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민의 Deep Read - 민주당의 反민주주의 행태
국민 편가르기와 나르시시즘으로 ‘불복’ 밀어붙이기…6·1지방선거를 ‘대선 연장전’으로 여겨
배타적 정치동맹 추구하고 ‘다수의 폭정’ 정당화…중도층 이탈로 최악 상황 맞이할 수도
대선은 끝났고 승리한 윤석열은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심리적 대선 불복’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패장 이재명 전 대선 후보의 즉각적인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자숙해야 할 송영길 전 당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검수완박’ 강행 처리 등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한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집단적 ‘인지 부조화’ 증상이다.
‘대선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패배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해야 ‘부조화 압력’을 견딜 수 있다. 오는 6·1 지방선거가 대선의 연장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민을 동지와 적으로 편 가르는 정치 탈레반들의 의식구조, 다수의 폭정을 민주주의라 우기는 ‘반지성주의’가 대선 불복 행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민주주의의 몰락
대선서 패배한 정파의 심리적 불복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노무현에게 패한 한나라당도 그랬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감정이 탄핵까지 이어졌다. 결과는 참담했다.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 152석 과반 의석을 내주며 참패했다.
2020년 총선에서 180석 의석을 얻어 거대여당이 됐던 민주당이 불과 2년 뒤 0.73%포인트 차 대선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2017년 ‘박근혜 탄핵’과 2019년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심리적 내전’ 상태였으므로 심리적 불복을 예상 못 한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사상 처음으로 10년 주기 아닌 5년 만의 정권교체였다. 1987년 체제 이후 ‘(정권교체로) 권력을 인수하고, (정권교체로) 권력을 인수당한’ 대통령은 문재인이 유일하다.
2020년 미국 대선 역시 근소한 표 차였고, 도널드 트럼프도 4년 만에 정권을 잃었다.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가 모두 연임했지만 트럼프만 단임에 그쳤다. 극단적 진영 싸움, 유례없는 네거티브 캠페인, 심리적 불복, 정권 인수 과정에서의 거친 충돌, 민주주의 규범과 관행 파괴 등이 지금의 한국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최근 신동아에 기고한 ‘문재인 5년, 소나기에 흠뻑 젖은 한국 민주주의’라는 글에서 ‘미국 민주주의가 트럼프 시기를 거치며 퇴보했다면, 한국 민주주의 역시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후퇴했다. 문재인 정부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상호 존중과 관용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규범과 정신을 내재화하지 못했다. 다수주의와 민주주의를 혼동했다’고 일갈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취임사에서 밝힌 ‘반지성주의’ 언급도 국회 다수파를 구성한 민주당이 다수주의를 민주주의라 우김으로써 발생하는 다수의 폭정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몰락을 부른다.
◇정치 탈레반의 대선 불복
정치는 ‘아홉 가지가 달라도 하나만 같으면 동지’로 보는 영역이다. 즉 다양성을 인정하고 동지를 만들어가는 게 정치의 본령이다. 민주당 행태처럼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근본주의는 엄밀히 말하면 정치가 아니다. 나(우리)만 도덕적이라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상대를 부도덕한 척결 세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정치를 ‘선과 악’ ‘내 편과 네 편’ ‘정의와 불의’로 나누는 원리주의자들이며 정치 탈레반이다. 탈레반에게 반대자는 타도하거나 청산해야 할 대상이다. 이길 ‘경쟁자’가 아니라 죽일 ‘적’인 것이다.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적 습성은 생래적으로 민주주의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은 퇴임 전 손석희와의 대담에서 “저쪽의 (큰) 문제보다 이쪽의 작은 문제들을 훨씬 부각하는 이중잣대가 문제”라고 말했다. 국민을 ‘이쪽과 저쪽’으로 편 가르기를 하는 노골적인 진영 논리다. 대통령이 대한민국 전체를 대표하는 지도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당파의 수장 혹은 일개 계파의 보스로 전락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45%라는 높은 지지율(한국갤럽)로 임기를 마친 문재인에게 국민이란 곧 지지자를 의미했다. 즉 45%의 지지자는 ‘이쪽’이고, 반대자는 ‘저쪽’이다. 조국 비리를 옹호하면 이쪽이고 비판하면 저쪽이다. 검수완박을 찬성하면 아방(我方)이고 반대하면 타방(他方)이다.
문재인과 민주당의 의식세계에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것은 분열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 저쪽은 챙겨야 할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의식구조가 심리적 대선 불복의 기저에 깔려 있다.
◇‘반지성주의’ 팬데믹
임지현 서강대 교수의 예리한 관찰처럼 민주당엔 이미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괴물이 자라고 있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도 일찌감치 민주당 중심세력이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을 가졌다고 비판했다. 민주화를 이끈 운동권들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도 했다.
정치 탈레반과 국회 다수파의 폭력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와 공론장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집단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배타적인 정치 동맹을 추구하는 ‘정체성 정치’ 때문에 한국 정치는 비토크라시(vetocracy)의 늪에 빠져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체성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 본령인 민주주의의 적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엔 21세기 탈진실(post-truth) 시대의 모순이 그대로 응축돼 있다.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신념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확증편향이 반지성주의를 만들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른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정치인, 진영 논리에 빠진 지식인, 거짓을 선동하는 데마고그의 궤변 바이러스에 감염된 ‘반지성주의’가 팬데믹처럼 대유행하는 상황이다.
45%만 똘똘 뭉치게 하는 진영 정치는 옳지도 않고 전략적으로도 어리석다. 나머지 55%를 정치적 반대자로 더 뭉치게 할 뿐이다. 민주당의 정치 탈레반은 5년 만에 정권을 잃고도 0.73%포인트의 근소 차 패배를 억울해하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외치고 사실상의 대선 불복 행태를 벌이는 중이다.
◇추락하는 민주당
정치는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중도 외연 확장이 불가피한 이유다. 그 단순한 사실을 외면했던 보수 정당이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연전연패했다. 민주당이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민주당에 대한 호감은 떨어지고 중도층은 이탈하고 있다. 대선 불복 심리에 감염된 민주당의 현재 모습에서 선거 때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던 과거 보수정당의 창백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세줄 요약
민주주의의 몰락 : 한국의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규범과 정신을 상실한 문재인 시대를 거치면서 퇴보. 민주당은 다수주의를 민주주의라 우기며 다수의 폭정을 일삼음. 이런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 몰락을 초래.
탈레반의 대선 불복 : 민주당 탈레반들은 국민을 편 가르고 상대를 척결세력으로 여기는 원리주의자임. 이런 인식이 ‘심리적 대선 불복’ 상태를 만들어 내고, 6·1 지방선거를 대선 연장전으로 여기게 하는 배경이 됨.
‘반지성’의 팬데믹 : 탈진실 시대 모순이 응축된 민주당엔 ‘우리 안의 파시즘’이 자라고 있으며, 반지성의 팬데믹이 만연해 있음. 민주당의 대선 불복 행태 속에서 과거 추락했던 보수정당의 창백한 그림자가 어른거림.
■ 용어 설명
‘탈진실’은 사실이나 진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감정 등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 포스트 모던 시대의 특징으로 자리 잡음. 가짜 뉴스나 거짓 선동 등이 탈진실 시대를 이끄는 수단.
‘우리 안의 파시즘’은 우리 편만이 정의와 도덕성을 독점하고 있다고 여기는 진보·좌파의 인식. 임지현 교수가 이를 극우 매카시즘과 결을 같이한다고 비판하면서 사회적 담론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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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2051201030430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