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한국보수의 ‘다키스트 아워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 슬로건은 세상을 북한의 프리즘으로 보는 ‘반공 보수’의 인식과 심리를 노골적으로 담았다. 홍준표 대표는 ‘나라를 좌파에게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의미라고 설명했지만 그 해명이 오히려 ‘나라를 북한에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고 해석되도록 만들었다.
“서울은 자유다.” 자유한국당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의 슬로건 역시 중의적이다. 그는 출마선언에서 “서울은 규제가 아닌 자유가 필요하다”고 살짝 언급하고는 곧바로 진짜(?) 자유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대한민국을 좌파 광풍에서 구하고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통합과 혁신을 위해 이 한 몸을 던지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밝힌 그는 “문재인 정권은 지금 혁명을 하고 있다. 사회주의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국가가 민간기업의 주인노릇을 하고, 토지사유권까지 침해하려고 한다.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며 북핵 용인, 한·미동맹 폐지, 김정은 3대 세습 독재와 동거하는 연방제 통일을 지향한다”고 했다. 서울시장 후보로서는 전례 없는 출사표다.
홍준표 대표는 4월12일 6·13 지방선거 후보자 출정식에서 “이 정권의 본질은 민주노총, 전교조, 참여연대, 주사파 네 개 세력이 연합한 좌파연합정권”이라 규정한 후 “ ‘자유 대한민국을 지킵시다’는 지난 대선 때부터 내세운 구호였고, 지금도 지방선거 구호로 변함 없다.(…) 우리가 내세우는 건 자유 대한민국과 자유주의 시장경제 질서다. 그 두 가지가 대한민국을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끌어올린 원동력인데, 저들이 그 체제를 ‘통째로’ 허물려 한다”고 분노를 드러냈다.
“나라를 통째로 넘기겠냐”는 슬로건은 보수의 ‘리스크’가 됐다 홍 대표가 보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문제를 인정’해야
홍준표 대표는 4·27 남북정상회담은 ‘위장평화쇼’일 뿐이며, 판문점선언은 “김정은과 우리 측 주사파들의 숨은 합의”라며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 아사히 TV 인터뷰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하는 것은 좌파뿐”이라며 여론과 동떨어진 인식을 보이더니 경남 창원에서 열린 필승 결의 대회에서는 “되지도 않은 북핵 폐기를 다 된 것처럼 선동하고, 포악한 독재자가 한 번 웃었다고 신뢰도가 77%까지 올라간다.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이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며 ‘홍트럼프’다운 거친 독설을 쏟아냈다.
홍준표 대표는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자회견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와 일부 언론들은 입을 모아 한반도에 평화가 온 것처럼 하고 있지만(…) 한반도 평화를 이루기 위한 핵심 과제인 북핵 폐기 문제가(…) 오히려 과거의 합의보다 후퇴하였습니다. 지난 2005년 9·19 성명은 제1조에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하겠다’는 북한의 약속을 명기하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이번에는 추상적인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제외하면 어디에도 북한의 핵포기 약속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 자유한국당도 다른 정당들처럼 적당히 환영하고 실천을 촉구하는 수준에 머무른다면, 지방선거에 더 유리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 평화는 힘의 균형으로 얻어지는 것이지 말의 성찬으로 얻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는 중도 보수의 외면과 불리한 안보 프레임을 자초했다 당은 이제 ‘태극기’로 상징되는 20%에 기반한 정당이 됐다
홍준표 대표의 초강경 안보 행보가 (다음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둔) 전략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방선거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홍 대표도) 잘 알고 있다. 핵심적 문제는 지방선거를 이끌어야 하는 투톱인 당 대표와 서울시장 후보의 ‘이념적 자폐증’이 자유한국당의 지지기반을 극도로 좁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좁게 잡으면 20%, 넓게 잡아도 25% 지지를 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둑에서는 고수일수록 판을 넓게 본다. 부분적인 싸움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대세점은 놓치지 않는다. 축구에서도 운동장을 넓게 쓰는 팀이 강팀이다. 정치에서도 외연을 확장하는 정당이 승리한다.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이념적 자폐증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에 빠뜨린다. 고정관념은 ‘고장’ 관념이다.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히는 피해망상 때문에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대표의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고 있다.
히말라야가 무너지면 에베레스트도 별 거 아니다. 보수의 페르소나 박근혜가 몰락하자 보수의 아우라도 사라졌다. 한국의 보수는 주류에서 비주류로, 상수에서 변수로 빠르게 전락하고 있다. 길도 잃고, 힘도 잃고, 꿈도 잃었다. 뼈아픈 건 국민들에게 꿈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나라를 되찾자는 독립의 꿈,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건국의 꿈,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산업화의 꿈, 북한과 싸워 이기자는 통일의 꿈, 독재를 무너뜨리자는 민주화의 꿈을 보여주던 위대한 보수주의자들이 있었던 적이 있다. 지금 보수는 위대함과 담대함을 다 잃었다.
미국 드라마 <뉴스룸> 첫 회에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뉴스 앵커 윌 매코보이는 공화당원, 민주당원과 함께 초청받은 토론회에서 한 대학생에게 “미국이 위대한 나라인 이유를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받는다. 민주당원은 ‘다양성과 기회’라고 답한다. 공화당원은 ‘자유’라고 답한다. 윌은 답한다. “미국은 위대한 나라가 아니에요. 그게 제 답변입니다.” 예상 밖의 답에 모든 청중이 놀라는 가운데 윌은 낮게 읊조리듯 말한다. “위대한 적이 있었지. 옳은 것을 위해 일어섰고(…) 가난을 물리치려고 했지 가난한 사람과 싸운 건 아냐. 희생을 하고, 이웃을 걱정했지. 신념을 위해 돈을 모금했고, 그런 걸로 자랑 따위는 하지 않았어. 위대한 것들을 이뤘지. 엄청난 과학발전도 이뤘고, 우주를 탐사하고 질병도 치료했지.(…) 세계적인 경제도 이룩했어. 우린 별을 향해 전진했지.(…) 우린 지성을 열망했지, 우습게 여기지 않았어. (…) 지난 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그런 걸로 평가하지 않았어. 쉽게 겁을 먹지도 않았어.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에게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지. 위대하고 존경받는 사람들의 지식.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는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거야.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한 국가가 아니다’.”
‘보수의 최대 리스크’가 된 홍준표 대표가 자유한국당과 보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위기에 동의하는가? 원인은 무엇인가? 해결책은 있는가? 세 가지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야 한다. 홍준표 대표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홍준표 대표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사랑하는가보다 무엇을 증오하느냐에 따라 투표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상대가 싫어서) 반대하러 투표장에 가는 것이다.
홍준표 대표의 행보가 야기하는 전략적 문제는 두 가지다. 중도 보수(합리적 보수, 개혁 보수, 리버럴 등 어떻게 부르든 지난 20년간 보수정당에 투표해왔던 사람들)를 완전히 잃는다는 것과, (블랙홀 같은 안보 이슈로 인해) 불리한 프레임에서 싸운다는 것이다.
1990년 3당 합당 이래 한국 보수정당은 ‘안정’과 ‘개혁’을 상징하는 보수주의(민정계)와 자유주의(민주계)의 동맹으로 안정적 우위를 유지해왔다. 1990년대 한국 보수는 ‘북한’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보는 ‘반공 보수’와 ‘돈’의 프리즘으로 보는 ‘시장 보수’의 연합이었다. 그 후 20년간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이 집권에 성공했던 것은 ‘보수 연합’을 잘 관리했기 때문이다. 2007년 이명박과 박근혜의 경선은 두 세력이 팽팽하게 맞섰던 마지막 전쟁이었다.
PK에 기반한 리버럴 정당인 통일민주당을 이끌었던 김영삼 이후 한국 보수정당의 패권이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를 거치면서 TK에 기반한 반공 보수로 회귀하더니 지금 자유한국당은 ‘태극기’로 상징되는 20%에 기반한 정당으로 쪼그라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김영삼,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를 찍었던) 30%의 중도 보수가 보수동맹으로부터 이탈했다. 특히 PK와 충청의 중도 보수는 민주당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박근혜 탄핵 찬성 여론 80%와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를 유지하는 배경에는 ‘홧김에 서방질하는’ 이들의 분노가 담겨 있다.
국민의 정서가 ‘통일’보다는 ‘평화’로 선회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붕괴시켜야 할 적으로 보는 냉전적 사고는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1991년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기 때문에 실체를 인정하고 대화에 나서야 했지만 보수는 안보 패러다임 전환에 실패했다.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한 민주·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의 기회를 넘겨주고, 한반도 평화체제의 주도권을 빼앗긴 것은 치명적 실수였다.
북한과 대화하지 않는다면 예상해볼 수 있는 세 개의 시나리오가 있다. 첫째, 북한이 두 손 들 때까지 강한 압박을 유지하는 것이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계속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다. 지난 20년간 뉴스를 틀 때마다 봤던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실험, 대규모 열병식 장면 등의 시나리오다. 둘째, 북한과 미국의 치킨게임이 결국 전쟁으로 귀결되는 (상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다. 셋째, 북한과 미국이 대화로 선회하는 극적인 시나리오도 있다. 한반도 평화 시대의 주도권이 북한·미국·중국으로 넘어가고 한국은 모기장 밖 신세로 전락한다. 세 시나리오 모두 (북한과 대화에 나서) 한반도의 운명을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것보다 결코 낫지 않다.
홍준표 대표는 “한 번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고,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고, 세 번 속으면 공범”이라고 했다. 홍준표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을 1938년 뮌헨회담에서 히틀러의 위장평화책에 놀아난 체임벌린에, 자신은 처칠에 비유했지만 (결과적으로) 1년의 시간을 벌어준 ‘뮌헨협정’ 덕에 영국은 승리했고 독일은 패배했는지도 모른다. 히틀러는 패배 직전 “1938년에 전쟁을 시작했어야 했다”고 후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란 그런 것이다. 지금은 (바보나 공범이 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대화할 시간이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체제가 중도 보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또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보수는 ‘엘리트주의’를 신뢰하고 선호한다. ‘반지성주의’와 ‘대중주의’를 혐오하는 문화가 있다. 지적 능력과 품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동의 이름인 ‘위민관’은 그런 엘리트주의 세계관(for the people)을 반영한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여민관’으로 이름 지었는데 ‘더불어’는 그들의 정체성(by the people)을 잘 반영한다.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대표가 (보수적) 전통으로부터 한참 벗어나 ‘반지성주의’와 ‘포퓰리즘’ 행태를 보이는 것도 지지세 확장에 걸림돌이다.
엘리트주의를 선호하는 보수에게 지성과 품격이 사라졌다 국민의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된다면 ‘소멸’이 기다릴 뿐
엘리트주의는 대중의 정서와 괴리가 있고, 대중과 연대하고 조직하는 것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지만 결과를 만드는 능력에서는 탁월함을 보인다. 외교와 정치에서도 ‘프로토콜’을 중시하기 때문에 절제된 ‘품격’을 중시한다. 놀랍게도 (보수정당이라는) 자유한국당이 합리적 보수가 경멸하는 ‘반지성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품격 없는 막말이 난무한다. 지성은 모자라고 예능은 차고 넘친다. 분노와 비판의 대상이 되면 다시 집권할 기회가 있지만,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되면 소멸이 기다릴 뿐이다. 지금은 한국 보수의 ‘Darkest Hour’(다키스트 아워, 어둠의 시간)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