성했다면 당연히 ‘탄핵 연대’를 ‘개혁 연대’로 발전시켜 개헌을 통한 ‘2017 체제’를 만들었어야 했다. 그러기는커녕 자기들만이 탄핵의 주체인 양 오판하더니 ‘민주 동맹’의 연대 대상인 정의당의 작은 기반마저 뺏어버리는 오만으로 위기를 자초했다. 둘째, 2017년 탄핵 이후 ‘보수 동맹’으로부터 이탈한 중도 보수를 ‘민주 동맹’으로 끌어들일 절호의 기회를 외면한 것이다. ‘친박’과 ‘친문’의 배타성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 국민의힘이 친박당을 벗어나면서 재기했듯 민주당도 친문당을 벗어날 때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 5년을 야박하게 평가하면 불행하게도 ‘피해망상’과 ‘반박 강박’에 사로잡힌 듯했다. 그 때문에 민심을 잃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극심한 진영 싸움과 국론 분열에도 불구하고 국민 통합에 소홀했다. 대통령으로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충돌도 너무 오랫동안 방치했다. 마땅히 조기에 수습했어야 한다. 또 최고 지도자로서 결단해야 할 탈원전·교육개혁·연금개혁·지소미아 파기 같은 고도의 전문 영역은 여론 조사에 미루더니 예민하게 민심을 따라야 하는 인사 문제는 아무리 반대 여론이 높아도 못 들은 척 외면했다.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최고 공직에 ‘경험’만 쌓고 갈 사람을 너무 많이 중용했다.
2020년 총선 이후 불과 2년 만의 대반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치 인사이드 시즌1’ 에필로그 칼럼 제목 “보수의 ‘정치적 폐색’, 스스로를 비주류로 유폐하다”를 그대로 민주당에 돌려주어야 할 것 같다. 솔직히 신문사에서 쓴 ‘폐색’이라는 단어가 조금 낯설었다. 사실 나는 ‘정치적 자폐’로 썼는데 요즘 ‘자폐’라는 단어를 쓰기가 조심스러워 바꾼 듯하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이번 칼럼 제목도 “민주당의 ‘정치적 자폐’, 스스로를 비주류로 유폐하다”로 써야 의미가 직관적으로 전달될 것 같긴 하다.
2017년 탄핵 이후 여전히 진행 중인 ‘주류 교체 전쟁’은 결정적 승기를 잡은 민주당의 전략적 패착으로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정권을 빼앗긴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승리한 보수 정당 국민의힘, 중도 정당 국민의당, 진보 정당 정의당 모두 위기다. 모든 정치 세력이 ‘상징 자본’을 다 탕진했다. 어느 정당이든 위기를 인정하고 혁신하는 쪽이 대한민국 정치의 주류가 되는 기회를 잡을 것이다.
나는 정치 컨설턴트·정치 분석가·정치 칼럼니스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정치 컨설턴트로서는 고객의 요구를 우선하고, 정치 분석가로서는 냉정한 분석을 하고, 정치 칼럼니스트로서는 권력을 비판하려고 노력했다. 박근혜 정권이나 문재인 정권 모두 그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다. 윤석열 정권도 같은 원칙으로 비판할 것이다.
지난 4년간 불편할 수 있는 글도 단 한 번의 내색조차 없이 받아준 경향신문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부당하고 지나친 비판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항의도 하지 않고 넓은 아량을 보여주신 정치권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고 격려해주신 독자 분들 덕에 4년이나 연재할 수 있었다. 뭐라 감사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언젠가 다시 기회가 된다면 그분들을 위해 한국 정치를 위한 희망의 글을 써보고 싶다.
원문보기 :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203202056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