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하고 있는 한국의 보수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최근 당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내부 비판이 제기되자 지난 1일 “당을 망치는 이기적 정치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때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지배했던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스마트폰 시대의 새로운 강자인 애플과 삼성에 패권의 지위를 빼앗기고 몰락한 것은 ‘고객이 갖고 싶은’ 스마트폰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혁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순간에 몰락했다.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한때 세계시장을 지배했던 위대한 기업의 몰락을 5단계로 설명했다. 1단계 :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 2단계 :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 3단계 :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 4단계 :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 5단계 :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단계.
한국의 보수도 정치시장에서 지배력을 잃고 몰락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유지되어왔던 민자당 대 반민자당,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의 보수 우위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주당 대 반민주당의 시대가 열렸다. 지금은 민주당 상수의 시대다. 정치는 단순하다.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지난 30년간 연합을 한 정치세력은 승리했고 분열한 세력은 패배했다. 예외가 없다.
한국의 보수는 짐 콜린스의 5단계 중 3단계와 4단계가 혼재되어 있다. 위기를 부정하고 총선 승리를 낙관하는 그룹과 이대로 가면 총선은 절망적이라는 비관파의 정국 인식은 완전히 반대다. 진단이 다르니 해결책도 다를 수밖에 없다.
문제의 핵심은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와 그를 둘러싼 그룹은 위기감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설사 위기를 느끼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리더십과 전략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김영삼의 신한국당이나 이회창의 한나라당 때 영입된 정치인이나 2016년 이전의 이명박, 박근혜 시대를 경험한 정치인들은 지금 자유한국당의 상황을 보수가 주류였던 그 시대와 비교하기 때문에 위기감이 클 수밖에 없다. 반면 ‘진박 감별’과 ‘옥새 파동’으로 얼룩져 보수 몰락이 시작된 2016년 총선 이후에 정치권에 들어온 인사들은 역사상 최악의 참패인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와 비교하기 때문에 착시에 빠져 있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를 연거푸 졌으면 위기감을 갖는 게 당연하다. 보수의 위기가 단지 야당이 된 것 때문은 아니다. 주류에서 비주류로, 상수에서 변수로 전락한 것이 심각한 상황이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22석으로 123석의 민주당에 1당을 빼앗겼다. 보수의 마지막 보루였던 강남과 대구마저 뚫렸다. PK는 누구의 텃밭인지 모를 정도로 변했다. 국민의당이 민주당 텃밭 호남에서 23석을 잠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1당을 빼앗겼다면 공천과 선거를 주도한 ‘친박’이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게 당연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정현 당대표를 밀어붙였다. 위기 가능성에 눈감은 그들 앞에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보수의 구심이라는 지위를 상실한) 자유한국당은 역사상 가장 참혹한 패배를 당했다. 대선 패배 이후에도 당은 변하지 않았다. 대선 직후 치러진 전당대회에 (대선 패배의 당사자였던) 홍준표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본인도 당도 좋았을 것이다. 혁신의 기회는 그렇게 또 지나갔다.
2015년 박근혜 정권의 국정교과서 파동 때부터 심해지기 시작한 ‘이념적 자폐’는 중도보수의 이탈을 불러오더니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2018년 지방선거는 대선보다 더 참혹했다. 김영삼·이회창·이명박·박근혜를 찍었던 중도보수 중에서 상당수가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
이들은 자유한국당과 정치적 대척점에 있는 더불어민주당에 투표함으로써 분노를 극대화시켰다. 분노는 자신들이 느끼는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아무도 씻어주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들은 “왜 부끄러움이 우리 몫이어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지방선거 패배 직후 김성태 원내대표가 “이번 선거는 국민들이 자유한국당을 탄핵한 선거입니다”라고 정확히 규정했지만 누구도 탄핵에 걸맞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박근혜·이명박 두 전 대통령이 구속됐을 때도 그 많던 친이·친박 의원 중 단 한 명도 사퇴하지 않았는데 말해 뭣하겠는가.
이 장면이 낯설지는 않다. 1997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에게 패해 정권을 빼앗기자 수많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공동 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으로 대거 투항했다. 이들 중 일부는 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고 집권 가능성이 커지자 다시 돌아왔다. 놀라운 변신이었다.
1997년에 정권을 빼앗겼을 때만 해도 패배의 책임을 돌릴 데가 많아 보수진영은 위기감이 별로 없었다. 경선에 불복하고 국민신당 후보로 출마한 ‘이인제 탓’, IMF 환란을 초래한 ‘김영삼 탓’, YS가 밉다고 DJ와 연대한 ‘김종필 탓’, 아들 병역 문제로 난타당한 ‘이회창 탓’으로 돌렸다.
2002년 대선 승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 분위기였다. 2000년 총선 승리 이후 이회창은 거의 대통령이 된 듯 행동했다. 실제로 2002년 대선은 야당인 한나라당 이회창은 여당 후보처럼 싸웠고, 여당인 민주당의 노무현은 야당 후보처럼 싸웠다. 결국 또 졌지만 이때도 반성과 혁신은 없었다. 노무현과 후보단일화를 한 ‘정몽준 탓’, 또 불거진 아들 병역 문제와 정몽준·김종필을 잡지 않은 ‘이회창 탓’, 이회창의 눈과 귀를 가린 ‘측근들 탓’으로 돌렸다.
2016년 총선·2017년 대선·2018년 지방선거…세번의 참패에도 한국의 ‘보수’는 변화와 혁신을 외면
중도보수의 이탈 현상은 그동안 지지에 대한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보수정당이 씻어주지 못했기 때문
이대로 변화 없다면 올 추석 이후 한국당 중심 보수 통합과 보수 신당 탄생은 50% 대 50% 로 맞설 것
두 번의 대선 패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2003년 보수의 위기감은 여전히 크지 않았다. 국회의석도 과반을 넘게 유지하고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임기 첫해에 10%대로 급락했기 때문이다. 집권당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열하는 것을 보면서 2004년 총선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나 그들은 정권을 되찾아 오기 위해 4년(!)이나 기다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결국 탄핵을 향해 폭주하던 열차는 궤도에서 이탈했다.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한 자리로 떨어졌다. 총선 승리는커녕 선거운동을 할 수도 없었다. 이때 박근혜는 한나라당을 구해줄 유일무이한 구세주였다. 보수의 페르소나는 그렇게 등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자신이 구한 사람에게 버림받아 최후를 맞은 잔 다르크 같은 운명의 박근혜의 등장,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구속이 ‘보수의 몰락’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운명이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과반의석을 내주고 나서야 비로소 위기감을 갖기 시작했다. 위기에 동의해야 원인을 찾을 수 있고,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위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혁신은 불가능하다. 2004년 이후 한나라당에는 다양한 혁신의 목소리가 분출했다. 소장 개혁파들은 담대한 혁신을 요구했다. 그 결과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압승했다.
역사적으로 보수·진보 모두 전국 선거를 세 번 연속 패배한 이후에는 혁신의 목소리가 커졌는데 (세 번의 참혹한 패배 이후에도) 자유한국당은 조용하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나는 잠들었는가, 깨어 있는가. 누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없느냐”는 대사처럼 자유한국당은 정체성을 논할 수도, 좌표를 찍을 수도 없는 당이 되고 말았다.
정당 지지율은 반으로 쪼그라들었고, 당에 대한 비호감도는 절망적일 정도로 높다. 국민이 정당을 선택하는 세 가지 기준, 즉 좋아해서, 필요해서, 상대가 싫어서 찍는다는 비율을 경쟁상대인 민주당과 비교해보면 세 가지 모두 큰 격차를 보일 것이다. 또 다른 지표인 ‘정권교체에 동의하는가?’ ‘동의한다면 야당이 대안인가?’ 두 질문 모두 50%를 넘어야 승리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은 둘 다 50% 한참 밑일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총선 패배는 불문가지다. 비전도 없고, 전략도 없고, 리더십도 없이 떠밀려 가면 보수 통합은 물 건너가고 공천 탈락자들은 무소속이나 우리공화당으로 사분오열되면서 민주당에 대승을 안겨줄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민주당은 친문 후보로 대거 물갈이할 여유가 있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탄핵을 적극적으로 부정’ ‘탄핵을 소극적으로 부정’ ‘탄핵을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주류다. ‘탄핵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움직일 공간이 거의 없다. 당을 나갔으면 돌아가지 말았어야 한다. 돌아간 것은 전략적 패착이다. 게다가 전당대회에서 오세훈이 ‘6인 보이콧’에서 이탈하여 황교안 대표체제에 ‘정통성’을 부여한 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자유한국당 주류의 고민은 두 가지다. 황교안체제가 붕괴하면 안된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공천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고민은 황교안체제가 유지되더라도 이대로는 총선 승리가 난망하니 ‘자유한국당 중심의 보수 통합’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할까.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려면 박근혜와의 결별을 결단해야 한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범여권’을 벗어나 ‘후보단일화’ 전술을 폐기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자유한국당도 우리공화당의 존재에 대해 지나친 공포(?)를 갖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2008년 총선의 ‘친박연대’와 비교해도 파괴력은 떨어질 것이다. 그때는 박근혜라는 강력한 대권주자가 힘을 실어주었고, 대선 직후라 지분(?)을 요구할 명분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권주자도 없고, 정권을 빼앗긴 야당 지지자들이 전략적 투표를 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공화당은 2008년 ‘친박연대’보다는 2000년 민국당의 길을 가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또 하나의 조건이 있다. 황교안 대표가 잠재적 대권주자와 N분의 1로 동등하게 경쟁하겠다는 기득권 포기 선언을 해야 한다. 가능할까.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래야 유승민, 안철수, 원희룡을 포함한 중도보수 인사들을 모두 참여시킬 수 있다. 아마도 당명은 바꿔야 할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민주당은 총선 승리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반문재인’ ‘반민주당’의 바람이 거셀 것으로 예상되는 총선에서 야당이 분열을 극복하고 강력한 ‘보수 통합’으로 맞선다면 힘겨운 싸움을 각오해야 한다. 이 경우 민주당의 현역 의원 물갈이는 생각보다 줄어들 것이다.
또 다른 시나리오가 있다. 자유한국당과 황교안 대표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면 ‘황교안 회의론’이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황교안 대표가 버틴다면 물러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대위로 전환시킬 힘을 가진 당내 대주주도 없고, 반황교안 구심도 없고, (흠결이 많아) 공천이 두려운 의원들의 저항도 쉽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중도보수’신당이 나올 가능성이 점점 커질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탄핵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세력이 중심이 되는 정당이 될 것이다. ‘개혁 보수’와 ‘수구 보수’의 전면적 분열이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민주당의 물갈이가 훨씬 큰 폭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 정당은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과 대통령이 될 가능성의 합이 100%’인 당에서 승부를 걸어보려는 중도보수 대권 후보들이 대거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불거진 유승민·안철수·김무성·원희룡·남경필 중심 신당론도 그런 시나리오 중 하나로 보인다. 현실화된다면 오세훈은 물론이고 홍준표도 참여를 고민할 것이다.
자유한국당 중심의 보수통합이 황교안 대표에 대한 회의론으로 주춤하는 사이에 중도보수 신당 가능성은 전보다 좀 더 커져 지금은 30%는 돼 보인다. 만약 8월 말까지도 자유한국당의 변화가 없다면 아마도 40%까지 올라갈 것이다. 그 상태로 추석을 맞으면 자유한국당 중심의 보수통합 가능성과 중도보수 신당의 가능성은 50% 대 50%로 팽팽하게 맞설 것이다. 정계개편의 임계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