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문화일보] Deep Read | ‘다키스트 아워’ 국힘, 국정운영 능력 상실… 이길 수 없는 정당 늪으로 | 2025년 8월 7일

관리자
202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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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민의 Deep Read - 국민의힘의 진짜 위기

 

글로벌 메가트렌드 덮친 한국, 전쟁 전야 상황… 트럼프·AI시대 국가적 위기 극복은 정치권의 몫

尹, 선거연합 해체·정치이슈 과몰입으로 민주당에 정권 헌납… 국힘도 비전·리더십·전략 부재







국제정치·경제·외교·안보 지각 변동으로 쓰나미가 덮치고 있다. 전 지구가 전쟁터다. 좋든 싫든 전쟁을 지휘할 합참은 정치일 수밖에 없다. 우리 정치는 소용돌이치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정파들은 국가를 경영할 능력을 갖고 있나.

더불어민주당은 정치적 주류가 되기 위한 두 개의 조건 중 선거에서 ‘이기는 능력’은 보여줬다. 나머지 하나 ‘국정 운영 능력’까지 내보일 수 있는지는 이재명 정부와 여당에 숙제로 남아 있다. 국민의힘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국정 운영 능력도 선거에서 이길 능력도 잃어버린 정치집단임이 드러났다. 윤석열 정권 스스로 만들어낸 비극이다.


◇메가트렌드 덮친 한국

이제 ‘벨 에포크’,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마거릿 맥밀런이 ‘평화를 끝낸 전쟁: 1914년으로 향한 길’에서 보여준 통찰대로 ‘개인의 선택이 역사의 향방을 결정짓는’ 전쟁 전야 같은 때다. 대한민국을 덮치고 있는 메가트렌드는 ①미·중 패권 전쟁 ②인공지능(AI) ③인구구조 변화 ④기후위기 등이다.

1905년·1945년·1985년·2025년 40년마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우리 운명을 흔들어 놓았다. 특히 올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와 ‘(미국판) 제한 방어’ 독트린을 선언하면서 한국을 위기 속으로 몰아넣었다. 대중 견제라는 절체절명의 과제 속에 이뤄진 독트린은 ‘규칙 기반’의 자유민주주의, 즉 자유무역 질서와 전통적 동맹을 내동댕이친 결정이었다. 한국은 졸지에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맞게 됐다.

트럼프 시대는 또 관세 전쟁을 통해 한국에도 강력한 위기를 불어넣고 있다. 지난달 31일 한·미 간 관세협정이 타결된 직후 “2주일 이내 이재명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가질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회담 일정이 잡히지 않은 것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더 두려운 메가트렌드는 AI 특이점이다. 레이 커즈와일은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에서 오는 2029년까지 AI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거라고 예측했다. 앨런 튜링이 1950년에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이래 이 테스트를 통과한다는 것은 AI가 사람과 같은 수준의 언어와 상식적 추론 능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국의 AI 수준은 ‘퍼스트 무버’는커녕 ‘패스트 팔로어’가 되기에도 버거운 수준이다. ‘소버린 AI’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정치권의 의무

이 같은 전 지구적 도전을 극복해야 할 책임과 의무는 곧 정치에 주어진다. 정치가 상대에 대한 절대적 힘의 우위를 갖는 원천은 ①정통성 ②입법권 ③예산권 ④인사권이다. AI 전쟁에서 이기려면 ‘기술 전쟁’과 ‘인재 전쟁’에서 이겨야 하는데 이 전쟁은 기업과 대학의 몫이지만, 기업·대학·관료는 정치의 통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정치의 역량이 나라의 역량이다.

정치에서 주류가 돼 국가를 경영하려면 ‘선거에서 이기는 능력’과 ‘국정 운영 능력’을 갖춰야 한다. 집권당은 선거연합을 해체하거나, 경제가 어려울 때 외려 정치 이슈에 집중하면서 지지율 급락을 경험한다. 경제난 속에서 정치 이슈는 국민의 관심사도 당파적 관심사도 될 수 없다는 점을 망각하는 것이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윤석열 대통령은 한결같이 선거연합을 해체하면서 위기를 자초했다. 노무현·박근혜·문재인·윤석열 대통령은 모두 정치 이슈에 과몰입했다가 정권을 잃었다.

민주당은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논쟁은 있지만 ‘이기는 능력’만큼은 압도적 우위를 구축했다. 이제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 대통령도 문재인 전 대통령처럼 선거연합을 해체하지는 않을 테지만, 어젠다 세팅 실패로 지지를 잃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은 2004년 총선 승리 이후 ‘4대 개혁 입법’을 밀어붙였다가 민심을 잃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국민의힘은 두 가지 능력을 모두 잃었다. 제 발로 ‘이길 수 없는 정당’의 늪으로 걸어 들어간 국민의힘은 박근혜·윤석열 두 대통령의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국정을 맡길 수 없는 정당’의 이미지마저 덧씌워졌다. 국민의힘은 꿈도 잃고, 힘도 잃고, 길도 잃었다. 비전도 없고, 리더십도 없고, 전략도 없다.

◇정권 헌납한 윤석열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길에 버려지는 것처럼 이길 수 없는 정당은 정치 세력으로서 존재 가치를 잃은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2022년 3월 대선 승리와 같은 해 6월의 지방선거 승리 후에는 지난해 22대 총선 승리로 국회 다수파가 되는 것에 집중했어야 했다.

만약 2020년 21대 총선 때 같은 보수 진영 참패의 결과가 또 나올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공공연하게 탄핵을 예고하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그 이상으로 총선 승리에 올인했어야 했다.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결정문’에서도 ‘피청구인(윤석열)의 경우 자신의 취임으로부터 약 2년 후에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야당의 전횡을 바로잡고 피청구인이 국정을 주도해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국민을 설득할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철저히 민심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선거연합을 해체하고, 의대 증원 밀어붙이기식의 무리한 국정 운영으로 민주당에 승리를 헌납했다. 당시 민주당에 의한 집요한 윤석열 탄핵과 이재명 사법 리스크 방어가 예상됐는데도 총선 승리를 위해 어떤 쇄신도 전략도 내놓지 못했다. 결국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사법·검찰·언론 ‘장악’의 길을 터준 건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구주류들인 셈이다.

오랫동안 보수 정치권은 박근혜 탄핵과 함께 등장한 ‘자유 우파’, 윤석열 탄핵으로 득세한 ‘극우’ 등 논란으로 이념의 틀에 갇혔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 3년은 이재명과 민주당에 정권을 헌납하기 위해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스스로 쓴 시나리오와도 같다. 이재명과 민주당에 집권 시나리오를 쓰게 했더라도 이보다 더 잘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다키스트 아워

퇴행적 진영 내 이념전쟁의 프레임에 갇혀 광장 세력이나 극우 유튜버에 끌려다니는 보수 정치권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국민은 과연 이들에게 국정을 다시 맡기려 할까. 아마도 내란특검과 김건희특검 등이 끝날 때까지의 시기는 국민의힘에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가 될 것이다.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용어 설명

‘벨 에포크’(Belle Epoque)란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유럽이 평화와 번영을 누린 시대, 즉 전쟁 없는 시대.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을 가짐.

‘특이점’(singularity)이란 어떤 기준을 상정했을 때 그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점. 여기선 AI 발전이 가속화하면서 인류의 지성을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초인공지능이 출현하는 시점을 말함.

■ 세줄 요약

메가트렌드 덮친 한국: 국제정치·경제·외교·안보 등 지각 변동으로 쓰나미가 덮치고 있음. 이제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 ‘벨 에포크’는 끝나. 한국을 덮친 메가트렌드는 ①미·중 패권 전쟁 ②AI ③인구구조 변화 ④기후위기 등.

정치권의 의무: 위기 극복의 책임은 정치에 주어짐. 국가를 잘 경영하려면 선거에서 이기는 능력과 국정 운영 능력 모두 갖춰야. 국민의힘은 이 두 가지 능력을 모두 상실함. 비전도 없고, 리더십도 없고, 전략도 없는 형국.

정권 헌납한 윤석열: 윤석열 정권은 집권 후 선거연합 해체, 정치 이슈 과몰입, 이념전쟁, 의대 증원 밀어붙이기 등 무리한 국정 운영으로 민주당에 승리를 헌납. 지금 이 시기는 국민의힘에 ‘다키스트 아워’가 될 것.



원문 보기 : https://www.munhwa.com/article/1152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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