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與 경선연기론과 대권구도
이재명의 야전사령관·기본소득 브랜드, 코로나 戰時에 강해…더 일찍, 더 크게 이겨 ‘文과 차별화’ 시간 벌 필요 느껴
이낙연·정세균 등 주류 측 ‘대권 飛上’에 유리한 여건 만들려 연기 압박…세력·명분·동력 부족으로 어려움 겪어
‘경선 연기론’이 더불어민주당 대선판을 흔들고 있다.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여권의 대권 구도가 요동칠 수 있다. 경선 연기를 둘러싼 논란은 당헌대로 경선을 치러 불안한 대세론을 조기 극복하려는 이재명 경기지사 측과 대권 비상(飛上)을 위한 시간을 벌어 보려는 주류 측 주자들 간의 쟁투로 요약된다.
◇대승적 연기는 기대난망
지난 18일 부동산 정책 전환을 통해 ‘중도로의 회군’ 메시지를 보낸 민주당 대표 송영길이 ‘경선 연기론’마저 큰 잡음 없이 진압한다면 일거에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총리와 당 대표를 지낸 이낙연이나 총리를 지낸 정세균 등 주류 측이 주장하는 경선 연기가 실현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세력, 명분, 동력 모두 부족하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선 연기론자들이 좀 더 전략적이었다면 4·7 보궐선거 참패 이후 ‘비상대책위로 갈 것인가, 전당대회로 갈 것인가’ 논쟁으로 시간을 벌었어야 했다. 당시 전당대회가 연기됐다면 대선 경선도 현실적으로 순연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송영길은 “대선 주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결단을 내리겠다. 당무위원회로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대표의 권한이니 의견을 수렴하고 결정할 생각”이라면서도 “원칙을 변경하려면 ‘모든’ 후보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원칙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정면 돌파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일단 22일 의원총회가 대권 주자들의 운명을 가를 1차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권 내 압도적인 1위 주자인 이재명이 극렬 반대하고 추미애·박용진 등 일부 후보도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대승적’ 연기는 기대난망이다. 이재명은 22일 언론 인터뷰에서 “경선을 미루면 당에 대한 신뢰는 추락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경선 연기 찬성파가 기댈 언덕은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땐 당무위 의결로 정할 수 있다는 당헌뿐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사유는 ‘코로나 국난’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선거들이 정상적으로 치러진 점을 감안하면 명분으로는 약하다.
◇이재명의 반대 배경
이재명이 경선 연기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경선 연기로 얻을 이익보다 리스크가 훨씬 크다. ‘야전사령관’ 이미지와 ‘기본소득’ 브랜드는 코로나와 같은 전시(戰時)에 필요한 리더십과 무기이기 때문에 평화 시엔 사람들이 찾지 않을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명장(名將) 조지 패튼은 1945년 10월 사령관직에서 해임됐다. 전쟁이 끝났기 때문이다. 타이밍을 놓침으로써 발생하는 가장 극적인 결과는 이재명의 대역전 패배일 수도 있다. 정해진 원칙을 바꿔 패배한다면 결과를 이재명 지지자들이 받아들일까. 아마도 분열에 휩싸일 것이다. 적어도 ‘원 팀, 원 스피릿’은 깨질 것이다.
설사 치열한 경선을 통해 흥행에 성공하고 승리하더라도 자칫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 있다. 특히 여당의 치열한 경선엔 늘 분열의 위험이 도사린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치열하게 싸우고도 분열하지 않는 경우는 야당일 때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의 이명박과 박근혜, 2008년 미국 민주당 경선 당시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사례처럼 정권교체에 대한 절박감이 분열을 막는다. 4·7 보선에서 안철수와 오세훈의 ‘전략적 단일화’도 유권자들의 정권교체 압력으로 성사된 것이다. 반면 여당은 1992년, 1997년, 2002년, 2007년,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분열했다.
이재명 입장에서는 가급적 일찍, 가급적 크게 이기는 것이 좋은데, 경선이 연기되면 이것을 보장할 수 없다. 경선에서 더 일찍, 더 크게 이겨야 이재명은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이재명 브랜드로 대통령과 차별화할 힘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비주류 ‘아웃사이더’인 이재명은 ‘민주당 DNA’와 ‘정권 교체’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다. 2002년 이인제가 노무현에게 무너진 가장 큰 이유인 ‘민주당 DNA’가 약한 점과 비교해보면 확실한 강점이다. ‘정치적 인파이터’ 성격은 2002년 노무현처럼 야당 후보로 보일 수도 있다.
◇‘언더독’에서 ‘대세론’으로
이재명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구심이 있다. ① 대선에서 이길 수 있을까, ② 이긴다 해도 ‘이재명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보호할까, ③ 민주당을 ‘이재명당’으로 바꾸지 않을까. ① 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② 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③ 은 호남을 비롯한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특히 대선 직후 치러질 지방 선거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불안하다.
민주당 내에서 지금 벌어지는 논란과 불운은 ‘언더독’ 포지션에 있어야 할 이재명이 ‘너무 일찍’ 1위로 올라온 현실에서 비롯됐다. 2002년 노무현, 2007년 이명박은 모두 ‘언더독’으로 있다가 이인제와 박근혜에 극적으로 역전승했다. 이재명은 분명 오버 페이스다. 지지율이 너무 빠르게 올라왔다. 비주류 아웃사이더로서는 위험하다.
그럼 여권 내 지지율 2위인 이낙연은 어떤가. 그는 더 위험한 루트를 택했다가 지지율이 급락했다. 본시 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1997년 이회창, 2007년 정동영의 실패 사례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꿈이 꺾인 김무성도 있고, 2011년 예상에 없던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로 크레바스에 빠진 홍준표도 있다. 1987년 노태우, 1992년 김영삼, 1997년 김대중, 2012년 박근혜, 2017년 문재인이 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이 됐지만, 자기 세력과 정치적 지분이 있었다는 점에서 친문(친문재인) 지지자에게 의존하는 이낙연과는 사정이 달랐다.
앞서 언급한대로 차기 권력은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하는 데 성공해야 정권 재창출에 유리하다.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확보해 압승한 상황에서 당시 여권 내 지지율 1위였던 이낙연이 짧은 임기의 당 대표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차기 대권을 ‘쟁취’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친문 팬덤에만 기댔던 그는 대통령과 차별화하는 것도 위험했고, 하지 않는 것도 위험했다. 결국 이낙연의 위험한 도박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주류 측엔 너무 짧은 활주로
여당 내 지지율 3위 이하의 나머지 주자들은 어떨까. 한국의 정당사에서 3위 이하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다른 후보들은 2007년 민주당 경선을 중도 포기하면서 유시민이 했던 “활주로가 짧았어요”란 말을 빌려 써야 할 가능성이 큰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세줄 요약
대승적 연기는 기대난망 : 여권 주류 주자들의 ‘경선 연기론’이 대선판을 흔들고, 대권 구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 하지만 여당의 압도적 1위 주자인 이재명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경선의 ‘대승적’ 연기는 기대난망.
경선 연기 반대의 배경 : 이재명의 ‘야전사령관·기본소득’ 브랜드는 코로나19 등 전시 때 더 힘을 발휘하는 리더십임. 또 더 일찍, 더 크게 이겨 ‘文과 차별화’할 힘과 시간을 확보하는 게 대선 본선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
‘오버 페이스’와 ‘짧은 활주로’ : 이재명은 너무 일찍 지지율을 끌어올려 불안한 1위를 유지. 주류 주자들은 대권 비상을 하기엔 활주로가 너무 짧음. 경선 연기론 갈등은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李와 反李 간 ‘시간 쟁투’임.
■ 용어 설명
‘언더독’이란 원래 스포츠에서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를 지칭하는 말. ‘언더독 효과’는 경쟁에서 약자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심리 현상인데, 정치·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남.
‘상당한 사유’는 민주당 당헌 88조 단서조항에 있음. 즉 선거일 180일 전까지 대선 후보를 선출하되,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땐 당무위 의결로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해 해석과 논란의 여지를 남김.
원문보기 :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62201030442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