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변곡점, 그후 10년
2011년은 이후 10년간 한국 정치를 좌지우지할 주역들이 등장한 해였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문재인의 운명> 북 콘서트로 정치 전면에 등장했고, 조국 서울대 교수가 정치 행보를 시작했으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선언한 데 이어 연말에는 박근혜가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으로 조기 등판했다.
문재인·박원순·안철수·조국…
2010년대 정치 주역들 등장한 해
‘모두 안녕’. 유서의 마지막은 스스로 연 시대를 스스로 닫는 상징적 문장이었다. 경향신문의 구혜영 정치부장은 <박원순과 ‘나의 시대’를 보낸다>는 칼럼에서 “…박원순의 상징적 가치를 스스로 배반한 ‘박원순의 역설’. 슬프고 아팠지만, 내 슬픔과 아픔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정치의 절반을 잃은 것 같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진보의 절반을 잃은 것 같았던 노회찬 전 의원과 달리 마음을 다해 애도할 수가 없었다…그가 열고, 우리가 만들었던 ‘시민’ 사회는 유통기한이 한참 남았다는 자부심으로 이해했다. 그러니 그가 성추행 가해자였고, 사회적 약자의 노동권을 무시했다는 걸 인정한다는 건 내가 디디고 선 발판이 빙하처럼 녹아 없어지는 두려움이자 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충격이었다…촛불집회는 시민혁명으로 불렸고, 시민사회는 여전히 새 시대를 의미했다. 그런 만큼 박원순을 내포한 시대가 낡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가장 낡은 이유로 세상과 단절했다. 유서 한 귀퉁이에 피해자를 향한 사죄 한마디 없이 ‘모두 안녕’이라고 했다…그도, 그를 상징했던 세상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다. 많은 이들이 말하듯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라고 썼다.
‘정의기억연대’와 박원순 시장으로 인해 시민단체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어쩌면 그가 2011년 서울시장에 출마한 순간 이미 끝났는지도 모른다. ‘혁신적’ 시민운동가에서 ‘권력가’로 변신한 2010년대는 박원순의 시대는 아니었다. 그와 시민단체의 시대는 1990년에서 2010년까지였다.
돌이켜보면 2011년은 한국 정치의 변곡점이었다. 그해는 이후 10년간 한국 정치를 좌지우지할 주역들이 동시에 등장한 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언론 노출이 거의 없었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문재인의 운명> 북 콘서트를 통해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는 그해 8월 부산에서 열린 북 콘서트에서 ‘혁신과 통합’에 영입 가능성을 비쳤던 조국 서울대 교수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질문을 받고 “조 교수님은 ‘혁신과 통합’ 멤버가 됐다”고 밝혔다. 9월에는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를 맡아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오세훈의 서울시장 사퇴 유탄에
한나라당 ‘개혁파’ 전면에서 퇴장
박근혜가 전권…중도 이탈 가속화
문재인이 부산에서 북 콘서트를 열던 바로 그날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투표에서 패한 후 중도 사퇴를 발표했다. “저는 주민투표의 결과에 책임을 지고 오늘 시장직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저의 거취로 인한 정치권의 논란과 행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즉각적인 사퇴로 저의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이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서울시장 중도 사퇴 결정이 한국 정치에 몰고 올 나비효과를.
며칠 후, 안철수 교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그는 9월4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 집권 세력이 역사를 거스르고 있으며, (자신은)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결정은 내리지 않을 것”이라며 반한나라당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9월6일 박원순 희망제작소 이사와 만나 전격적으로 후보를 양보했다. 안철수는 몰랐다. 이 돌연한 양보가 자신의 삶에 몰고 올 나비효과를.
박원순은 다음날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아무리 신뢰 관계가 있다고 해도 저보다 10배나 더 되는 지지도를 갖고 있던 분이 아무 조건 없이 ‘더 잘할 수 있다’는 (내 말) 한마디에 양보한다는 게 사실 믿기 어려웠다”고 고마움을 밝힌 뒤, 선거 지원을 요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기자회견장에서 포옹한 그런 상황 이상으로 더 큰 지지는 없다”고 했지만 안철수는 24일 편지를 들고 선거사무소를 전격 방문해 지지를 다시 확인해줬다. 10월26일 박원순은 한나라당 나경원을 꺾고 서울시장이 되었다.
이 패배와 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의 책임을 지고 (7월4일 출범한) 한나라당 홍준표체제는 불과 5개월 만에 붕괴됐다. 홍준표·유승민·나경원·원희룡·남경필로 짜인 화려한 진용이 총선을 뛰어보지도 못하고 오세훈 유탄에 좌초됐다. 결국 2011년 12월27일 박근혜가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으로 조기 등판했다. 안철수가 서울시장 출마를 포기한 9월6일 긴급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안철수(42.4%)가 박근혜(40.5%)를 이기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박근혜 대세론에 균열을 가져온 ‘안풍(安風)’의 시작이었다. 2011년은 그런 해였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첫 방송을 했던 해도 2011년이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전 국회의원 정봉주, ‘시사IN’ 기자 주진우, 시사평론가 김용민이 출연한 ‘나꼼수’는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경원에 대한 ‘1억 피부과’ 공세로 박원순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11년 이후 대중에게 미친 영향력을 따진다면 지난 9년은 가히 ‘김어준의 시대’였다.
김호기 교수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굿바이, 2010년대!>라는 칼럼에서 2010년대를 이렇게 회고했다. “지구적 차원에서 2010년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침체’가 진행돼온 시기였다. 대침체 시기의 사회변동은 2017년 ‘거대한 후퇴’로 명명됐다…거대한 후퇴를 가져온 원인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이중적 위기였다…1990년대 후반 철학자 리처드 로티가 내놓은 21세기 예측, 다시 말해 사회적 불평등이 확산되고, 저급한 선동가가 등장하며, 병적인 가학성 세계로 회귀하여 여성과 소수자를 증오하는 경향이 만연할 것이라는 예견만큼 지난 10년의 그늘을 날카롭게 전망한 것은 없었다…이러한 경제 변동에 상응한 정치 변동이 포퓰리즘의 확산이었다…포퓰리즘은 ‘엘리트 대 국민’의 새로운 정치 균열을 앞세웠다. 포퓰리스트에게 엘리트란 기득권의 다른 이름이고, 정치의 궁극적 목표는 엘리트 기득권에 맞선 국민 주권의 회복에 있었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에서 이탈리아 ‘오성 운동 돌풍’까지 포퓰리즘은 정치적 다원주의를 부정함으로써 결국 근대적 대의 민주주의를 위협해왔다.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포퓰리즘의 강화는 공론장에서 ‘탈진실(post-truth) 시대’를 열었다…진실을 이루는 사실보다 믿고 싶어 하는 사실이 더 중요해지고, 이런 인지적 편향은 영국 브렉시트 사례처럼 가짜뉴스들을 범람하게 했다. 이 탈진실의 시대에 이성과 합리성의 계몽주의는 다시 한번 위기에 처했다. 정서와 신념이 진리와 도덕의 자리를 대신하고, 중간적 완충 지대가 사라짐으로써 정치적·문화적 양극화가 심화됐다….”
<거대한 후퇴>의 저자들은 포퓰리즘이 이탈·탈퇴·배제·경계·장벽·분리·구분·차이·경멸·혐오·증오의 서사로 도배되어 있으며, 민족주의·국가주의·정체성·순수성·우월성·정통성을 모토로 삼는다고 통찰했다. 포퓰리스트들은 권위주의로 가득 차 있으며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소수자와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고, 언론 자유를 억압하고, 반대자를 제거하기 위해 법을 이용한다”.
2011년의 주역들이 주도한 2010년대 한국 정치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포퓰리즘·진영주의·이미지 정치·반지성주의의 극심한 퇴행을 겪었다. 구혜영은 박원순의 상징적 가치를 스스로 배반한 ‘박원순의 역설’이라고 했지만 그건 박원순만의 역설이 아니다. (시민운동가인) 그가 서울시장이 된 순간 ‘시민운동’이 죽었듯이 (민주화운동가들이 모인) 민주당이 집권한 후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다. (법 전문가들이) 검찰개혁·사법개혁을 외치는 순간 ‘법치주의’가 죽어가는 이 지독한 역설은 도대체 뭔가.
더불어민주당은 우리가 알던 ‘김대중’의 민주당, ‘노무현’의 민주당, ‘김근태’의 민주당이 아니다. 억압 속에서 고난의 길을 걷던 그 민주당이 아니다. 자유와 민주를 위해 독재와 싸우던 그 민주당이 아니다.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용기가 있던 그 민주당이 아니다. 반칙과 특권을 누리던 기득권과 싸우던 그 민주당이 아니다. ‘원칙 없는 승리’보다 ‘원칙 있는 패배’가 낫다고 하던 그 민주당이 아니다.
‘혁신’은 내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기득권’은 상대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에서 혁신은 죽었다. 민주당은 기득권이다. 잘못에 대해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다. 모든 책임은 전 정권 탓, 야당 탓, 보수 언론 탓이다. 절제와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개혁이라는 기름을 잔뜩 싣고) 브레이크가 파열된 채 폭주하는 탱크로리 같다. “역경을 이기는 사람이 백 명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사람은 한 명도 안 된다”는 토머스 칼라일의 경구가 떠오른다.
‘무상 급식’ 이슈만 밀어붙이다
중도·젊은층 잃은 한나라당과
‘검찰개혁’ 외치는 민주당 비슷
진중권의 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민주당은 이상해졌고, 통합당은 옛날부터 한심했고, 정의당은 진보정당의 성격을 잃어버렸죠. 이 모두가 다 쓸데없는 진영논리가 우리 사회에 가져온 파멸적 결과입니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진영 멘털리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자신의 ‘선의’를 믿으면 안 됩니다…그래서 민주주의 국가라면 자신이 선의를 가졌다고 생각(혹은 착각)하는 사람들이 시스템상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균형과 견제,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바로 민주주의 정신이니까요. 자신들이 정의롭다는 착각에 빠진 민주당 사람들의 ‘개혁’ 시리즈가 파괴하는 게 바로 이 시스템입니다…정당을 지지하더라도 진영에서 벗어나 맨정신으로 합시다. 아군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착하지 않고, 적군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악하지 않습니다.”
민주당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는) ‘무상급식’ 이슈를 이념적으로 과도하게 밀어붙이다가 20~40대 젊은 세대의 지지를 잃더니 급기야 주민투표라는 ‘전략적 패착’을 두고 말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장외 우량주인 안철수와 박원순을 야권으로 편입시켰다. 시나리오에 없던 서울시장 선거 패배는 홍준표·유승민·나경원·원희룡·남경필로 구성된 40~50대의 젊고 개혁적인 지도부를 붕괴시켰다. 보수 정당에서 ‘개혁파’가 퇴장당하는 순간이었다.
총선을 앞둔 다급한 상황에서 전권을 부여받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당을 완벽히 장악했다. 세력 균형이 완전히 깨진 상황에서 비상 대권을 가진 계엄사령관(?)에게 저항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견제가 사라지고, 이견이 허용되지 않는 일사불란은 치명적 독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승리하자 (지금의 민주당같이) 브레이크가 파열된 채로 1970년대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 순간 스윙보터인 중도의 이탈이 가속화되었고 패배는 피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2011년이 보수 몰락의 역사적 변곡점이었다.
정치는 연합이다.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예외가 없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부터 보수 정당은 당 안으로는 분열했고, 당 밖으로는 중도를 잃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보수 분열의 결과지 원인이 아니다.
역사적 변곡점 될 서울시장 선거
민주당, 이념적 편향 밀어붙이면
지지기반 이어 대선 주자도 ‘흔들’
보수 몰락 그해, 반면교사 삼아야
박원순의 등장으로 정치적 변곡점이 되었던 2011년 서울시장 선거와 마찬가지로 박원순의 퇴장으로 치러지는 2021년 서울시장 선거도 역사적 변곡점이 될 수 있다. 10년 전에 그랬듯이 이번에도 안철수가 뜨거운 카드가 될 수 있다. 대선 전에 야권의 분열 상황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는 미래통합당으로서는 정계개편의 기회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안철수는 (서울시장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만약 2027년 대선을 노린다면 5년의 서울시장직도 노려볼 만하다. 노무현은 1988년 국회에 들어온 지 14년 후에 대통령이 되었다. 이명박도 1992년에 국회의원이 된 후 15년 만에 대통령이 되었다. 박근혜 역시 1998년 국회로 들어온 후 14년 뒤에 대통령이 되었다. 문재인도 2003년에 청와대로 들어온 지 14년 후에 대통령이 되었으니 2013년에 국회의원이 된 안철수도 14년 뒤를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민주당이 2011년으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은 한나라당이 무상급식을 지나치게 이념적으로 밀어붙이다가 중도와 젊은층을 잃었듯이 ‘검찰개혁’ 같은 이슈를 지금처럼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중도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은 강자가 일방적인 완력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부동산 이슈로 전통적 지지기반인 젊은층의 지지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중도마저 잃고 서울시장을 빼앗기면 2011년 한나라당이 개혁파를 잃었듯이 유력한 대선 주자를 잃을 수도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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