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조강특위 위원 전원책 “송두리째 바꾸겠다”는 거침없는 말도 놀랍지만
그가 요구한 전권 준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조강특위 위원장이 더 놀랍다
지금 비대위, 야구로 치면 15 대 2로 지는 8회말 등판한 ‘패전처리용’ 투수
박근혜·김종인 비대위와 다르다, 선거 직전도 아니고 중진들도 조용하다
문 대통령 지지율 떨어지면 지지자들이 돌아오리라 믿는다면 꿈 깨시라
변화가 두렵다면 애플·삼성에 패권 넘긴 노키아·모토로라처럼 사라질 뿐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위 외부위원을 맡기로 한 전원책 변호사가 강력한 인적쇄신을 예고했다. 그는 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비대위원장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칼자루를 쥔 조강특위는 다르다. 욕을 먹더라도 칼자루가 있으니 할 일을 할 것”이라며 결기를 보였다. “무엇보다 전투력이 중요하다.(…)온실 속 화초, 영혼 없는 모범생, 열정 없는 책상물림만 가득했던 한국당의 인재 선발 기준을 송두리째 바꾸겠다.(…) 거친 들판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자라난 들꽃 같은 젊은 인재들을 찾아야 한다”며 인적쇄신의 기준도 제시했다. 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당 정체성부터 바로 세우고 당의 자원들을 ‘일사불란한 전사’들로 재편하는 게 조강특위가 할 일”이라며 목표를 좀 더 분명히 했다. 더 나아가 “바른미래당이 집단주의를 숭배하는 정당도 아니고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정당이라면 단일대오로 가는 게 옳다”며 차기 전당대회는 ‘보수통합전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대위원장도 아니고 조강특위 위원장도 아닌) 조강특위 위원이 당 노선·조직·전략 전반에 걸쳐 거침없이 말한 것도 놀랍지만 그가 요구한 ‘전권’을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김용태 조강특위 위원장이 약속했다는 사실도 놀랍다. 세 사람의 의기투합이 성공할까? 쉽지 않을 것이다. 어두운 전망의 근거는 정치 싸움의 핵심 요소인 세력, 명분, 동력이 모두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정당 경험이 없는 외부인사인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전원책 변호사가 구상하고 있는 당 노선 개혁·인적쇄신·통합 전대의 시나리오가 성공하려면 (당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대주주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2016년 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안철수·박지원·김한길을 비롯한 반문세력의 탈당 후) 당을 완전히 장악한 문재인 대표가 ‘전권’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에는 그 정도의 힘을 가진 대주주가 없다. 외부인사인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누구에게 전권을 위임할 처지도 못 된다.
현실 정치 경험이 없는 인사들의 치명적 약점은 정치를 ‘만만하게’ 본다는 점이다. 정치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무섭다. 전원책 변호사는 불과 며칠 만에 많은 적을 만들었다. 칼자루를 쥐었으니 칼춤을 추겠다며 피바람을 예고하면서 이른바 ‘친박’과 ‘친홍’을 적으로 만들더니, 김용태 조강특위 위원장을 비롯한 당내 위원들의 의결권 배제를 요구함으로써 그나마 당내 우군이 될 수 있었던 ‘복당파’마저 등 돌리게 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나머지 외부인사 세 명을 자신이 직접 뽑겠다고 한 것이다. 인기 없는 정당이, 잘 되지도 않을 일을, 욕먹으면서 할 사람을 찾는 일인데 누가 전원책의 ‘들러리’를 서겠다고 나서겠는가.
바른미래당의 복잡한 사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보수통합전대’ 운운했다가 강한 반발도 불렀다. 분명한 월권이다. 그는 또 “당의 몇몇 분이 공화주의를 말하는데 참 코미디 같은 일이다. 우리가 공화주의 안 한 적 있나? 국회의원이 됐으면 공부 좀 해야 한다. 그런 말이 아직도 한국당 소속 의원에게 통하니까 한국당 의원들 품질 문제가 나오는 것”이라며 조롱조의 독설을 날렸다. 칼잡이는 말을 아껴야 한다.
세력도 약하고, 우군도 없는데, 지금은 동력도 없다. 총선이 1년 6개월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비대위가 성공하려면 총선을 앞둔 시점이거나, 당내 ‘대주주’가 직접 나설 때다. 2016년 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는 앞의 조건을 만족시켰고, 2012년 새누리당의 ‘박근혜 비대위’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선거 패배 직후에 외부인사가 맡는 비대위는 성공한 사례가 없다.
패배할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오고 승리에 대한 절박감이 극에 달할 때, 대주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비대위가 들어서야 성공 가능성이 있다. 당 이름도 맘대로 바꿔도 된다. 본보기로 ‘거물’을 날려도 저항하지 못한다. 모두가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굴욕을 참아낸다. 한마디로 ‘비상계엄’이다. 계엄사령관인 비대위원장의 말이 곧 법이다. 그가 엄지손가락을 올리면 살고, 내리면 죽는다. 당과 개인도 ‘살고 보자’는 생존 본능만 남았을 때, 혁명과 혁신은 성공한다. 그런 상황에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전원책 공천심사위원장이라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냉정하게 예상한다면 내년 초에 들어설 지도부가 2020년 총선을 지휘할 가능성도 50% 미만으로 보인다. 총선을 이끌 지도부는 총선 직전에 큰 폭의 정계개편과 함께 올 가능성이 50%를 넘어 보인다. 2017년 자유한국당 창당 이후 지금까지의 지지율 추이를 볼 때, 김병준 비대위는 (야구로 치자면) 15 대 2로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 8회 말에 등판한 ‘패전처리용’ 투수 신세다. 실망한 홈 관중도 거의 다 빠져나간 상황이다.
15% 정도의 지지를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존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더 크다는 게 당 밖의 냉정한 평가다. 한국갤럽이 8월14~16일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자유한국당에 대해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평가한 응답자가 76%로 주요 원내정당 중 비호감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호감이 간다’는 응답자는 불과 15%에 그쳤는데 비호감 대 호감의 비율이 5 대 1로 크게 벌어진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같은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호감이 가지 않는다’ 34%, ‘호감이 간다’ 57%였다. 비호감도가 호감도의 두 배를 넘으면 승리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는데 자유한국당은 무려 다섯 배다.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40~50% 사이에서 움직였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믿을 수 없는 몰락이다. 히말라야가 무너지면 에베레스트의 아우라도 사라지듯 중도보수 지지자들이 모두 떠나고 이른바 ‘태극기’로 불리는 지지자들만 남자 대한민국 주류였던 보수의 아우라도 완전히 사라졌다. 보수는 주류에서 비주류로, 상수에서 변수로 전락했다. 민자당 대 반민자당,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의 시대가 끝나고 민주당 대 반민주당의 시대가 열렸다. 지금은 민주당 상수의 시대다. 대한민국 주류가 교체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이른바 ‘태극기’ 세력은 ‘박근혜 대통령은 잘못한 것이 없다’ ‘잘못은 했지만 탄핵당할 일은 아니다’ ‘탄핵했으면 됐지 왜 구속까지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 포함되어 있는데 그 숫자는 15% 정도로 보이고 넓게 봐도 20%는 넘지 않아 보인다. 한국의 유권자 지형을 거칠게 분류하면 30 : 20 : 30 : 20이다. 맨 앞의 30%는 2007년 정동영과 권영길의 지지율 합이다. 어떤 경우에도 보수 정당을 찍지 않는다. 마지막 20%는 이른바 ‘태극기’다. 어떤 경우에도 진보 정당을 찍지 않는다. 두번째, 세번째 그룹은 ‘스윙보터’다. 앞의 20%에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을 찍은 유권자가 꽤 될 것이고, 뒤의 30%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은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자유한국당 위기의 핵심은 세 번째 30%의 분노가 아직도 가라앉지 않는 현실이다. 탄핵 찬성 여론이 80%였고, 박근혜 대통령 구속 여론과 문재인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 지지율이 70%를 넘는 것은 이 그룹이 앞의 두 그룹과 ‘같은’ 정치적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2012년 대선의 50% 대 50%의 구도에서 박근혜를 찍었던 세 번째 그룹이 이탈한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김영삼·이회창·이명박·박근혜를 찍었던 세 번째 그룹에서 적어도 15~20%가 민주당 후보를 찍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박근혜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에 대해 느끼는 배신감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분노의 핵심은 자신들이 느끼는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아무도 씻어주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다. 이들은 “왜 부끄러움이 우리 몫이어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유한국당과 정치적 대척점에 있는 더불어민주당에 투표함으로써 분노를 극대화시켰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방선거 직후 “이번 선거는 국민들이 자유한국당을 탄핵한 선거입니다”라고 정확히 규정했지만 누구도 ‘탄핵’에 걸맞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라면 세번째 그룹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2020년 자유한국당은 소멸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 수행 평가 지지율이 계속 떨어져도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는다면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전원책 변호사 말대로 ‘전투력이 강한 들꽃 같은 젊은 전사’로 사람을 바꾸고, ‘통합전대’를 통해 보수를 단일대오로 묶어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에 필요한 지지를 되찾을 수는 없다. 인적 청산과 보수 통합은 승리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낡은 생각’을 버리는 것이 혁신의 핵심이다.
한때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지배했던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스마트폰 시대의 새로운 강자인 애플과 삼성에 패권의 지위를 빼앗긴 것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혁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업의 귀재들을 많이 영입하고, 판매 대리점을 늘리고, 마케팅을 강화한다고 해도 패권의 지위를 되찾아 올 수는 없다. 소비자가 ‘사고 싶은’ 스마트폰을 못 만들기 때문이다. 제품 경쟁력이 떨어진 게 와해적 몰락의 핵심 이유다.
현실이 변하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생각에 현실을 맞추려면 1970~80년대 박정희·전두환처럼 공포 정치를 하면 된다. 그게 가능한가. 아직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떠났던 지지자들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는다면 꿈 깨시라. 생각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보수의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낡아서 쓸모없게 된 제품’이라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는데 옛 추억을 그리워하는 소비자만 보고 기업을 유지할 수는 없다. 데이비드 색스는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책에서 LP를 찾는 젊은이들, 몰스킨 노트와 필름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했지만 솔직히 말해 얼마나 되겠는가?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여전히 2G폰을 쓰는 사람들 정도나 될까. 최근 보수 진영에서 ‘젊은 보수’가 늘어난다며 몇몇 청년 그룹을 주목했지만 그런 식의 접근으로는 2010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20~40대의 철저한 외면을 받아 온 흐름을 뒤집을 수 없다.
세상에는 네 부류가 있다. 변화를 이끌거나, 변화를 뒤쫓거나, 변화에 둔감하거나,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보수도 변화를 이끌던 시대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주류였던 시절이다. 지금은 변화에 둔감하거나 변화를 두려워한다. 혁신을 두려워하면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다. 애플과 삼성이 혁신을 게을리했다면 컴퓨터와 가전제품이나 팔다가 시장에서 도태됐을 것이다. 혁신을 거부하는 주류는 비주류로 전락했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한국의 보수는 아직도 냉전적 사고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한반도 평화체제 이행기에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여전히 변화를 두려워하고 북한을 두려워한다.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도 없다. 외교도, 안보도 남에게 의존하는 데 익숙하다 보니 당당함도 없다. 국제 정세의 변화를 읽는 통찰이 부족하니 담대한 전략도 없다.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공이 큰 보수지만 ‘더 따뜻한 대한민국’에는 소홀했다. 무상급식을 비롯한 복지 확대를 지나치게 이념적 정쟁으로 만들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도 부족했다. 한마디로 한국의 보수는 밖으로는 당당함이 부족했고 안으로는 따뜻함이 부족했다. 그런 사고와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다시는 주류가 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다르게 생각하라”고 했다. 모든 혁신가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압도적 새로움은 그런 창조의 정신 속에서 태어난다. ‘보수의 반격’은 새로운 생각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금은 낡은 생각을 청산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