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의 시대를 마감하며
2020년, 새로운 ‘디케이드(decade)’가 열렸다. 2020년대는 2010년대의 ‘비관의 시대’를 마감하고 ‘낙관의 시대’로 기록될 수 있을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처음으로 새로운 십년에 대한 기대 없이) 우울하게 새해를 맞았다. 살벌한 공기가 짓누르고 있던 1980년의 새 아침도 철없이 설렘으로 맞았다. 1980년대 폭정의 시대에서 살아남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는지 모르지만 1990년 첫날도 눈치 없이 희망으로 맞았다.
1989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라 <상실의 시대>로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제목이 우리 세대의 심리를 잘 포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즈음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른을 맞았다. ‘살아서 서른을 맞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세대가 서른을 맞는 것은 실존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박일문은 1992년에 나온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서른, 불안한 나이다. 길고도 어두운 터널을 기어와 나는 시궁쥐처럼 살았다. 겁 많고 비굴하고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고 했는데 그건 그 또래의 공통된 고백이었다. 1994년에 최영미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썼고, 같은 해에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를 발표했다.
1994년 10월에는 성수대교가 붕괴했고, 1995년 6월에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곳곳에서 거품이 꺼지고 있었다. 1997년에는 결국 IMF 구제 금융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다리와 건물이 무너지듯 경제와 나라가 붕괴됐다. 이런 거품 붕괴의 혼란을 이문열은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에서 잘 묘사했다.
1990년대에 경제는 낙관과 비관이 뒤섞여 혼란스러웠지만 문화적으로는 르네상스를 맞았다. <응답하라 1994>가 잘 그려냈듯이 가난도 독재도 경험하지 않은 ‘신인류’가 태어나고 있었다. ‘소비자’의 정체성으로 무장한 이들은 ‘획일’을 거부하고 자유롭고 발랄한 ‘개성’에 열광했다. 의무보다는 권리를 먼저 찾는 세대의 등장이었다.
65세 이상의 세대가 ‘국민’의 정체성으로 권리보다는 의무를 먼저 찾은 것과 대비된다. 마을에 TV 한 대, 전화기 한 대 있던 시대를 경험한 세대와 TV와 전화기를 한 대씩 갖고 다니는 세대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초현실적이다. 가치관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두 세대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자판기 커피’세대와 ‘에스프레소 커피’세대의 존재론적 충돌이다. 부모와 자식 세대의 화해할 수 없는 전쟁은 불행한 일이다. 이들은 어떤 질문에도 어긋나는 답을 한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생존’의 시대였다. 국가도 개인도 살아남아야 했다. 북한과 싸우고 가난과 싸웠다.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자”는 그 시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슬로건이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국민’의 정체성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는 세대다.
1980년대는 ‘민주’의 시대였다. 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자각한 ‘86세대’는 권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싸웠다.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려움 없이 얻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싸운 것이다. 용기로 ‘시민’의 정체성을 쟁취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바꿨다”는 자부심이 있는 세대다.
1990년대는 ‘개방’의 시대다. 기술혁신과 세계화가 몰고 올 세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 채 김영삼 정부는 1994년에 ‘세계화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통찰한 대로 그 당시에 세계화를 추진할 수 있는 나라는 ‘냉전의 빚을 받으려는’ 미국밖에는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세계화 ‘대책’ 위원회가 아닌 ‘추진’ 위원회를 발족시킨 탓에 ‘IMF사태’를 맞았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문화적 세례를 받아 (과거 세대의 열등감을 극복한) X세대와 밀레니얼이 “우리가 대한민국이다”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실업과 구조조정으로 힘든 시기였지만 ‘밀레니엄’을 맞는다는 사실에 모두가 흥분했다. 실제 밀레니엄은 2001년부터였지만 ‘2000’이라는 숫자의 마력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1월20일 총선을 앞두고 새로 창당한 당의 이름을 ‘새천년민주당’으로 지었다.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110층 쌍둥이 빌딩이 붕괴하는 충격적 테러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했지만 지금 정도의 비관적 분위기가 지배하지는 않았다.
1950~1970년대는 생존의 시대, 국가도 개인도 살아남아야 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국민’의 정체성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1980년대는 민주의 시대,
의무 이상으로 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자각한 86세대는 용기로 ‘시민’의 정체성을 쟁취했다
2010년대는 비관의 시대,
경제에 상응한 정치 변동 ‘포퓰리즘 확산’…‘엘리트 대 국민’의 새로운 정치 균열을 앞세웠다
한국 정치는 민생과 미래는 내팽개치고 ‘검찰 개혁’과 ‘자유 우파’라는 진영 슬로건을 걸고 1년 내내 싸웠다
2010년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비관이 압도했다. 아마도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사건(?)도 크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김호기 교수는 최근 두 편의 칼럼에서 2010년대를 잘 통찰했다.
김호기 교수는 2019년 12월18일 경향신문에 쓴 ‘굿바이, 2010년대!’라는 칼럼에서 “…2010년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침체’가 진행돼온 시기였다. 대침체 시기의 사회변동은 2017년 ‘거대한 후퇴’로 명명됐다…거대한 후퇴를 가져온 원인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이중적 위기였다…노동은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그 결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구체적인 두려움으로 진화해왔다. 이러한 경제 변동에 상응한 정치 변동이 포퓰리즘의 확산이었다…포퓰리즘은 ‘엘리트 대 국민’의 새로운 정치 균열을 앞세웠다. 포퓰리스트에게 엘리트란 기득권의 다른 이름이고, 정치의 궁극적 목표는 엘리트 기득권에 맞선 국민 주권의 회복에 있었다…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포퓰리즘의 강화는 공론 장에서 ‘탈진실(post-truth) 시대’를 열었다…진실을 이루는 사실보다 믿고 싶어 하는 사실이 더 중요해지고, 이런 인지적 편향은 가짜뉴스들을 범람하게 했다…”고 2010년대를 진단했다.
2019년 12월24일 한국일보에 기고한 ‘김호기의 굿모닝 2020s’ 첫 칼럼에서는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해 논리보다 감성에 의존하고, 민중이 정치의 주인이라는 국민주권을 내세우는 게 포퓰리즘의 핵심이다…국민주권을 표방함에도 엘리트 대 국민의 이분법은 국민을 둘로 나누는 ‘두 국민 국가’의 그늘을 강화하고 있다…포퓰리즘은 국민주권의 회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영원한 식솔이다. 그러나 제도정치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불편한 친구다…”라며 포퓰리즘 확산을 우려했다.
김호기 교수가 칼럼에서 고발한 내용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노동의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구체적 두려움이 되었다. 영국의 사회적 문제를 꾸준하게 다뤄온 켄 로치 감독은 <나, 다니엘 브레이크>에서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삶을 유린당하고, 인간의 존엄을 박탈당한 현장을 고발한다. 그때만 해도 주인공 다니엘 브레이크는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라며 분노했고, 유서가 돼 버린 울분을 통해 현실에 저항했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나는 다니엘 브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불과 3년이 흘렀을 뿐인데 켄 로치 감독의 새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주인공 택배 기사 리키는 기술과 시스템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다.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 영국의 현실은 깜짝 놀랄 정도로 한국과 닮았다. 그런데도 한국 정치는 ‘민생’과 ‘미래’는 내팽개치고, ‘검찰 개혁’과 ‘자유 우파’라는 진영 슬로건을 내걸고 1년 내내 싸웠다. 한국도 포퓰리즘의 늪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직접민주주의, 국민주권을 내세우며 국민과 시민이 광장에서 충돌하고 있다.
문제는 대통령도 ‘두 국민 국가’로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국 정국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광장에서 진영 대결이 격화되는 것에 대해 “정치적 사안에 대해 국민의 의견이 나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직접 의사 표시를 통해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 행위로서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대통령의 인식에 깜짝 놀랐다. 긍정적 측면이 있는 것은 맞지만 부정적 측면이 훨씬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론 장에서 진실을 이루는 사실보다, 믿고 싶어 하는 사실이 더 중요해지는 ‘인지적 편향’은 위험한 수준이다.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가 ‘기레기’로 공격당하는 동안 유튜브를 포함한 ‘라이브 방송’은 뉴 미디어, 콘텐츠 크리에이터라 불리며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면서 지배력을 확장하고 있다. 확증 편향에 기생하는 가짜뉴스가 차고 넘친다.
내가 우울하게 새해를 맞은 것은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너무 낯설다. 나는 진영의 전사가 아니므로 싸울 의사도 없고, 논객이 아니므로 옳고 그름을 놓고 논쟁할 생각도 없다. 다만 정치컨설턴트이자 정치분석가를 자처하는 입장에서 이런 현상에 대한 정치공학적 유불리에 대한 판단을 피할 도리는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런 구도와 프레임은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하다.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이대로 간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주류 교체 전쟁’에서 결정적 승기를 잡을 것이다. ‘자유 우파’라는 이념적 프레임은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가려주고, 자유한국당의 지지기반을 좁힐 뿐이다. 여러 기관에서 조사한 신년 여론조사 결과는 ①문재인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에서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보다 높고, ②민주당 지지율이 자유한국당보다 훨씬 높고, ③총선 프레임에서 정권 심판(30%대)보다 야당 심판(50%대)이 일관되게 높게 나왔다.
황교안 대표는 수많은 공언에도 불구하고 예산안, 선거법, 공수처법 어느 것 하나 막지 못했다. 그러고는 또다시 총선 승리를 공언하고 있다. 지도자는 말의 두려움, 행동의 두려움이 있어야 한다. 이제는 누구도 황교안 대표의 말을 믿지 않는다. 권위를 잃으면 이끌 수 없고, 이끌 수 없다면 지도자가 아니다. 황교안 대표체제로는 통합도, 혁신도, 승리도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나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당시 “자유한국당이 중도를 놓고 민주당과 경쟁하는 당이 아니라 태극기부대를 놓고 우리공화당과 경쟁하는 당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는데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황교안 대표가 ‘광장’으로 나가 ‘유튜버’들과 함께 문재인 좌파 독재에 맞선다며 이념전쟁, 세대전쟁, 역사전쟁을 하는 것은 섶을 들고 불로 뛰어드는 격이다. 보수엘리트가 기득권의 상징이 돼 있는 한국에서 우파 포퓰리즘은 좌파 포퓰리즘을 이길 수 없다. 원내대표가 교체되었을 때, 국회에서 예산안,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을 패키지 딜하지 않은 것은 전략적 패착이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정권 심판’ 프레임을 무력화하기 위해 미래권력인 박근혜를 조기 등판시켜 선거 프레임을 바꿨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 2012년 승리를 재연하려면 탄핵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지도부를 구성했어야 한다. 황교안 대표와 친박계가 당을 이끄는 한 ‘야당 심판’ 프레임을 벗어날 길이 없다.
나는 2018년 1월2일에 경향신문에 기고한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는 칼럼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보수 몰락의 결과지 원인이 아니다…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 정당 안에서는 자유주의 세력과 보수 세력이 ‘개혁’과 ‘보수’로 충돌하면서 만들어낸 다양성이 당을 강하게 만들었고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회창·이명박·박근혜를 거치면서 보수 정당 주도권이 자유주의 세력에서 보수 세력으로 넘어가면서 보수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지난 30년간 유지돼 온 민자당 대 반민자당,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의 보수 우위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주당 대 반민주당의 시대가 열렸다. 한국의 주류가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보수는 1991년 북한과 ‘남북기본합의서’라는 담대한 합의를 하고, 1996년 ‘신한국당’이라는 개혁 보수 정당을 만들고, ‘공동체자유주의’라는 ‘따듯한 보수’의 비전을 제시한 적도 있다. 그런 보수의 시대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한때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지배했던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스마트폰 시대의 새로운 강자인 애플과 삼성으로부터 패권의 지위를 다시 찾아올 가능성과 비슷할 것이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혁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순간에 몰락했다.
2015년 11월 김영삼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민주당은 3당 합당 이전의 김영삼을 복권시키면서 개혁 보수의 상징을 빼앗아갔다. 2018년 6월에 김종필이 돌아갔을 때, 민주당은 DJP 연합과 노무현을 지지했던 김종필을 민주당의 자산으로 편입시켰다. 상징 자본을 잃으면 그들을 따르는 지지층도 잃는 것이다.
전에는 ‘보수는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고, 진보는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본다’는 말이 있었으나 이념적·신앙적 근본주의자가 보수 정당을 이끄는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황교안 대표와 친박 좀비가 있는 한 떠나간 중도보수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 한 승리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보수의 ‘Darkest Hour’다. 아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포퓰리스트가 극성을 부리는 지금은 대한민국의 ‘Darkest Hour(어둠의 시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